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저녁에 공부방으로 올수 있어? 스승이 말했다. 목소리에 준엄함이 느껴져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칭찬은 해주지 않을 것이다. 겨울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단숨에 귀가 얼얼해지고 몸이 뻣뻣해졌다. 어둠이 내린 공부방 입구는 내 마음 만큼이나 고요했다. 딩동. 안으로 들어서자 스승은 내 소설에 대한 평가를 시작했다. 신선함이 없다,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건 위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의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다... 고개가 절로 아래로 떨어지며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나는 재주가 없는걸까?

새해가 밝았을 때 다이어리 맨 앞장에 이렇게 적었다. 1. 단편소설 세편 이상 쓰기 2. 신춘문예에 도전하기. 목표가 없는 인생은 무의미한 삶이라는 생각으로 정해 놓은 그것을 위해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갔다. 지정석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읽고 쓰고, 다시 읽고 쓰고 이것만 반복했다. 분위기를 읽히기 위해 경험도 해봤다.

심지어는 정림동 화장장에 찾아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장례도 치루어 봤다. 유리창 너머 소각로의 문이 닫혔다. 마스크를 쓴 화장장 직원이 스위치를 누르자 왼쪽 상단에 불이 켜졌다. 소각이 끝나려면 1시간 20분이 걸린다고 했다. 우리 할머니랑 어떤 관계세요? 유족들에게 식권을 나눠주던 상주가 나에게 물었다. 살짝 웃으며 목례를 하자 그가 다시 물었다. 혹시... 성남에 사신다는 당숙 인가요? 순간 모든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아, 그때의 난감함이란. 입을 닫은채 주차장으로 뛰었다. 성남에 사는 당숙인 것 같은 표정으로...

이렇게 노력하면 소설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내 글을 본 스승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밋밋하다, 강렬함이 없다. 감정이나 정서의 심연을 건드리지 못한다. 나도 말하고 싶었다. 그점...저도 잘 압니다. 충분히...안다구요. 그러나 그 어떤 인간이 스승의 말에 말대꾸를 하며 토를 달겠는가. 찍소리도 못하고 집으로 왔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돌아오는 길에 우유팩을 발로 차기도했고, 숨을 깊숙히 들이켜 가래침도 뱉었다(너무 커서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잠이 오지 않고 눈이 말똥거렸다. 누구보다 잠을 잘자던 내가 아니던가. 그때 다시 스승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문학은 새로워야 하고 독자의 심연을 울려야 하고.... 저도 안다니까요. 제발 잠 좀자게... 몸을 왼쪽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렸다.

얼마나 뒤척였을까. 옆에 누워 있던 아내가 툴툴거렸다. 잠이 안와? 왜 이렇게 풍덩거려? 문득 뭔가가 내 머리를 스쳤다. 풍덩거려? 으음, 이거 멋진 표현인 걸? 혹시 스승이 이야기하는 낯섬이나 새로운 건 이런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아내는 섬세 하기도 했다. 서운한 일이 있으면 자신의 감정 상태, 이를테면 당시의 상황부터 시작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고 똑부러지게 설명해주었다. 즉 스승이 말하는 '화자의 내면상태'였던 것이다. 그럼 아내는 나보다 더 글쓰는 재주가 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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