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속으로] <49>

1.지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약200km 떨어진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체스키크롬로프(체코어: Český Krumlov, 독일어: Krumau an der Moldau)는 체코에서는 프라하 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성이다. 프라하 시내를 흘러내리는 블타바 강이 S자 형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강 언덕에 자리 잡은 체스키크롬로프는 인구 15000명의 아주 작은 도시인데, 체스키란 체코어로 ‘체코의’란 형용사이고, 크룸로프는 ‘강의 만곡부의 습지’를 의미한다. 결국 ‘체코에서 말발굽처럼 휘어진 강에 둘러싸인 풀밭’이란 의미의 체스키크롬로프는 프라하와 소금의 생산지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 사이의 길목에 있어서 예부터 산적이 많았다고 한다.
1-1 체스키롭로프.

1253년 보헤미안의 귀족 비테크 가문이 산적들을 소탕하고 이곳에 고딕 양식의 성을 쌓고 행인들의 안전을 보호해준다며 통행세를 받기 시작한 것이 도시의 시초가 되었는데, 비테크 가문의 후손이 끊어지자 친척인 로젬베르크 가문이 성을 물려받고 르네상스식으로 증축했다.  오늘날 중세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된 성 안의 곳곳에 새겨진 장미꽃잎 5개의 문양은 비테크 가문의 문장(紋章)인 동시에 마을의 상징이다. 1602년 보헤미아 왕 루돌프 2세가 비테크 가문으로부터 성을 매수하여 보헤미아 왕국의 소유로 만들었다. 
2. 입구에서 바라본 체스키 고성.

1992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후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연간 1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로 변신했는데, 프라하에서 체스키크롬로프까지는 열차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약3시간가량 가야 한다(버스요금은 7.6유로). 
2-1 성문.

마을 입구에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표지석이 있고, 약간 가파른 산길에 올라서 아치형 성문을 들어서면 옛날 대부분의 성곽이 그러했듯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 주위를 물이 흐르도록 한 해자(垓字)를 건너게 되는 해자 위에 놓인 도개교(道開橋)가 있다. 그러나 도개교는 이제 고정된 다리로 변했고, 웬일인지 해자에는 곰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장료는 없다. 

해자를 건너서 성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두 계곡 사이를 높다란 성벽을 쌓은 ‘망토 다리(Cloak Bridge)’가 시선을 잡는데, 망토다리는 경사진 크룸로프 성의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아치형의 다리로서 체스키크롬로프의 상징이다.
2-3 망토다리 위 성상들.

도시 전체가 마치 동화 속 마을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중세마을의 한 가운데에 스보르노티 광장이 있고, 광장 주변에는 영주가 살던 궁전과 예배당, 조폐소, 바로크식 극장 등이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 등 상점들마다 장식한 아름다운 꽃들, 특색 있는 간판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간판인지 장식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아름다운 문양들로 꾸며져 있다. 모든 전통이 그렇겠지만, 이렇게 도시 전체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각 상점이며 가정마다 시민들이 혼연일체로 꾸민 마음씨가 부럽기만 하다. 매년 6월 축제 시즌이 되면 주민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전통 옷을 입고 거리에 나와서 공연을 하며, 18세기 귀족들의 가면무도회며 음악회도 열린다. 
3. 광장.

체스키크롬로프는 여러 모로 독일의 로텐부르크(Rotenburg)와 비교되는데, 로텐부르크가 어린이의 장난감과 크리스마스 상품으로 특성화된 마을이라고 한다면, 체스키크롬로프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마귀할멈과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또 하나의 동화마을이다. 어린이들은 물론 아무리 거친 풍파를 살아온 노인들이라 해도 장난감백화점을 구경한다면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독일 로텐부르크에 관하여는 2017.06.30. 로텐부르크 참조). 그러나 강물이 휘감고 돌아가는 인프라 만큼은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천의 회룡포의 아름다움도 이곳 못지 않게 아름다워서 널리 알리고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4. 성에서 바라본 시내

성안을 돌아보고 블타바 강을 건너 성 밖의 마을로 가려면 블타바 강 위에 놓인 ‘이발사의 다리’에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1608년 신성 로마제국 루돌프 2세의 서자 줄리어스 왕자는 심각한 정신질환자였는데, 왕자가 풍광이 좋은 체스키크롬로프에 요양차 왔다가 이발사의 딸 마르케타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두 사람은 곧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으나 며칠 후 마르케타가 침실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자, 정신병자인 줄리어스는 자신이 아내를 죽이고서도 범인을 찾는다며 매일 성의 주민들을 한명씩 불러서 이 다리에서 죽였다고 한다. 이것을 보다 못한 이발사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수하여 죽임을 당했는데, 이발사는 줄리어스가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주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막고 또 사위에 대한 사랑을  지켜주기 위하여 대신 목숨을 바친 것이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대신 죽은 이발사를 기리기 위해 다리를 만들고 ‘이발사의 다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4-1 이발사의 다리(예수상과 후스상).
4-2. 성 안 네포무츠키상.

이발사의 다리의 양쪽 교각에도 프라하의 카를 교처럼 예수 그리스도 상과 이곳 출신인 종교개혁가 얀 네포무츠키(Sv. Jan Nepomucky, St. John of Nepomuk)의 성인상이 있다. 얀 네포무츠키 성인은 1393년 3월 카를 4세의 아들인 바츨라프 4세(Václav IV, 독일어: Wenzel : 1361~1419, 보헤미아 왕 1378~1419,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1373~1378, 신성 로마제국 황제 1376~1400)에 의하여 혀가 잘리고 돌에 매달아 카를 교에서 블타바 강으로 던져서 죽인 사제이다. 얀 네포무츠키 대주교는 1729년 성인으로 추대되었다(얀 네포무츠키에 관하여는 2017.12.20. 프라하 카를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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