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오늘은 ‘실내 정숙’에 대해서 학급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이 주제에 대해 말씀해주실 분 있으십니까?”
아무도 없다. 결국 회의를 주재하는 반장이 제일 만만한 친구를 콕 집는다.
“김철수 학생, 일어나셔서 발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실내 정숙은..... ”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이러한 학급회의 풍경은 학교를 거쳐 온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학급회의는 실상 학교가 정한 회의 주제나 안건을 토의하는 것으로 결론은 결국 “실내 정숙을 위해 쉬는 시간에도 조용히 공부합시다”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간은 그저 하라니까 하는 분위기로 그 누구도 진지하지 않았다. 물론 담임교사의 눈이 있어 진지한 척 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형식적인 학급회의마저도 이제는 대부분 고등학교에서 드믄 일이 되고 말았다. 대신 영어, 수학 쪽지시험이 들어선 것이 지금의 일반적인 상황이다. 학교에는 비교과 영역의 학습을 창의적 체험활동이라 하는데,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의 4대 영역이 있다.

이 가운데 자율활동은 학급이나 학교 구성원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참여를 중시하는 영역으로 적응활동과 자치활동, 행사활동, 창의적 특색활동 등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자치활동은 학급회, 학생회 협의활동, 모의 의회, 토론회, 자치법정 등이 있다. 그런데 이 학급회가 중등에서는 거의 유명무실하여 일부 학교의 학생들은 존재 자체도 모른다. 다만 그 활동이 생활기록부의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학생회 대표들 모여 협의할 수 있는 토론마당 연 충남도교육청

충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6월 7일 학생회 및 학생자치회 대표 29명은 고등학생 네트워크 협의회에 참석해 학생관련 정책에 대한 토론을 펼쳤다고 한다. 그리고 참석 학생들은 ‘학생회의실과 학급회 정례화’, ‘학생회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 등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학생의 의견을 수렴한 학생생활규정 제ㆍ개정으로 인권친화적 교육환경이 조성되기를 희망했다는 것이다.

도교육청이 학생회 대표들이 모여 협의할 수 있는 토론 마당을 연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학생 대표들이 학급회의 정례화를 요청했다는 것은 학교에서 학급회를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학교 생활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의견이 수렴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오로지 입시 성적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학생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학급회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을 서로 존중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곧 민주주의의 학습이다.  이 과정은 결국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게 돕는 활동으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학급회의는 그동안 형식적이었을까? 그것은 학급회가 자주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학교생활과 관련해서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는 주제가 없는 것이다. 두발과 복장만 해도 학급회를 거쳐 학생회가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또한 아침 등교시간과 같은 생활 영역의 각종 사항에 대해서도 학생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학급회의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도 학급회의에는 학교나 담임교사에 건의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학교생활과 관련한 대부분의 내용은 학생들의 권한 밖이라 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학급회·학생회 논의사항 학교장·교직원 대표·학생회 대표 원탁회의서 최종 결정

앞으로 학교에서 학급회를 거쳐 학생회에서 논의한 주요 사항을 학교장과 교직원 대표와 학생회 대표 등이 원탁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하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그동안 학교내에서 학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나누는 것으로 학교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우리의 학생들은 학교내 자치를 이루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다만 관료들과 교사가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가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역량이 있네, 없네를 말하면 안 된다. 학교는 배우고 익히는 곳이다. 민주적인 절차로 자주적인 회의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면 학교는 민주주의의 배움터가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공동체를 스스로 만드는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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