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중편소설] Ⅱ. 돌고래의 꿈-1

이광희 作

박 교수의 출발신호와 함께 김 사장이 차를 몰기 시작했다. 달리지 못해 안달 난 황소가 따로 없었다. 쏜살같이 벌판을 뒤집으며 모래먼지를 일구었다. 바람이 모래위에 만들어놓은 풍문을 비호가 되어 가로질렀다. 곧이어 평탄지를 미끄러져 갔다. 곳곳에 움푹하게 패인 와지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자동차가 허공으로 차올랐다. 무거운 체중을 이기지 못해 곧바로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의지를 시험하는 아이처럼 또 다시 언덕을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모래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꼬꾸라지길 반복했다.
모래바다를 뛰어 오르는 돌고래의 모습이었다. 노란 돌고래. 희망과 꿈이 녹아 있는 바다가 아니라 황량함과 거침과 비련으로 가득한 사막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돌고래였다.

노란 돌고래는 대상들이 낙타무리를 이끌고 지났을 법한 사구를 넘었다. 사원을 지나 모래먼지가 피어오르는 골짜기도 지났다. 성난 짐승의 모습도 보였다. 번득이는 칼날을 높이 쳐들고 순간을 기다리는 투우사를 향해 정면으로 내달리는 황소의 고집이 담겨 있었다.

김 사장은 스스로 황소가 되어 식식거리며 모래언덕을 향해 돌진했다. 웅덩이로 차가 기울어 넘어질 뻔했지만 이내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 너무나 거칠어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오원장과 박 교수는 손잡이만 꼭 잡고 허공에 떠오르는 몸을 가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장이 뒤틀리고 먹었던 음식이 거꾸로 올라올 지경이었다.

이광희 作

김 사장은 눈을 부릅뜨고 모래바다를 건너고 또 건넜다.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사구의 꼭대기까지 차를 몰고 올라갔다. 발아래 붉은사막과 파란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이 가물거렸다.

김 사장은 그곳에 차를 세웠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역겨웠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멀리 내려다보이는 지평선을 향해 손 갓을 폈다. 숱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지평선이 흔들렸다.
“저 멀리 보이는 곳 너머에 우리가 출발한 도시가 있을 거야.”

김 사장이 어른거리는 곳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많이 들어왔어. 정말 자유로운 땅이야.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 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한 적이 있어. 인간은 원초적으로 고독을 그리워하는 동물 인가봐. 함께 있으면 고독이 그립고 또 그 외로움이 싫어 함께 어울리면 다시 고독을 갈망하잖아. 그래서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 모양이야. 광활한 이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그 고독감을 느껴. 혼자여야만 하는 인간의 원초적 그리움.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 눈물이 난다.”

박 교수는 고글을 걷어 올리고 눈물을 훔쳤다.
오원장과 김 사장은 그의 모습을 힐끗 보며 말없이 멀리만 너머다 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말하지는 않았지만 끝없이 펼쳐진 공간 속에 오직 홀로 선 자신을 보고 있었다.
“늘 혼자가 아니란 생각을 하며 살았어. 내게는 처자식이 있다고 생각을 했지. 부양해야할 가족……. 하지만 그것은 허상이야. 계약 같은 것이지. 어느 순간 파기될 계약 말이야. 우리는 모두 각자야. 이 땅에 올 때 그랬던 것처럼 각기 살아가는 거야. 다만 살아가는 동안 몸을 기대고 부둥켜안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발버둥 칠 뿐이야. 결국에는 혼자인 것을…….”

박 교수는 한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오원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박 교수가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라 말을 섞지 않았다. 
“사막은 게으름이야. 바쁜 일상에서 탈출 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 숨 막히는 현실을 건너뛰려면 한번쯤은 사막이 필요해…….”
박 교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막에서는 부지런하고 바쁜 것이 능사가 아니야. 조금은 나른하고 게으르고 우둔하게 움직여야하지. 첨예함이나 예리함 혹은 명석함 이런 게 통하는 곳은 더더욱 아니야. 도리어 우둔하고 느린 것. 천천히 움직이는 것. 이런 게 어울리지. 빨리 빨리를 좋아하는 족속들과는 잘 어울리지가 않아. 아니 그런  사람들이 쉬어가는 징검다리지. 멀리가기위해서는 천천히 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의미가 있어.”

오원장과 김 사장은 박 교수의 생각을 익히 아는지라 듣고 만 있었다.
“살면서 때로는 게으름도 필요해. 부지런함만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야. 부지런히 살다 때로는 게으름을 피우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 얼마나 왔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어. 내게 그 시점이 온 거 같아.”
그들은 한참동안 그렇게 서있었다. 입을 다실 때마다 모래먼지가 지근거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에 올랐다.

노란 돌고래는 재빨리 몸을 날려 바다를 건넜다.
벌써 도로에서 한 시간 이상을 달려왔다. 사막의 심장부에 깊숙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차를 돌려야 할 시각이 다가왔다는 것을 모두가 느꼈다. 그럼에도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꼬리를 쳐들었다. 그것은 욕망이었다. 이 정도에서는 멈추고 싶지 않다는 욕심 같은 것이었다.

“이만큼 왔으니 좀 쉬었다 차를 돌릴까?”
김 사장이 돌아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어떨까. 어렵게 온 길인데.”
“그래 정말 어렵게 온 길이야. 게다가 붉은사막은 다시 오기 힘든 곳이야. 어떻게 보면 이번이 마지막 일 수도 있어. 이렇게 먼 길을 언제 다시 오겠냐. 아름다움만으로 보면 또 와야겠지만 그것은 바람에 불과해. 솔직히. 조금만 더 달리자.”

박 교수가 김 사장과 오 원장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좋아. 이럴 때 기분 내는 거지 언제 내겠냐. 다리 힘 있을 때 달려보는 거야...... 출출한데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달려보자고.”

김 사장이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 실려 있던 음식을 꺼내며 말했다. 가지고온 마른 빵과 약간의 치즈 그리고 전날 현지 시장에서 구입한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씹을 때마다 모래먼지가 씹혀 지근거렸다. 물로 입을 부셨다.
김 사장이 다시 차를 몰았다. 두어 시간을 더 달렸다.

정확히 2시간 18분이 지나고 있었다. 모래언덕을 막 지나 오른쪽에 있는 사상지역으로 차를 돌렸다. 하지만 그 지역은 모래언덕에서 흘러내린 모래가 상처럼 쌓인 곳이라 평평해 보였지만 단단하지 않았다. 때문에 앞바퀴가 스르르 잠기더니 곧이어 뒷바퀴조차 늪을 만난 듯 빠져들었다.
김 사장은 연이어 액슬레이트 페달을 힘껏 밟았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차량의 바퀴가 헛돌기 시작했다. 우지끈 하는 느낌과 함께 차가 오른쪽으로 내려앉았다.

“차가 빠졌어.”
“다시 밟아봐. 사륜차가 이정도 쯤이야…….”
박 교수가 뒤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광희 作

김 사장은 다시 힘껏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자동차는 바퀴가 헛돌 뿐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요란한 굉음만 퍼져갔다.
“깊이 빠진 모양이야. 내려서 밀어야 할 것 같은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오원장이 말했다.
셋은 차에서 내렸다. 생각처럼 차량의 우측 앞뒤바퀴가 모래바닥에 깊이 묻혔으며 좌측바퀴도 반쯤 묻힌 상태였다.

“밀면 나갈 수 있을 거야. 김 사장이 폐달을 밟아봐, 우리가 밀 테니까.”
“그래 둘이서 밀어봐.”
김 사장이 차에 오르고 박 교수와 오원장이 차량 뒤에서 밀었다. 다시 깨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하지만 뒷바퀴가 헛돌며 뿜은 모래가 오원장과 박 교수의 얼굴을 향해 흩뿌려졌다. 눈을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입에도 한 움큼의 모래가 들어갔다.

“어떻게 차를 몰아서 이 모양이 됐냐.”
박 교수가 입에 들어간 모래를 뱉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자동차는 좀 채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바퀴가 더욱 깊이 묻혔다. 좌측 바퀴마저 모래에 빠져들었다.
“이럴 때는 방법이 있지. 노가다로 잔뼈를 굴렸잖아.”
김 사장에 차에서 내려 삽으로 바퀴 앞뒤를 긁어냈다. 하지만 모래가 부드러워 차체의 무게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박 교수 네가 올라가봐.”
김 사장은 자동차아래 모래를 긁어내며 말했다.
“오 원장, 다시 밀어보자.”
박 교수가 차에 올라 액슬레이트 폐달을 밟았지만 헛바퀴는 여전했다.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김 사장과 오 원장은 낑낑거리며 있는 힘을 다해 지프차를 밀었다. 하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바퀴만 헛돌았다. 모래바닥에서 열기가 치솟아 올랐다. 차량에서 토해내는 매캐한 연기에 눈이 따가웠다.

“좀 쉬었다 하자.”
오원장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몸에 베어왔다. 순식간에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너무 멀리 온건 아닐까?”
김 사장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차를 빠뜨린 것이 자신이었기에 조금은 몸을 사렸다.
“벌써 두 시간을 더 달렸어.”

오원장 역시 걱정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
“정확히 두 시간 십팔 분에 빠졌어.”
박 교수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왜 하필이면 씹팔 분이냐. 씹팔 분.”
김 사장이 힘주어 말했다.

박 교수가 시동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알량한 자동차 그늘에 나란히 앉았다. 모래밭에서 헤어날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했지만 모두 제자리였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해 보았지만 빠진 차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좁은 그늘에 널브러진 채 앉아있었다. 사막의 열기가 고스란히 밀려왔다.
“지나는 차라도 기다려야 하나?”

김 사장이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오지에 무슨 차가 지나가겠냐.”
박 교수가 쌀쌀맞은 어투로 말했다. 사막의 열기가 그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면 그냥 기다려?”
김사장이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차를 잘 몰았어야지.”

“그럼 내가 차를 잘 못 몰아서 그렇다는 거냐?”
김 사장이 발끈했다. 그러지 않아도 자신이 차를 빠뜨린 것에 대한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운 상태였다. 여기에 톡 쏘아붙이자 순간적으로 뚜껑이 열렸던 것이다.
“그럼 잘 몰았는데 차가 빠졌냐?”
박교수가 질세라 말꼬리를 쳐들었다.

“아니 왜들 이러냐. 좀 쉬었다 다시 시도해보자. 잘못 몰았다고 김 사장을 몰아세운다고 빠진 차가 나오냐.”
오원장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운전을 잘못해서 빠진 건 맞잖아.”
박 교수가 허공을 향해 쏘아붙였다. 김 사장이 그를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고 있었다. 큰 싸움이 될 판이었다.
다시 오원장이 가로막았다.

“김 사장이 일부러 빠뜨린 것은 아니잖아.”
박교수를 향해 나무라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찬찬히 운전을 했어야지.”
그는 끝내 궁시랑 거리며 말을 흐렸다.
“아니, 박 교수는 내가 와일드하게 차를 몰아서 빠졌다는 거냐?”
김사장의 인상이 험악하게 변해갔다.
“맞잖아. 이런 사막에서 차를 그렇게 와일드하게 몰면 어떻게 하냐. 그러니까 이렇게 빠진 거지.”

박교수는 한치도 뒤지지 않고 말대꾸를 했다.
“뭐라고?”
김 사장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이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기세였다.
“그만들 하자. 친구지간에 얼굴 붉히겠다.”
오원장의 중재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박 교수와 김 사장은 서로 얼굴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히히거리며 자유 운운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들 둘만 둔다면 사막 한가운데서 무슨 수라도 낼 것 같았다. 둘 다 콧바람 소리가 거칠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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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트뉴스24 사장·소설가
이광희 소설가는 지난 1997년 구인환 선생과 윤병로 선생의 추천으로 천료되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붉은새> 상·하, <청동물고기> 1·2·3권, <소산등>, <문화재가 보여요>, <충청혼맥> 등이 있다. 현재는 본보에 연재소설 <진시황과 여>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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