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중편소설] Ⅳ. 우리는 친구-1

이광희 作.
“돌아가면 다시는 네들과 안 어울려. 오랜만에 여행 왔더니 사람 속을 뒤집질 않나. 무슨 내가 돈이나 떼먹는 수전노로 몰지를 않나. 정말 후회스럽다. 네들과 이곳에 온 것이.”
오 원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하 동문이야. 입만 아프다.”
김 사장이 고개를 돌렸다.
“나도 이하 동문이다.”
이번에는 박 교수도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밤새 서로 싸우는 사이 동쪽 사막 너머에서 해가 어렴풋이 밝아왔다. 붉은 기운이 사막전체를 그득하게 채웠다. 하이에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닥불도 사거라든지 오래였다. 회색빛 재만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새우잠을 청하려는 참 이었다.

어둠 저편 멀리에서 자동차 라이트불빛이 치솟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사막을 지나는 차량의 불빛이 분명했다. 그것을 먼저 본 사람은 김 사장이었다.
그가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바람에 잠이 깼다. 김 사장은 라이트를 깜박거렸다. 경적을 요란하게 울렸다. 박 교수와 오 원장은 차에서 뛰어내려 옷을 벗어 흔들었다. 다시 비상등을 켰다. 막막한 새벽하늘에 하이 빔을 쏘아 올렸다.

오 원장이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도와주세요.”
물론 그 소리는 그리 멀지않은 곳에 소복하게 쌓이는 것이 보였다.
난리를 죽였지만 반응은 없었다.
다만 저 언덕너머에 자동차가 지나는 길목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오원장이 차에서 자신의 배낭을 챙겼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상황이라 싸늘한 한기가 사막 곳곳에 고여 있었다.
오 원장은 물병을 챙겨 넣고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어디 가려고?”
박 교수가 물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잖아.”

오 원장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저기 차가 지나는 곳까지 가봐야지.”
“그럼 같이 가자.”

박 교수가 차에서 내려 자신의 배낭을 챙겼다. 김 사장은 멀뚱하게 핸들만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혼자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김 사장도 서둘러  짐을 챙겨 그들을 뒤를 따랐다.

오 원장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박 교수가 따랐다. 그리고 조금 지난 지점에 김 사장이 그 뒤를 이었다.

오 원장은 비 맞은 중처럼 혼자 중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나쁜 놈들. 더러운 놈들이야. 의리도 없고 정도 없는 놈들이야. 저런 놈들과 내가 엮여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어. 돌아가면 다시는 볼일이 없을 거야. 치사하게 돈 몇 푼 안 되는 거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쓰레기로 몰아. 김 사장 저 자식은 정말 나쁜 놈이야. 그렇다고 박 교수 저자식도 좋은 놈은 아니야. 늘 제 것밖에 모르는 놈이야. 친구라고 먼저 생각을 해준 적이 있어? 담배 한 모금 줄때도 치사하게 악착같이 한 모금 더 빨고 꽁초만 넘겼잖아…….”

그의 말소리는 뒤를 따르는 박 교수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모래언덕을 지나 오로지 불빛이 솟았던 곳만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그의 뒤를 박 교수가 따르고 있었다.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밭을 밑만 보며 걸었다.

“정말 치사한 자식들이야. 오원장도 그래. 돈 많이 버는 놈이. 병원 지은 지가 언젠데 지금까지 그 몇 백 만원을 안주고 있어. 정말 치사한 거지. 나 같으면 즉시 처리하고 말지. 저런 지저분한 이야기를 듣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일종의 원인의 법칙이랄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뭐 이런 것 아니겠어. 그렇다고 김 사장 저자식도 마찬가지야. 그래 땅값하고 건축비하고 함께 계산하기로 했으면 그렇게 해야지. 땅값은 땅값이고 건축비는 건축비라니. 친구지간에 말이 돼. 아주 더티한 놈들이라니까. 학교 다닐 때도 그랬잖아. 김 사장 저 자식은 음식 먹고 먼저 튀고, 오 원장은 끝까지 다 먹고 나오려다 식당 주인에게 잡혀서 들통이 나도록 하고. 물론 나도 같이 튀기는 했지만 말이야.” 
박 교수가 중얼거리며 뒤를 따랐다.

“나쁜 놈들, 더럽고 치사한 놈들이야. 내가 부도직전까지 갔을 때 그렇게 잔금 좀 마무리 짓자고 했을 때는 눈도 깜짝 안하더니. 회사가 잘나가니까 뭐 친구 어쩌고저쩌고. 지금이야 몇 푼 안 되지만 그때는 단돈 십 원이 아쉬웠다. 이 더러운 놈아. 그 돈에 부도가 나고 안 나고, 외줄을 탔는데 무슨 몇 백 만원 이라니. 단돈 십 원도 깎아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 더러운 수전노 자식. 박 교수 저놈도 마찬가지야. 이 붉은 사막을 고집한 게 누군데. 어려워지니까 모든 책임을 싹 돌리고. 저는 쏙 빠져. 어릴 때부터 그랬다니까. 담배 피우다 걸렸을 때 고자질해서 저는 빠져나가고 우리만 죽도록 맞게 한 놈이 저자식이야. 그때 알아봤어야 했어. 더럽고 치사한 놈들.”
김 사장 역시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 생각하면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다시는 돌아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세 사람의 발자국이 꼬불꼬불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오원장의 뒤를 따르던 박 교수가 바짝 다가갔다.
“뭘 중얼거리며 가냐?”
“아무것도 아니야. 혼자 하는 소리지.”

오 원장이 말했다.
“김 사장 저 자식 생각보다 쪼잔 해. 술 한 잔 값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여기까지 와서 속을 긁을 것은 또 뭐야.”
박 교수가 앞서가던 오원장의 뒤통수를 보며 말했다.
“일찍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고삐리 때도 저 자식 때문에 부모님께 얼마나 혼났다고. 천박하게 놀면 천박해지는 거라고 말이야.”
“그야 그렇지. 저자식이 어릴 때 우리 집 아랫방에 살았잖아. 쟤들 아버지가 머슴으로 살았다니까.”

박 교수가 말했다.
“그래? 그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품격이 낮아. 같이 놀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있다니까.”
“너도 그런 것을 느꼈냐?”
“그럼, 그때가 언제냐. 한번은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오죽하면 내가 고개를 돌렸겠어.”
“ 왜?”

박 교수의 말에 오 원장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기관 사람들 같았는데. 상 밑을 기어 다니더라니까. 발바닥이라도 핥으라면 핥겠더라고. 친구라고 말하기도 역겨웠어. 방안에서 넙죽거리며 웃음을 팔더라니까. 사내자식이.”
“그 지경이야?”
오 원장이 맞장구를 치듯 되물었다.
“그렇다니까. 그래도 자식 내 술값은 내고 나갔더라.”
“..........”
“돈은 벌었지만 품격은 영 아니야. 머슴 아들이었으니 오죽하겠어.” 
박 교수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들 둘이 자분거리며 말을 주고받으며 걸었다. 모래언덕을 넘고 움푹 패여 웅덩이가 된 와지를 돌았다. 평탄지를 가로지르고 무릎까지 모래가 빠져드는 사상도 건넜다.
동쪽에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사막은 불기운을 받아 더욱 붉게 변했다. 온통 붉은 색뿐이었다.

해가 뜨면서 모래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모래먼지가 볼을 핥으며 지나갔다. 목도리로 입을 감싸고 고글을 내렸다. 더욱 거센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발이 빠져들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뒤를 돌아보았다. 모래바람 속에 저만치 뒤로 김
사장이 머리를 숙이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앞서가던 오원장과 박 교수의 발자국만 보며 따라오고 있었다. 김 사장 역시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나쁜 놈들. 왜 이런 곳에는 오자고 해서 사람을 골탕을 먹여. 박 교수가 더 나쁜 자식이야. 붉은 사막은 얼어 죽을 붉을 사막이야. 뭐 볼게 있어. 이 모래바람이 볼거리 인가.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따뜻한 호텔 탕 속에 들어가 있을 건데. 왜 따라와서 이 고생이냐. 수영장도 좋아 보이던데. 혼자서 나른하게 잠이나 잘걸. 저놈들과 역기는 것 자체가 실수였어. 좀 배웠다고. 거들먹거리지 않나. 세상물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모르는 놈들이. 하루아침에 사장된 줄 알아. 삭막한 막노동판에서 사장까지 오르려면 얼마나 시련이 많았는지 제 놈들이 알기나 해. 눈 돌리면 코 베가는 세상에서 살아남은 나야. 그런데 온실 속에서 살아온 놈들이 어떻게 인생을 알아. 무식한 놈들.”

김 사장은 사막을 내려다보고 걸었다. 모래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어왔다. 해가 뜨면서 기운이 요동치듯 바람도 그렇게 불었다. 
그들이 한참을 걷고 난 뒤에도 모래바람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희뿌연 먼지 속에 태양이 어슴푸레하게 올려다보였다. 열기가 쏟아졌던 것과는 달리 한기가 몰려왔다. 바람에 체온이 날아간 탓이었다. 외투를 당겨 입고 스카프를 더욱 단단하게 추수렷다.

오 원장과 박 교수의 얼굴이 모래먼지로 뒤덮여 알아볼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붉은 먼지가 눈썹위에도 하나 가득 쌓였다. 무모한 걸음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우리가 제대로 찾아가는 걸까?”

박 교수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맞을 거야. 저쪽에서 빛을 봤어. 똑바로만 가면 자동차들이 다니는 길목이 있을 거야.”
“이 사막 한가운데서 그런 길목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어.”
“그래도 가야지.”

오 원장이 말을 잘랐다. 여전히 두 사람이 앞에서 걷고 김 사장이 뒤를 따랐다.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다. 김 사장과의 거리가 조금은 더 멀어졌다.
모래바람 속에 어렴풋이 보였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다. 안개 속을 걷는 것과 흡사했다. 더욱 곤혹스럽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김 사장은 스카프로 머리를 감싸고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느라 몸을 돌렸다.

“돌아가면 저런 놈들과는 어울리지 말아야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야. 저런 인간들이 무슨 친구야. 얼어 죽을. 돈이 되나 밥이 나오나. 치사 빵구같은 놈들. 박 교수 자식은 정말 몹쓸 놈이야. 언제 밥 한 끼 사봤어. 돈은 내가냈지. 지난번에 김치찌개 집에서도 그래. 먼저 나서더니만 신발 끈을 매고 있었잖아. 오 원장은 동작이 굼떠 뒤에 따라 나오고. 그러면 누가 내는 거야. 나만 지갑을 열어야 하잖아. 어디 한 두 번이야. 약은 놈이라니까. 오원장도 그래. 병원에 갔을 때, 돈 몇 푼 된다고 나한테 치료비를 받아. 썩을. 저는 의료보험료 받잖아. 그러면 공짜로 해주면 안 돼? 병원 잔금도 안 준 놈이. 그 몇 천 원까지 꼬박꼬박 받아요. 직접 받으면 꼬질 해 보일까봐 간호사애들한테 시켜서……. 내가 모를 줄 알아. 더럽다 더러워. 몇 천 원에 인생이 죽고 사냐. 치사한…….” 

김 사장의 투덜거림이 모래바람에 날아갔다. 그들은 앞뒤 간격을 두고 모래바람 속을 나아가고 있었다.
“차를 조심성 있게 몰았으면 이지경은 아니잖아. 핸들을 넘긴 게 잘못이야. 저런 놈한테 핸들을 왜 넘겨. 네가 넘겼지.”
박 교수가 오 원장을 보며 말했다.

“아니야. 네가 넘겼잖아. 찬찬히 몰다 길 좋은 곳에서 넘기지 하필 그런 곳에서 핸들을 넘기냐.”
“내가 그런 곳인 줄 알았나.”
“에이. 못마땅해. 이번에 돌아가면 헤어지자. 친구고 뭐고 파산시키자.”
오원장이 말을 씹었다.
“그래. 나도 섭섭할 것 없어. 30년 넘게 만났으면 됐지. 또 얼마나 더 만나냐. 짧은 인생에 더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뭐하려고 더 만나. 이제 헤어지자고.”

박 교수도 까칠한 말투로 받아쳤다.
“좋은 생각이다. 고삐리 때부터 중년이 다되도록 만났으면 우리도 많이 만났어. 이제 헤어져도 여한이 없어. 각자 갈 길을 가자고.”
“그래.”

이광희 作.
박 교수가 걸음을 늦추었다. 오원장과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져갔다. 짙은 모래먼지 속을 세 사람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각자 걷고 있었다. 희뿌연 모래바람 속을 걸어가는 세 사람. 그 자체가 그림이었다. 

“오 원장 저자식도 아직 정신 못 차렸어. 자기가 무슨 대단한 놈인 줄 알아. 어린 애들 얼굴 까뒤집어 돈 버는 주제에. 어찌 보면 천벌을 받을 놈 아닌가. 멀쩡한 아이들 얼굴을 벌집 쑤시듯 해놓고 돈벌어먹는다는 것이 말이야. 양심도 없는 놈이야. 일찍 알아봤지 내가. 언제야. 허위로 수가조작해서 의료보험 챙겨먹다 걸렸잖아. 내 동기가 심평원 이사장이라고 특별히 부탁해서 없던 일로 했던 것이 생각나네. 그 봐. 말이나 될 법한 얘기야. 국민의 세금을 갈아먹는 놈이야. 원장이라니까 대단한 것 같지만. 속이 보인다 보여. 김 사장도 마찬가지야. 저 자식은 더하지. 그러고 보면 양심에 털 난 놈이야. 일찍부터 싹수가 노랬잖아. 고 2 땐가 생각난다. 커닝 시켜주면 빵 사준다고 하더니. 뭐야. 한 칸씩 밀어서 썼다가 빵점 맞았다고 빵은커녕 욕만 태배기로 했잖아. 내가 그렇게 쓰라고 했나. 자기가 잘못 써놓고, 더러운 자식이야. 솔직히 친구할 놈들은 아니야. 마지못해 친구하고 있는 거지.”
  
하나같이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골이 난 표정들이었다. 모두 입을 씰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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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트뉴스24 사장·소설가
이광희 소설가는 지난 1997년 구인환 선생과 윤병로 선생의 추천으로 천료되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붉은새> 상·하, <청동물고기> 1·2·3권, <소산등>, <문화재가 보여요>, <충청혼맥> 등이 있다. 현재는 본보에 연재소설 <진시황과 여>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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