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바른 언행은 처세의 기본

황희 정승이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에 들길을 가다 나무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한 농부가 소 두 마리로 밭을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마리는 누런 소고 다른 한 마리는 검은 소였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 황희는 농부에게 “황소와 검은 소 중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농부가 쟁기를 세우고 밭에서 나오더니 황희를 멀리 떨어진 곳까지 데리고 가서는 아주 작은 귓속말로 “누런 소가 훨씬 일을 잘합니다. 검은 소는 일도 못하면서 꾀를 부립니다”하고 말했다. 황희는 이상해서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귓속말을 하십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농부는 “아무리 짐승이라도 저에 대한 이야기는 알아듣습니다. 저 잘못한다는 말을 듣고 좋아할 짐승이 어디 있겠습니까?”하고 말했다. 황희는 밭가는 농부의 말에 크게 깨달았고, 이후로 집안 노비에게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을 정도로 언행을 조심해 영의정에까지 오르는 큰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백정은 천한 신분이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천대받기 일쑤였다. 어느 날 양반 둘이 백정이 낸 푸줏간에 고기를 사러 갔는데, 한 양반은 다짜고짜 이름을 부르며 “야, 상길아. 여기 고기 한 근 다오”했다.
그런데 다른 한 양반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반말하기가 거북해서 점잖은 말로 “박 서방, 나도 한 근 주시게”했다.
잠시 후 푸줏간 주인이 고기를 건네는데, 반말을 한 양반의 고기보다 점잖은 양반의 고기가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먼저 주문한 양반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 놈아, 같은 한 근인데 이 사람 것은 크고, 내 것은 어째 작으냐?”
“예, 손님 고기는 상길이란 놈이 자른 것이고, 이 어르신 고기는 박 서방이 잘랐습니다.”하고 푸줏간 주인이 대답했다.
 
한 양반은 말을 함부로 해서 손해를 봤고, 한 양반은 품위가 있는 말을 해서 이득을 봤다. 듣기 좋은 말은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인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도 좋은 말을 골라 쓰고, 가급적 나쁜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2년 여 전인가 부산시의 권모(某) 경찰청장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 직원에게 보고가 늦다는 이유로 동물에 빗대는 험한 욕설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고, 끝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를 한 일이 있었다. 장래가 유망한 사람으로 소문이 났었는데, 그 후로 어찌됐는지 언론에서 잊혀 진 듯하다. 이는 말을 함부로 한 때문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언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 언행을 함부로 해서 창피를 당하고 사법처리까지 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얼마 전에 호식이 치킨-두 마리 치킨으로 이름난-의 김모 회장이 나이 어린 여직원에게 몹쓸 언행을 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이 그렇고, 유수한 제약회사인 종근당의 이모 회장이 자기 차를 운전해 주는 사람에게 험한 욕설을 내뱉는 육성이 언론에 공개돼 갖은 창피를 당하고 공개사과를 한 일이 그렇다.
 
최근에는 육군 장성의 공관에 근무하는 병사에게 장성의 부인이 인격모독적인 말을 하고 사적인 일을 시켰다는 이유로 4성 장군이 전역신고를 하는 일까지 있었다. 필자에게는 다소 과장되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국회에서 행하는 인사청문회나 국정조사활동 모습을 생중계로 보노라면 일부 국회의원의 몰상식한 거친 말과, 안하무인의 눈꼴사나운 행동은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이들도 스스로 한 말에 대한 대가를 다음 선거에서 치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돼야만 한다. 무식한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돼서는 결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口是禍之門)’라는 말과,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舌是斬身刀)’라는 말이 있다. 옛 중국 후당(後唐) 때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5왕조 8성씨 11군주를 모신 처세의 달인-라는 정치가가 남긴 처세관(處世觀)의 일부이다.
 
청운의 푸른 꿈을 꾸는 젊은이나, 이미 성공해 사회적 신분이 높아진 사람이나, 평범한 삶을 사는 필부필부나 한 번 쯤 새겨볼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는 밭가는 농부로부터 일생동안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는 교훈을 얻은 황희 정승도 훌륭하지만, 소 부려 밭 갈며 농사나 지으면서도 ‘짐승에게도 말조심을 해야 한다’고 몸으로 가르쳐준 밭갈이 농부야말로 훌륭한 인재가 아닌가 생각된다. 무명의 밭갈이 농부야말로 황희 정승에게는 맑은 샘물 같은 스승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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