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세월호’ 이후 확실하게 달라진 사람은 딱 한 명 같다. 대통령이다. 큰 사고가 났다 하면 현장으로 급히 달려간다. 그렇지 않으면 희생자를 위한 묵념이라도 하고 대책회의를 연다. 60년 묵은 적폐라는 세월호 사고 이후 눈에 띠게 달라진 것은 대통령의 민첩한 대응뿐이다. 

생떼같은 학생들을 포함 300명의 희생자를 내고도 우린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충돌할 수 없는 낚시 배가 충돌해서 13명이 바다에 빠져 죽고, 여느 목욕탕 건물 화재인 데도 미흡한 대처로 29명이 몰살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다. 사고와 피해를 키우는 원인을 보면 ‘세월호’는 여전히 남의 일이다. 오직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큰 교훈을 남겼다. 사고 관리를 잘못했다가는 임기도 못 채우고 쫓겨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사고 나면 대통령이 현장 달려가는 게 전부

그러나 대통령의 현장 방문이 무슨 소용인가? 다 빠져죽고 타죽은 뒤에 유족을 찾은들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잇따르는 적폐 사고에 언제까지 ‘대통령의 현장 방문’만으로 넘어갈 것인가? 정부는 이제 진짜 대책을 내와야 한다. 민심수습용 사후 방문 말고 적폐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진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세월호’는 적폐 사고의 결정판이었다. 당시, 사고의 원인을 살펴보니 어느 한 군데도 정상(正常)이 없었다.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였다. 해운회사는 고철 덩어리에 가까운 낡은 선박을 사서 무리하게 증축하고, 선박의 안전을 감시하는 기관은 이런 위험천만한 선박에도 안전 확인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 뒤에는 ‘해수부 마피아’라는 적폐의 상징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적폐의 장본인이었다.

‘적폐(積幣)’는 오래 동안 쌓여온 폐단이란 의미다. ‘세월호’는 갖가지 부패와 부조리가 쌓이고 쌓여 터진 필연적 사고였다. 이것이 세월호 사고의 본질이다. 제도와 규정을 고쳐 부조리와 부패를 근절시키고 관행을 개선하는 게 근본적 처방전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책임자를 처벌하고 단죄함으로써 일벌백계의 교훈으로 삼는 인적 청산작업도 필요했다.

인적 청산에만 치중, 제도개선엔 부진한 ‘적폐’

세월호 사고의 주요 책임자들은 도피하다 목숨을 잃거나 파산하고, 사고 수습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결국 탄핵으로 쫓겨났다. 법정에선 인정되지 않았으나 ‘세월호’는 대통령 탄핵의 실질적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인적 청산 공방에만 치중하면서 적폐의 본질인 ‘잘못된 제도와 관행’의 개선에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게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적폐 사고는 그치지 않고 있으며 개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사고가 날 때마다 밝혀지는 원인을 보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모든 사건 사고를 국가가 책임질 수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적폐가 원인인 어이없는 사고나 미흡한 대처 때문에 커진 피해라면 마땅히 국가 책임이다. 제천 화재 사고 유가족은 현장을 찾은 대통령에게 “세월호 이후 좀 나아지는가 했는데 우리나라 안전시스템이 나아진 게 뭐냐”고 따졌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실무자든 유족의 울분과 항의에 하찮은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적폐는, 모두가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묵인하고 방치하는 잘못된 제도와 관행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여러 적폐들이 생겨나고 쌓여간다. 그냥 두면 국민을 해치고 생명까지 앗아간다. 적폐는 부정한 조직일 수도 있고, 부정한 돈일 수도 있으며,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일 수도 있다. 그것으로 이익을 얻고 편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따라서 ‘적폐 청산’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세월호는 적폐의 경각심을 일깨워주었지만 우리를 변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도 사회도 적폐 개선을 위한 절실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달라진 건 사고가 나면 대통령만 화들짝 놀라 현장에 달려간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대책이 없으니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가 바다에서 뭍에서 끊이지 않는다. 목욕탕 갈 때조차 무서워해야 하는 나라는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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