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의 예술계 산책] 이선희 시인의 첫 시집 『마중 편지』

이선희 시인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매월 말에 시 1편을 지어 이웃들과 나누었다. 지나온 한 달을 반성하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다음 달을 마중하는 마음을 시로 지어 인터넷과 전화 문자로 소통하였다. 반성하는 생활과 기대하는 소망을 순수하게 담아낸 작품을 감상한 지인들로부터 시집 발간을 여러 번 종용받았다. 그리하여 시로 쓴 편지와 몇 편의 작품을 추가하여 『마중 편지』를 발간하였다.

리헌석 전 대전문인협회장·문학평론가 겸 아트리뷰어
1부는 5년간 쓴 월령체 시(詩)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작품은 2012년 6월을 맞으며 쓴 시입니다. <나의 대문은/ 사립문으로 할래요./ 접시랑 보시기를 담은 쟁반이 넘나들기 쉽도록> 낮은 울타리를 두르고 싶다는 정서를 선보인다. 동시에 그는 <더위와 장마의 6월이지만/ 그래도 기다립니다./ 구름 같은 내일이/ 만질 수 있는 빗방울>을 기다리는 6월을 마중한다. 이어 9월을 맞는 8월 말일에 <뜯어내고 남은 몇 장의 가벼움/ 갖가지 핑계로/ 공중분해하듯 흩어지고/ 닭 모이만큼 남은 월급봉투>를 걱정하는 생활인의 소박한 내면도 담아내었다.

‘시로 쓰는 일상’ 속에서 그는 우리말의 정겨움과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혜안을 보인다. 말뚝잠(앉아서 자는 잠), 또바기(언제나 한결같이), 도둑눈(밤새 내리는 눈), 보늬(밤이나 잣의 속껍질), 잔달음(바끼 뛰어가는 걸음), 비라리(구구에게 남에게 무엇을 청함), 어깨동갑(한 살 정도 차이 나는 동갑), 햇귀(해가 처름 솟을 때의 빛), 앙가조촘(일어서지도 앉지도 않은 모양), 새물내(새 것에서 나는 냄새), 엄펑소니(의뭉스럽게 남을 속이는 짓), 까막별(빛을 내지 않는 별), 너울가지(남과 잘 사귀는 솜씨) 등 낯익지 않지만, 순 우리말을 찾아 작품에 활용하여 국어사랑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다.

2부는 자신이 존경하는 분, 그리고 추억의 몇몇 가닥을 노래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운 수녀님」에서는 <안누치아타 수녀님/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연달아 아주 많은 단어들이 다투어 떠오릅니다.>라고 추모하면서 <당신이 믿어주고 씨 뿌린 무감독 고사는/ 날카로운 금속성으로/ 세상을 지키는 양심이 되었습니다.> 추모한다. 상대평가로 대학에 가야하는 세상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무감독 고사를 실천하신 분, 한국의 페스탈로치라 할 수 있는 안누치아타 수녀님의 소천을 맞아 지은 추모시다.

3부는 손자(별명 짱이)를 따뜻한 눈길로 지키는 ‘할머니 바보’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 인연을 <씨앗 하나/ 바람을 타고 와/ 마침내/ 우리 곁에 새로운 꽃성 하나를 지어내어/ 옥돌보다 맑고/ 밧줄보다도 굵은 인연>을 감사한다. 그 씨앗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름답고 훌륭한 숲이 되도록/ 풀이어도, 꽃이어도, 나무이어도/ 아무러나/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기를 소망한다.

이와 같은 작품을 모아 시집을 발간하면서 이선희 시인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순의 나이가 되면서 이제까지처럼 쫓기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매월 새달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글을 한 줄씩 쓰고 마중편지라 이름을 지어 가까운 분들과 나누다 보니 가끔 기다리는 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이 되어 5년이 흘렀습니다.> <저의 생활의 한 부분을 도와주신 분들에게 드린 감사의 편지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 지인 원희자 화가의 그림으로 표지를 삼은 시집은 깔끔하며 서정적이다.

범사에 감사하며, 삶의 오롯함을 작품으로 빚어내는 이선희 시인은 오늘을 반성하며 옷깃을 여미리라. 더 밝고 아름다운 내일을 소망하며 아름다운 작품을 빚어내어, 앞으로 여러 권의 시집을 발간하리라. 그 시집을 읽은 사람들과 함께 삶의 여유를 공유하며 우리 말글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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