[정승열의 세계속으로]-51-

1. 폴란드 지도.
1. 폴란드 지도.

크라쿠프(Krakőw)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남쪽으로 약300㎞ 떨어진 슬로바키아 국경 부근에 있는 도시로서 현재는 마우오폴스카 주(Malopolska: 작은 폴란드)의 주도(州都)이다. 비스와 강(Wisla River) 양쪽에 형성된 도시 크라쿠프는 독일 베를린·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비엔나 및 러시아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슬라브족의 왕자였던 클락 왕(Krak)이 비스와 강에서 살고 있던 불을 뿜어내는 용과 싸워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도시 곳곳에는 용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많다. 966년 비스아족이 건설한 마우오폴스카(크라쿠프)는 로마가톨릭을 받아들였으나, 십자군 전쟁 때 부상병 치료와 함께 독자적인 영지 확보를 추구하는 독일 기사단(Deutscher Orden, 튜턴 기사단이라고도 함)의 압력을 피해서 로마가톨릭에 더욱 크게 의지하게 되었다.

1-1 크라쿠프 시내.
1-1 크라쿠프 시내.

마우오폴스카는 바벨 성(Wawel Royal Castle)을 왕궁으로 삼은 후 1596년 지그문트 3세(Zygmunt Ⅲ)가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약500년간 폴란드의 수도로서 수도가 옮겨진 이후 크게 위축되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던 체코의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와 함께 중부유럽의 3대 문화 중심지였다. 그래도 국왕의 대관식만큼은 바벨성에서 거행할 만큼 전통을 가진 크라쿠프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소련에게 선전포고를 한 뒤 동서유럽의 교통로인 이곳을 점령함으로서 비교적 중세의 유적을 잘 보존하게 되어 1978년 도시 전체가 최초로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라쿠프는 오랫동안 독일의 지배를 받은 탓에 독일어로는 크라카우(Krakow)라고도 불리며, 건국 초부터 로마가톨릭에 의존했던 탓에 국민의 97% 이상이 슬라브족이지만 다른 슬라브 국가들이 그리스정교(러시아정교)를 믿는 것과 달리 가톨릭신자가 95%이다. 그 영향으로 455년 만에 비(非) 이탈리아권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배출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2018.01.10. 폴란드 바르샤바 참조).

1-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바르샤바에 이어 폴란드 2대 도시인 크라쿠프는 바르샤바에서 다양한 교통노선이 있는데, 비행기는 약50분(167zl, 1즈워티는 원화 약350원)가량 걸리고, 기차는 바르샤바 중앙역에서 약2시간 반가량(49zl), 폴스키 버스정류장에서 331번 시외버스를 타면 약5시간가량 걸린다. 크라쿠프의 인구는 75만 명 정도이고, 시내버스와 트램이 많지만, 도시는 비교적 좁아서 시내에서 약15㎞ 떨어진 비알리츠카 소금광산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적지는 도보로 다녀도 좋다.

2. 마리아 대성당탑에서 바라본 광장과 직물회관.
2. 마리아 대성당탑에서 바라본 광장과 직물회관.

시내는 구시가지, 카즈미르, 유태인 구역 등 크게 3개 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구시가지는 대체로 오랫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지배해온 가톨릭의 중심의 유럽의 도시처럼 광장을 중심으로 성당과 오래된 건축물들이 있다. 구시가지는 크라쿠프 중앙역(Krakow Glowny)에서 도보로 약15분 정도 떨어졌으며, 기차역 앞에서 지하도를 건너면 중앙시장으로 연결되어서 찾아가기 쉽다. 중앙역의 뒷문으로 나가면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로 가는 버스터미널이 있다.

2-1 아담 미츠키 동상1.
2-1 아담 미츠키 동상1.

비스와 강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지역인 구시가지는 1220년에 건축된 성 마리아 성당(Bazyl- ika Mariacka; St.Mary’s Church)과 직물회관(Colth Hall) 사이의 중앙시장 광장(Rynek Growny)이 중심인데, 중앙시장 광장은 가로세로 약200× 200m의 정사각형(약4만㎡)로서 유럽에서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다음으로 넓다. 광장은 유럽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잘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으며, 여러 개의 구획으로 나눴던 '크림'이라 하는 작은 상점들의 흔적이 지금도 확연히 구분된다. 이것은 아마도 상설 점포인 직물회관과 달리 가설점포였던 것 같다.

3. 성마리아 성당.
3. 성마리아 성당.

광장 한가운데에는 폴란드가 지도에서 사라진 18세기에 ‘폴란드의 섹스피어’라고 하는 민족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Bernard Mickiewicz: 1798~1855)의 동상이 있고, 그 옆에는 돔 형식의 성 보치에하 성당이 있다.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지만 지금도 신자들이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사찰들이 전각(殿閣), 불상, 석탑 등의 조각, 불화를 비롯한 탱화, 불기(佛器)등 각종 공예품을 보유하고 있어서 우리의 옛 문화유물을 볼 수 있는 좋은 유적이 되듯이 가톨릭 문화인 유럽에서의 성당도 그러한 기능을 하고 있다.

3-1 성 마리아 성당 내부.
3-1 성 마리아 성당 내부.

크라쿠프에는 약60여 개의 중세교회가 있으나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구시가지에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인데, 1370년대에 세워진 성당의 두 개의 첨탑은 크라쿠프의 랜드 마크로서 고딕 양식인 왼쪽 첨탑(81m)과 르네상스식인 오른쪽 첨탑(69m) 중 왼쪽 탑은 감시탑이고, 오른쪽 탑에는 5개의 종을 매단 종탑으로 사용되어 왔다. 성 마리아 성당이 유럽의 다른 성당과 달리 첨탑의 높이가 서로 다른 데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하나는 건축가인 형제가 첨탑 하나씩을 건축하게 되었을 때 형이 동생보다 더 높게 짓자 질투심이 생긴 동생이 형을 죽이고 자신은 자살을 했다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시기를 달리하여 성당을 신축했는데 나중에 동생이 지은 첨탑이 더 높아서 왕이 왕관을 하사하자 그 왕관을 높은 첨탑 끝에 내걸었으며, 이것을 질투한 형이 동생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 칼은 후대에 경계하기 위해서 직물회관 내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4. 직물회관.
4. 직물회관.

그런데, 종탑에서는 매 시간마다 유럽 성당의 전통적인 타종 방식이 아닌 나팔수가 직접 트럼펫을 불며 시각을 알려주는데, 이것은 옛날 타타르족(몽고족)이 크라쿠프를 침략했을 때 침입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나팔을 불던 나팔수가 타타르족이 쏜 화살을 목에 맞고 죽은 것을 애도하기 위하여 ‘나팔수의 연주’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며, 음악은 나팔수가 숨지면서 중단한 부분까지만 연주하고 있다고 한다.

5. 영황 쉰들러리스트 기념 표지판.
5. 영황 쉰들러리스트 기념 표지판.

성당 내부 관람과 첨탑의 전망대는 유료이며, 성당 오른쪽으로 돌아서 관광객 전용 출입문이 따로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크라쿠프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성당 내부는 뉘른베르크 출신인 천재 조각가 비트 스트보슈(Wit Stowosz)가 12년 동안 만든 승천 제단은 국보로 지정됐을 만큼 중요시하며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5-1 유대인 구역 표지.
5-1 유대인 구역 표지.

한편, 성 마리아 대성당과 중앙광장을 사이로 마주보고 있는 직물회관은 약100m에 이르는 두 개의 건물이 붙어 있는데, 이곳은 500여 년 동안 폴란드의 수도이자 러시아와 서유럽의 사이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에 수많은 상인들이 몰려와서 다양한 옷감을 교역했던 시장이다. 폴란드 왕국에서는 직물 길드관(수키엔니체)을 짓고 상인들에게서 통행세와 물품판매의 수수료를 받았는데, 그 수입은 크라쿠프를 부유한 도시로 만들었다. 국영이던 직물회관은 건물 외벽에는 ‘국영 중앙시장’이라는 폴란드어의 첫 글자 ‘R’이 크게 새겨져 있으며,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공인받았다. 현재 직물회관의 1층 복도 양쪽에는 직물과 수공예품,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과 카페 등이 즐비하고, 2층은 국립박물관으로서 폴란드의 조각과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직물회관 왼쪽의 높은 탑은 구시청사로서 화재로 불탄 뒤 종탑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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