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파업2개월, 공영방송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


파업을 시작한지 벌써 2개월이나 됐는데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괜찮냐’고 애써 묻지도 않았다. 쾌활한 성격에 씩씩하기로 유명한 녀석이지만, 눈물도 참 많은 편이었다. 굳이 예민한 눈물샘을 건드리지 말자 생각했다. 

지금은 폐간된 한 진보매체에서 선후배로 함께 일했던 녀석과 내가 각자의 길로 떠난 지가 벌써 십년도 넘었다. 70여만 원 월급에 불평 한마디 없이 열심이었던 녀석은 보란 듯이 KBS 기자가 됐다. 

소위 말하는 ‘정연주 키즈’였다. 그 때는 그게 가능한 시절이었다. 녀석도 “빨갱이가 들어왔네”와 같은 동료들의 저질스런 수근거림을 당당하게 압도했을 것이다. 노무현이 있었고, 또 정연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이후 공영방송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보도국장이 국정원의 돈을 받고 후배들의 입을 틀어막는 일까지 있었다고 하니, 자존심 강했던 녀석은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 대해 엄청난 자괴감을 느꼈을 법하다. 녀석이 파업을 주도할 위치는 아니겠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게 서서 “공영방송 정상화, 고대영 사장 퇴진”을 외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자괴감을 떨쳐내기 위한 몸부림일 테다.   

그런 녀석이 길바닥에 앉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던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대전역에서 시민들에게 파업 선전전을 벌이고 있던 녀석 앞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녀석의 표현대로라면, 켄터키프라이드 할아버지를 닮은) 분이 미소를 머금고 서 있더란 것이다. 최근 지역대학 총장으로 부임한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모습이었다. 약속된 만남이 아니었으니, 깜짝 놀라기는 정연주 총장이나 ‘정연주 키즈’나 마찬가지였을 게다. 

경황없이 인사를 나눠 찜찜했던 녀석은 정연주 총장에게 다시 안부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정 총장도 ‘잘 참아내라’는 정도의 짧은 답신을 해왔다고 한다. 

녀석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녀석이 느꼈을 자괴감, 10년 전 고초를 겪으며 재판까지 받아야 했던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죄송함, 온갖 생각이 녀석의 머리를 스쳐갔을 터. 눈물을 쉬 멈추기 어려웠을 성 싶다. 

같은 시간, 기차를 타고 있던 정연주 총장 역시 파업대오의 잔상에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녀석이나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자였던 정연주 총장은 엄혹한 시절 해직기자로 살아왔고, 한겨레를 이끌었으며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에 공영방송 KBS 사장까지 역임했다. 까마득한 후배들의 파업이 그에게 어떤 의미일지, 그저 짐작만 해볼 따름이다. 

녀석은 정연주 총장과의 조우를 떠올리며 또 울먹였다. 거창한 정치논리는 입에 담고 싶지 않다. 녀석과 동료들의 싸움이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란 점에서 이 싸움이 빨리 끝나기만을 응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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