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포스터
영화 1987 포스터

1987을 보았다. 볼까말까 하다 보았는데, 역시 '보길 잘했어', '안볼껄' 반반이다. 많이 울었다. 장면장면 어느새 나를 대입시킴에 감정도 복받쳐 오른다.

 "장미꽃만발한 아크로폴리스, 쇠창살둘러친 면학의 도서관~~" 노래로 시작한 84년부터, 신림동 녹두집을 배회한 88년까지 나는 때론 정의로운 척 했지만, 많은 시간은 비겁했다. 고등학교생활까지 학교안 세상에 순응하는 모범생으로 살아온 탓일까? 스크린에서 보듯 학교밖 세상은 너무도 달랐지만 내겐 무서웠고, 세상을 변화시키기엔 그 벽이 높다는 무력감이 5년내내 나를 지배했다.

스크린의 벗겨진 '신발' 뒤로 어느새 없어진 나의 '안경'이 생각난다. 최루탄에 눈물범벅, 뛰느라 땀범벅에 거리로 나가기만 하면 어느새 흘러내려 없어진 안경. 앞이 잘 안보이는데도 그저 잡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뛰어야만 했던 나는 사실 '군부독재타도'가 아닌 '엄마 도와줘! 제발 살려줘!' 심정으로 뛰었다.

어느날 상도동 언덕배기에 '미국대통령방한반대' 문건을 돌린다. 어김없이 곤봉든 짭새(경찰)들과 마주선다. 무조건 뛰었다. 어느새 안경은 없어지고, 마음만 너무 급했을까? 언덕에서 가속을 감당하지못해 바닥을 뒹군다. 그래도 일어나 뛴다. 무릎이 아프다. 심장이 끊어질 것같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어느곳인가 들어간다. 그리고 쓰러진다. 한참을 지났나보다.

정신을 차리니 무릎이 퉁퉁 부운 상태로 헝겊으로 묶여져 있다. 옷은 찢어진채, 피가 흥건히 적셔있다. 둘러보니 다방인듯하다. 아주머니와 누나뻘되는 분이 "학생이 공부나 하지"하며 나무랜다. 표정엔 걱정되는지 시름이 가득하다. 주신 쌍화차에 대전 집이 생각난다. "고맙습니다" 인사드리고 나와 절뚝절뚝 걷는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수없다. 그날이후 지금도 나는 무릎이 안좋다.

독산동 코카콜라 앞 대로. 분위기가 이상하다. 동(시위주도자)이 뜨기를 기다리며 빵집에 있던 나는 덮친 몇명의 짭새들에 의해 그냥 속수무책으로 끌려나간다. 닭장차(경찰버스)에 실린 나는 정신이 없다. 쏟아지는 손길질, 발길질을 당해낼 수가 없다. 명치를 맞았는지 숨을 쉴 수가 없다. 조사를 받는 동안의 2박3일 너무도 힘들었다. 물론 영화속 대공분실에서 당하는 그 장면만큼은 절대 아니다. 자꾸만 범생이를 흔들게 한다. 나의 나약함을 들춘다. 자꾸 엄마얘기를 한다. 눈물이 나게 한다.

청춘의 내모습이 스크린과 오버랩된다.
1987년. 서슬퍼런 독재의 폭압을 우리 힘으로 이겨낸, 특히 박종철,이한열열사의 있을수없는 죽음을 딛고, 젊은 대학생부터 일반시민이 분연히 일어난 우리역사의 자랑이다. 비겁한 나도 6월의 함성을 잊을 수없다.

그러나 그 위대한 국민의 힘을 정치가 배반했다. 시민승리로 얻은 직선제와 민주주의를 그래도 단식과 투쟁으로 싸웠던 정치와 정치권이 분열로 역사의 오점을 남켰다. 1987년 민정당 군사독재정권을 젊은이들과 시민이 눌렀는데 정작 그 뒤에 있던 야당은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갈라짐으로써 고스란히 민정당에 민주주의 열망을 헌납해버렸다.

그해 12월 그래도 김대중 대통령후보를 찍었지만, 그리고 그이후에도 그분을 찍었지만 민주당이 좋아서 찍은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졸업이후 광고회사에, 벤처기업에, 사업가에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도 내맘속엔 '1987년 그때, 단일화가 이루어졌다면 대한민국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아쉬워하는 사람이다.

강영환
강영환 전 총리실 공보 비서

1987년 대한민국은 위대했다. 그러나 1987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위대하지 못했다.
1987년은 적어도 내겐 6.29직선제수용으로 찬란한 승리를 일군 반년과, 서로 분열하고 갈등으로 치달아 결국은 민주주의를 미완성으로 망가뜨린 반년의 공존이다. 

대학4학년생으로 현장에 있었던 1987년,
인생5학년생인 지금 스크린으로 본 1987년...
치열했고 눈물났던 6월까지의 반년만큼,
조마조마했고 마침내 화나고 분했던 12월까지의 반년이 보인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며 느끼는 벅찬 감동만큼, 분한 마음이 남는다. 여전히 '보길 잘했어', '안볼껄' 그런 마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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