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괄의 신비한 산야초] 혈액순환·기 순행 도와줘

마당의 조그만 물동이에 연(蓮)을 심어보고자 신매리 연꽃저수지를 들렀다. 저수지는 가뭄으로 바닥을 거의 드러내고 있다. 마침 모내기는 거의 끝났지만 이상 기온으로 가뭄이 심해 논바닥이 거북등 같다. 한 농부가 그곳에 양수기를 들이대고 마저 남은 물을 끌어 논에 대고 있다. 금년에는 봄 가뭄이 심해 농작물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니 농민들의 속 타는 심정이야 오죽하랴 싶다. 

송진괄 대전시 중구청평생학습센터 강사
뜰에는 보리가 여물어 황금벌판이다. 산자락을 따라 길게 이어진 밭에 누런 보리가 실하게 영글었다. 지난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고 결실을 본 것이다. 우리 몸에 좋은 보리가 주식(主食)에서 밀려 소외당하는 세태에 저렇게 고집스레 농사를 짓는 밭주인이 대견스럽다.

연뿌리를 얻고 좁은 시골길을 돌아 나오는데 흙벽담 너머로 뜰보리수나무 열매가 대글대글 열렸다. 햇빛에 비친 새빨간 열매가 통통하니 먹음직스럽다. 농익은 붉은 열매가 만지면 터질 것 같다. 가지를 휘어 몇 개 따서 먹어보니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이제는 이런 걸 따 먹어주는 사람도 귀한 세상이 되었나보다.

어린 날 궁하던 시기에 붉고 큼직한 열매는 먹고 싶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뜰보리수나무 열매는 탐스럽다. 왕보리똥나무로도 부르던 이 나무는 지금은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내 정원에도 관상용으로 심는다.

뜰보리수나무는 보리수나무과의 낙엽 관목으로 4m 정도 자란다. 나무줄기는 회갈색으로 어린 가지에는 적갈색의 인모(鱗毛)가 생기며 긴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나며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꽃은 4~5월경에 잎겨드랑이에서 연한 황색으로 핀다. 타원형 모양의 열매는 5~6월에 적색으로 익는다. 다른 이름으로 보리똥나무, 보리밥나무로도 불린다.

뜰보리수나무는 일반적으로 산에서 자라는 보리수나무와는 다른 종류다. 뜰보리수나무는 봄에 꽃이 피고 여름이 오기 전에 결실을 하지만, 보리수나무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가을에 산자락에서 주로 만나는 보리수나무는 팥알만 하다. 뜰보리수는 보리수나무 열매에 비해 더 굵고 붉다. 

한의 자료에 의하면 뜰보리수나무의 열매와 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 열매는 목반하(木半夏)라는 생약명으로 혈액순환을 개선시키고, 기(氣)의 순행을 도와준다.
한의 자료에 의하면 뜰보리수나무의 열매와 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 열매는 목반하(木半夏)라는 생약명으로 혈액순환을 개선시키고, 기(氣)의 순행을 도와준다. 이런 약리성으로 기관지 천식이나 이질, 치질, 타박상, 피부염 및 관절의 통증에 효과가 있다. 또한 뿌리껍질을 요통(腰痛)에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으며, 피부염이나 옴에 외용(外用)제로도 쓴다.

민간요법으로는 열매를 설탕에 개어 두었다가 마시면 천식(喘息)에 효과가 있고, 월경이 멈추지 않을 때 물에 달여 마셨다.‘보리똥 서 말만 먹으면 어떤 해수 천식도 낫는다’고 했던 옛말이 이 효능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 이 나무 열매를 보리똥이라 불렀다. 그 이름이 흥미로운데, 열매 껍질에 파리똥 같은 작은 점이 있어서 파리똥 혹은 포리똥이라고도 불렀다.

이글거리는 햇빛 아래 한 여름 같은 무더운 날씨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옛 어른들은 보리똥이 익으면 여름이 시작된다고 했다. 더 빨라진 절기에 맞춰 뜰보리수 열매도 결실을 맺느라 바빠 보인다. 신매리 흙담 위에 걸쳐진 뜰보리수나무 열매가 탐스러웠지만 옛맛 같지는 않다. 세상도 변하고 내 입맛도 변한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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