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의 예술계 산책] 유재정 저서 『마음을 밝혀주는 등불처럼』

수필가 유재정은 1996년 문학전문지 계간 『오늘의문학』(현재 문학사랑) 봄호 신인작품상에 수필이 당선되어 등단한 분이다. 등단 전에도 그러하였지만, 등단 후에 더 자주 신문과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문인협회나 다른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오로지 글로 사상과 감정을 전하려는 염결(廉潔)한 문학혼을 지닌 분이다.

리헌석 전 대전문인협회장·문학평론가 겸 아트리뷰어
40대에 등단하였으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을 헤아리면 40여 년이 된다. 세월은 흘러 선생도 고희(古稀)를 맞아 첫 산문집을 발간하고자 한다. 여러 문학회에 입회하여 작품을 창작했다면, 더 많은 작품을 빚었을 터이지만, 그는 좋은 작품 창작에 매진할 뿐 다른 단체와 연계되는 것을 피할 정도로 순수한 분이다. 삶의 순수를 작품집으로 엮으며, 선생은 몇 가지 의미를 밝힌 바 있다.

<제1부는,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들을 메스미디어를 통하여 발표하였고, 그것들을 총망라하여 엮었습니다.> <제2부는, 기행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상병의 시 ‘귀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 말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소풍 온 것이라면 가능하면 많은 곳을 돌아봐야 되겠죠?> <우리 부부도 국내외여행을 원하는 만큼은 다니지 못했지만 그나마 다닌 곳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기에 틈틈이 기록으로 남겼고 그것을 한데 모았습니다.>

<제3부는, 자식들이 군에 입대한 후 가족 간에 주고받은 편지들로 이루어졌습니다. 군대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는 것인데 군과 군인들을 비하하는 세력들이 있어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현재 군 복무를 하고 있는 군인이나 군필자들이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 풍토가 하루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책은 수필가 유재정 선생이 고희(古稀)를 맞아 발간한 생애 첫 산문집이다. 평소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 수필가로 등단한 문학전문지 {오늘의문학}에 발표한 산문, 그리고 군에 가 있는 자녀와 주고받은 편지글 등을 모아 발간하였다. 평소의 사랑과 정서가 한 권에 집약되어 해방 이후 가족사면서 우리 민족사의 일부를 한 권에 담아내었다.

유재정 수필가(왼쪽)와 마음을 밝혀주는 등불처럼.
이와 같은 사상과 정서를 담아낸 그의 고희 산문집은 해방 이후 우리 겨레의 삶을 여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오롯한 정서에 감동하고, 독자들의 일독을 권하며, 몇 편의 부분을 인용해 본다.

* 보았습니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지난 현충일, 나라를 지키다 산화하신 충령 앞에 고개 숙여 묵념을 할 때, 반백의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그 눈물은 30 년이 넘도록 흘렀건만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 이맘때가 되면 더욱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온 인생이 너무나 서러워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이 너무나 아쉬워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염원에서 흘리는 눈물입니다.--[어느 할머니의 눈물] 중에서

*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바라본 일본의 농촌 모습과 산천은 우리의 것과 아주 흡사했다. 산이 그렇고 나무가 그렇고 심지어 추수한 들판에서 무리 지어 노니는 까마귀들조차도 낯설지가 않았다. 그토록 닮아 있고 거리상으로 가까운 이웃나라, 그럼에도 우리는 일본을 두고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지리적으로야 가깝지만 정이 안 가는 나라, 과거에 많은 은덕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구 짓밟는 배은망덕한 나라, 우리 민족 자체를 말살해 버리려고 발악을 했던 나라, 그래서 생긴 앙금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감당키 어려운 무게로 짓누르고 있다.--[짧은 여행 긴 여운] 중에서

* 엄마도 일요일에 절에 가서 기도했어. 너의 훈련 생활을 잘 참고 이겨내는 힘을 갖게 해달라고…. 너도 법회에 참석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요령 있게 훈련 해야지 몸살 나지 않도록 체온 조절을 잘 해. 부대 배치는 미리 걱정하지 마라. 어디가든 장단점이 있으니까. 모든 일을 순리대로 적응하려는 마음으로 편히 생각해. 좋은 곳으로 배치되도록 서로 기도하자. --[군에게 아들에게 보낸 서신] 중에서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