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38>

발리지도.
발리 섬은 자바 섬과 약1.6㎞, 동쪽으로 약35㎞ 떨어진 롬복 섬의 중간에 있는데, 자바의 중부산맥이 해저로 이어진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 낀다마니(Kintamani)에는 유명한 화산들이 있다. 반면에 롬복과는 수심 1000m가 넘는 롬복해협으로 갈라져 인종은 물론 동․식물 분포 등에서도 큰 차이가 있어 롬복 주(州)가 있다(롬복에 대하여는 2017.09.01. 발리(1) 참조).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낀다마니는 덴파사르에서 동북쪽으로 차로 약2시간가량 떨어졌는데,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마치 구렁이처럼 빙글빙글 돌아서 올라가는 산길이었다. 상하의 나라 발리에서 고산지대는 연평균 기온이 18~23도 정도로 시원해서 부자들과 외국인의 별장이 많을 뿐 아니라 유명한 리조트․호텔․온천․레스토랑도 많다.

사실 고지대에 별장이나 리조트 등을 짓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반둥이나 자카르타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코끼리 사원을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니 툭트인 넓은 고원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이곳이 바투루 고원이다.

전망대는 도로변의 보행자 도로보다 약간 넓은 공간으로서 전망대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이고, 화산폭발로 화산재에 묻혀있던 폼페이 유적은 물론 반둥(Bandung)의 해발 2096m의 활화산 땅꾸반 쁘라후(Tangkuban Perahu)까지 직접 가보았던 나로서는 전망대에서 계곡 너머로 화산의 흔적만을 바라보는 것에 적잖게 실망했다. 아무튼 계곡 건너 바로 바라보이는 산이 아방 산(Abang Mt.: 2153m)이고, 그 오른쪽이 바투루 산(Batur Mt.: 1717m)인데, 두 산 사이에 초승달 모양의 바투루 호수가 있다.

발리 농촌 멀리 아궁산이 보인다.
바투루 산은 1963년 3월에도 화산분화구에서 다시 화산이 분출된 이중화산으로서 화산폭발 때 흘러나온 용암이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계곡을 모두 매몰시키고 낀따마니, 바투루, 베네로칸 등 3개의 마을이 매몰되면서 1500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화산 폭발 때 용암이 계곡으로 흐르면서 계곡이 넘쳐 비교적 높은 능선까지 용암이 덮쳐서 계곡이던 곳에는 시커먼 용암이 시커먼 고약처럼 굳어 있고, 고지대에는 화산폭발 때 불에 탄 고목들이 남아 있고, 용암이 계곡을 메울 때에도 넘치지 않은 고지대의 산에는 나무와 숲들이 파란 것이 이채롭게 보였다. 또, 화산에서 흘러내린 물과 아방 산과 바투르 산 계곡에서 자연적으로 흘러내린 물이 고인 바투루 호수는 화산과 함께 아름다운 모습으로 관광객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바투루화산(전국지리교사모임홈피).
한편, 발리에서 최고봉이자 인도네시아에서 5번째 높은 아궁 산(Agung; 3,142m)은 구눙 아궁(Gunung Agung)이라고 부르는데, 인도네시아어로 구눙(Gunung)은 '산', 아궁(Agung)은 '신성함'을 뜻한다. 바투루 화산 지역에서 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아궁 산은 현지인들은 힌두교에서 선악을 구분하는 자연물 중 좋은 것, 신성한 것의 대표가 아궁 산이고, 반대로 나쁜 것, 불길한 것은 ‘바다’라고 여기면서 신성함 그 자체이어서 집을 짓거나 기도를 할 때도 아궁 산을 바라보며 행할 만큼 발리 인들이 신성시하는 산으로서 1820년 화산폭발 이후 1963년에도 다시 폭발했는데, 20세기 화산폭발 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아궁 산은 날씨가 좋으면 발리 어디에서도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우뚝 솟아 있으며, 산악트레킹을 하는 산악인들이 4시간 이상 등산하여 정상을 답사하기도 한다. 현재 아궁 산에는 3곳에 화산 관측소가 설치되어 있다.

아궁산분화구(발리 관광청).
 인도네시아의 대부분 지역에서 이슬람을 믿는 것과 달리 발리 주민 9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데, 발리에는 1527년 자바에서 융성하던 마자파힛 왕국이 이슬람세력에 쫓겨 온 후 힌두교를 크게 발전시킨 고승 무프 쿠투란(Mpu Kuturan)이 세운 울루와뚜 사원(Ulu watu)이 유명하다. 울루(Ulu)란 발리어로 ‘머리(Head)’를 의미하고, 와투(Watu)란 ‘바위’를 의미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약70m 높이의 절벽 위에 지은 사원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돌로 만든 배와 같은 모습이어서 ‘절벽사원’으로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울루와뚜로 가는 도중에 인도네시아의 라마야나 전설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보았는데, 상당히 거작일 뿐만 아니라 정교함도 매우 뛰어났으나 시멘트 구조물인 것이 조금은 성의가 없어 보였다.

바투불란 민속공연.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할 때, 보자기와 같은 천을 빌려주어서 그것을 치마처럼 두르고 입장했다. 이것은 인도인의 전통 치마인 사롱(Sarong)으로서 힌두교 율법상 노출된 차림으로 사원을 입장할 수 없어서 반바지 차림의 관광객에게 무릎 아래를 가리도록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 바라봐도 여간 우스꽝스런 모습이 아니었다. 다만,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힌두사원을 입장할 때마다 치마를 빌려주면서 1천 원씩 냈던 것을 생각하면 큰 횡재를 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동물원에 온 착각이 들 만큼 원숭이 천지에  원숭이들은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관광객의 모자며, 안경․가방들을 낚아채고 달아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바투불란 민속공연.
경내로 약200m쯤 들어가니, 탁 트인 조망과 함께 낯선 신세계가 펼쳐졌는데, 사원 양쪽으로 약10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이 요새처럼 방어하고 있어서 사원 건물이 마치 3면의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같아보였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작은 봉우리 끝에 있는 작은 사원이 울루와뚜인데, 이곳은 힌두교도들만 참배가 가능하고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한다고 했다.

절벽사원 조감도.
절벽사원은 오로지 절벽에 위치한 독특한 석탑이라는 점에 가장 특징이 있는 것 같았는데, 절벽사원을 나와서 낭떠러지인 해안가에 추락을 막기 위한 콘크리트 담장이 길게 세워진 곳은 몇 년 전 모TV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촬영지이자 영화 ‘빠삐옹’에서 주인공이 감옥을 탈출하여 바다로 다이빙을 했던 촬영지라고 했다. 물론, 그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지 않은 나로서는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절벽사원 내부.
절벽사원 부근에는 여러 사원이 있어서 그 중 폐허가 된 사원 몇 군데를 들렸는데, 한 곳은 어느 기업체가 실내수영장, 승마장과 별장 등을 만들고 관광객의 숙소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다만, 바닷가에서 사원까지 곧바로 올라 갈 수 있도록 좁은 계단을 만든 길 중간에 커다란 석조(石槽)는 당시 사원의 승려들이 마시는 물탱크였다고 한다. 그런데, 폐허된 사원들 사이에 넓은 산을 담장을 마치 성벽처럼 쌓고 무장 경비병이 지키는 곳이 군부대인줄 알았더니,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별장이라고 해서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절벽사원 외부.
발리여행 마지막 날 저녁에는 짐바란 해변(Jimbaran bay)을 찾아갔다. 발리 최남단에 있는 이곳은 젊은이들이 바다를 조망하고 산책하기에 좋을 뿐 아니라 나뭇가지로 얽어서 만든 선착장을 바라보는 일몰(Sunset)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다. 우리도 그 선착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뒤, 해안가에 있는 포장마차 중 한곳에 들어가서 시푸드로 저녁식사를 했다. 음식점 대부분은 일본인들이 영업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와 같은 일식이 아니어서 약간 실망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호텔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서 해수욕을 했다.

짐바란 해변.
바닷가 옆의 호텔을 예약했지만, 발리에서는 해수욕이 주목적이 아니어서 유적지만 찾아다니다가 정작 바닷물에 몸을 담가보지도 않은 채 떠나게 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푸른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다가 호텔로 돌아온 뒤에는 호텔 마당에 있는 수영장에서 바다의 짠물을 씻어낼 겸 가벼운 수영을 했는데, 대부분 우리처럼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고 호텔 수영장에서는 소금물을 빼내는 정도였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2시, 덴파사르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자카르타까지는 논스톱으로 1시간40분 걸리지만, 자카르타는 발리보다 1시간 늦어서 우리는 자카르타 시각으로 불과 40분만인 15시에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밖에서 본 절벽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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