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개보다는 인명이 우선

금화가 가득 담긴 가죽 전대를 둘러메고 길을 가던 나그네가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전대를 베고서였다. 한참을 쉬며 땀을 식힌 나그네가 다시 길을 떠나자 함께 데리고 간 개가 자꾸 짖으며 따라왔다. 개가 왜 그러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걸었다. 그런데 큰 개울에 이르러 물을 건너려하자 개가 아주 사납게 짖으며 나그네의 바지자락을 물어 당겼다.

개가 공수병(광견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이 든 나그네는 피스톨로 꺼내 개를 쏘고 나서 서둘러 물을 건넜다. 한참 길을 재촉하던 그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마침내 그는 전대를 가져오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나그네는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 나무그늘로 갔다. 거기에는 전대를 꼭 끌어안은 채 개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서양의 개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개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외출할 때도 늘 같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장에 다녀오던 그가 술에 취해 잔디밭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들불이 나서 불길이 점점 다가왔다. 개는 주인을 깨우려 했지만 일어나지 않자 근처 개울물로 뛰어들어 온몸에 물을 적신 후 주인 주변을 적시며 불을 껐다.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한 끝에 주인을 구했지만, 개는 너무 지친데다 불에 데어서 죽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김개인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깨달았고, 개의 충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개의 무덤을 만들고, 지팡이를 꽂아 표시를 해 두었는데, 지팡이에서 싹이 돋더니 점점 자라 큰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개오(獒), 나무 수(樹)를 써서 오수라 불렀다. 우리나라 전북 임실군 오수면의 지명 유래다. 오수면의 후세 사람들이 이 개의 동상을 세웠는데 ‘의견상’이다. 또 의견상이 있는 일대를 의견공원으로 조성하고, 매년 5월에 의견문화제를 열어 이 개를 기리고 있다.

의견공원에는 외국의 의견상들도 있는데 스위스 알프스에서 12년 동안 조난자와 실종자를 40여명이나 구한 개 ‘베리’와 1856년 주인 무덤을 14년간이나 지키다 죽은 영국의 ‘보비’, 미국의 알래스카 오지에서 디프테리아가 발생했을 때 영하 50℃의 눈보라 속을 썰매를 끌고 1100km나 떨어진 앵커리지까지 가서 의약품을 싣고 와 1000여명의 목숨을 구한 ‘발토’의 상이다. 이처럼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하고, 영리하기도 해서 위험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도 한다.

지금도 지진 피해 지역이나 산사태 현장, 건물 붕괴 사고 현장 등에서 매몰자를 구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접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애견 수는 350여만 마리로 추정되고, 애견인 수도 1천여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길거리나 등산길에서 개를 안고 다니거나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개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영리한 개도 있지만,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심지어는 물어서 목숨을 앗아가는 못된 개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에게 할머니가 물려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더니, 근래에는 서울의 유명 한식점 여사장이 이웃집 반려견에 물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전신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방송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집안에서 어린애들이 애완견에게 물리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니 개를 좋게만 볼 수도 없는 것 같다. 반려견 중에는 작은 개도 있지만, 덩치가 아주 큰 개도 있다. 간혹 등산길에서 목줄이 풀린 큰 개를 만나면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개 주인이 개 스트레스를 풀어준다고 개를 잠시 풀어놓는 경우인데 이는 몰지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우리 개는 순해서 물지 않는다”고 하는데, 개가 주인에게나 순하지 낯선 사람에게도 순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개로 인해 다치거나 사망에 이르는 일이 2100여건이나 된다고 한다. 누구나 주의를 해야 할 일이고, 제도적으로도 안전대책이 요구된다 하겠다. 한식점 여사장이 사망에 이른 사건의 경우 개 주인에게 고작 과태료 5만원을 처분했다니 이는 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외국의 경우는 개의 관리도 아주 철저하지만, 사람이 사망에 이르면 견주를 징역형에 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애견수와 애견인들이 늘어나는 만큼 개로부터 사람들 안전대책도 현실화돼야 한다.

목줄 없이 개를 데리고 다니거나, 맹견인데도 입마개를 하지 않고 데리고 다닐 경우는 견주를 보다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애견인들에 대한 일정시간 개 관리 소양교육도 필요하다. 개보다는 인명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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