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중편소설] Ⅰ. 붉은사막

“야! 드디어 자유다. 자유.”
운전대를 잡은 오 원장이 고래고함을 질렀다.
노란색 지프차가 붉은 사막 한가운데를 향해 내달렸다. 불타는 저녁노을처럼 붉은 모래 물결로만 이루어진 사막은 보는 것만으로 황홀했다. 거대한 비늘들이 언덕을 이루며 첩첩이 드러누워 있는 곳. 그곳은 자유의 땅 사막이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없어 도리어 넉넉한 곳이었다.
“여기를 찾기 위해 얼마나 뒤졌는지 몰라.”

오 원장은 스스로 대견해하는 말투였다.
그는 일찍이 여행사에 사막여행지 선정을 부탁 했다. 그랬더니 고비사막만 달랑 추천했다. 사막을 의도적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여행편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여행사의 설명이었다. 오원장은 그길로 세계지도를 가져다놓고 샅샅이 이 잡듯 뒤졌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곳이 붉은 사막이었다.

“그래? 고생했네. 그런 오원장의 수고 덕분에 이런 자유를 만끽하는 것 아니겠나.”
옆에 앉은 박 교수가 말을 거들었다. 자유를 향한 여행인 탓에 목소리가 방방 떠있었다.
“잘했어……. 여행은 오지를 찾아오는데……. 묘미가 있잖아. 덕분에……. 좋은 시간이……. 되겠구먼.”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지프차의 뒷좌석에 앉아있던 김 사장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흔들림이 심해 말을 이어가기도 어려웠다.
지프차는 모래로만 이루어진 언덕을 넘고 구릉을 휘돌았다. 모래바람을 일구며 내달렸다. 작열하는 태양이 붉은 대지를 달구고 있었다. 거친 바퀴가 뜨거운 모래를 연신 뒤로 뱉어냈다. 요란한 엔진소리가 모래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사막을 달리는 기분은 이런 거야.”
오원장이 말했다.

“그럼. 덜컹거리며 달리는 오프로드의 맛. 정말 진수야.”
박 교수가 덩달아 흥을 더했다.
“혼자 재미 보지 말고....... 돌아가면서...... 운전해보자.”
허공에 뛰어올랐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김 사장의 제안이었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사막이 아니고 어디서 이런 오프로드의 맛을 보겠어.”

오원장이 연신 허리를 구부리며 말했다. 그럴 때마다 지프차는 하늘높이 치솟은 다음 이내 머리를 모래무더기에 내리꽂았다. 박 교수와 김 사장은 야생마를 탄 조련사처럼 쾌성을 내질렀다.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청용열차를 타는 기분은 비길 바가 아니었다. 애간장이 끊어질 듯 아찔한 순간마다 느껴지는 희열은 중독성이 강했다. 반복될수록 괴로움과 함께 걸맞은 쾌감이 점증됐다.

이들이 사막여행을 결심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먼저 병원장으로 있는 오원장이 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교수가 연구실에서 조교들과 연구과제의 마무리를 논의하던 때였다.
“오 원장 어쩐 일로.”
“바쁜 모양인데 용건만 간단하게 말하지. 다음 달에 사막여행 어때. 정말 여행다운 여행지를 알아볼까 해서.”

“좋아. 무조건이지. 자네와 같이 간다면 어딘들 못 가겠나. 그런데 멤버는?”
“김 사장과 셋이지 우리 삼총사. 방금 통화 했는데 오케이래.”
“그래? 그러면 바로 추진하자고. 그리고 사막여행을 가려면 붉은사막은 어떨까?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이었거든. 인터넷에 치면 바로 나올 거야.”
“붉은사막? 한번 알아볼게.”

이광희 作

이렇게 해서 여행을 오게 됐다. 그렇다고 한번 만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을 만나 여행의 성격을 규정했다.

먼저 여행지가 아무도 모르는 처녀지였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런 곳이 없다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 좋겠다고 했다. 또 단 셋만 알고 아무도 모르게 떠나자는 데 동의했다.
두 번째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 좋겠다고 했다. 낙타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대상이나 유목민조차 다니지 않는 낯선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물과 먹을 것만 가져가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니 푹 쉬고 오자고 했다.

셋째는 통신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매일 걸려오는 전화와 카톡, 페이스북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 세 가지만 충족된다면 어디든 좋다고 했다. 김 사장은 여기에다 결재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찾아달라고 주문했다. 매일 같이 걸려오는 독촉전화와 쌓여가는 결재가 지겨워 이것들을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다고 했다. 그런 곳에서 딱 일주일만 쉬고 오자는 것이 세 사람의 뜻 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사막이었다.
길도 물도 통신도 없는 곳. 오로지 자유만 있는 그런 곳 이었다. 붉은빛이 감돌고 황량한 바람이 불어도 자유가 주어지는 곳.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세부적인 준비를 오원장이 주도적으로 맡았다. 전 세계 오지를 샅샅이 뒤졌지만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박 교수가 추천한 붉은 사막에 대한 모든 자료를 분석하고 여행하는 방법과 일정 등을 꼼꼼하게 챙겨본 다음 결정했다.

그곳은 가장 삭막하고 아름답고 풍성한 곳이었다. 아무나 갈 수없는 곳. 성공한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지는 가난한 자들이 개척하지 못해 버려진 땅이 아니라 부자들이 자신들만 즐기기 위해 숨겨놓은 땅”이라는 박 교수의 주장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모든 여행일정과 기획도 오원장이 맡았다. 붉은 사막은 그렇게 최종 선택됐다.

“벌써 고등하교 졸업한지가 30년이 지났어. 그래도 우리는 잘 지내고 있잖아. 무탈하게.”
오원장이 말했다.
“그럼. 그 많은 동기생들 중에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애들은 많지 않을 거야. 게다가 우리만큼 탄탄한 우정으로 뭉친 친구가 어디 있냐. 그 점은 자부한다.”
박 교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지. 집사람도 우리 삼총사를 보면 부럽데. 우리처럼 단단한 친구는 없을 거라나.”
김 사장이 양념을 곁들였다. 

이들 삼총사는 고등학교 한반 친구들이었다. 소풍을 갈 때도 같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고 학원도 같이 다녔다. 수업을 빼먹고 중간치기를 할 때도 같이했다. 늘 혼자는 외롭고 둘은 부족했으며 셋이 되어서야 만족을 느꼈다.

“고삐리 때 우리 셋이 담배도 같이 배웠잖아. 오 원장 골방에서. 기억 나냐?”
김 사장이 왼손을 들어 설명하듯 말했다.
“그럼, 그때 오 원장이 아버님 담배 훔쳐 와서 한 대씩 돌려가며 빨았잖아. 그날 한 모금 빨고 죽는 줄 알았어. 하늘이 노랗게 도는데 정신을 못 차렸어. 내가 그 자리에 꼬꾸라졌던 거 기억하니?”

박 교수가 넌더리를 치며 말했다.
“그렇게 배운 담배를 지금까지 피고 있으니. 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김 사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에서 담배냄새가 풀풀 풍겼다.
“이쯤에서 끊어라. 끊어. 사내가 되가지고 그만한 강단도 없냐.”
박 교수는 뒤를 돌아보며 핀잔 섞인 어투로 말했다.

오 원장이 더욱 깊이 페달을 밟았다.
지프차는 황량한 편린이 수없이 깔린 모래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그림자조차 찍혀있지 않은 곳이었다. 모래바람에 휩쓸린 잔모래가 쉼 없이 구릉을 만들었다. 곳곳에 잔물결을 닮은 풍문이 수놓아져 있었다. 바퀴가 헛돌기도 했지만 미친 듯이 밟아대는 액슬레이트 페달에 온몸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일쑤였다. 멀리 겹겹이 쌓인 모래구릉 너머로 파란 하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프차는 도로에서 벌써 30분 넘게 사막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고집스럽게 한길을 가로지르는 탐험가처럼 곧장 앞으로만 나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계약 위반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지프차를 빌릴 때 랜트카 회사로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아울러 현지 가이드 없이는 절대 사막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제출했다.
계약에 따라 현지가이드도 샀다.

그에게 도로로부터 2㎞ 이상을 벗어나서는 절대 안 되며 길을 잃으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교육도 받았다. 또 사막에는 독충과 맹수가 살고 있어 밤에는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해지기 전에 인근 도시나 마을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을 절대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특히 그는 꼭 뭉쳐있어야 하며 흩어지면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일렀다.

이 세 가지는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하는 철칙이었다. 이것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나면 필시 사고가 날것이니 절대 이것을 명심하란 얘기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럼에도 지프차는 벌써 도로에서 줄잡아 10㎞ 이상 사막의 심장부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계획이 있으면 이미 자유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계획 속에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현지 가이드는 웃돈을 주고 출발 직후 도시 언저리에 떨어뜨리어버렸다. 그 역시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오 원장은 오프로드를 즐기는 마니아답게 거칠게 지프차를 내몰았다.
“물도 충분하고 연료도 넉넉하게 실었으니 사막 한가운데까지 가보자. 갈 데까지 가보는 거야.”
“좋아. 그 맛에 가는 거지.”
박 교수가 맞장구를 쳤다.
“우리 삼총사가 있는데 어딘들 못 가겠나.”

김 사장이 무리에서 떨어질세라 말을 거들었다.
오 원장은 모래언덕이 불룩하게 솟은 지점에 차를 세웠다. 멀리 수많은 사구들의 유려한 곡선들이 알몸처럼 내려다보였다. 모래먼지는 부드러운 피부를 만지며 바람을 따라 미끄러져 갔다. 자동차의 보닛이 달아 열기를 풍풍 토했다. 뿜어져 나오는 단내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래에서 올라오는 지열도 장난이 아니었다. 눈알이 뜨거울 정도였다.

그들은 가져온 물로 목을 축이고 저 멀리 자신들이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구불구불 모래사막 한가운데를 달려온 바퀴자국이 거대한 아나콘다를 연상시켰다. 언덕과 와지를 피해 몸을 좌우로 흔들며 달려온 길을 뒤따르고 있었다. 몸에 난 상처를 모래언덕에 비비며 스스로 위로하는 모습도 보였다. 꽤 먼 거리를 달려왔음이 실감났다.  

“야! 정말 좋다. 환상이야. 저 모래언덕을 봐. 우리의 일상도 저렇게 많은 언덕의 연속이야. 넘고 또 넘고. 구르고.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저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련이 있었을 거야.”
박 교수가 멀리 모래언덕을 넘어다보며 말했다.
“그럼 고단하게 생성되고 소멸되겠지. 세상살이도 남들이 보기에는 쉬운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쟁이야 전쟁. 요즈음 와서 유독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오원장이 손 갓을 펴고 사막 한가운데를 넘어다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두말하면.....매일 전쟁 통에 살잖아. 어떨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살까.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뭐 이런 생각도 해봐. 철학자도 아닌 장사꾼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래 살다 이렇게 한가하게 사막한가운데 와있으니 정말 살 것 같다.”
김 사장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동감이야. 치열하게 살아본 사람만이 느끼는 여유가 이런 걸 거야.”
오원장이 말을 거들었다.

그들의 시선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지만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가로움과 여유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느끼는 풍요로움이었다. 텅 빈 공간의 여백미를 대지에서 발견한 것이 사막이었다. 실로 채워진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꽉 차 보였다.

사막이 주는 감동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타는 목마름만큼 애틋한 갈증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허무라는 진실에 대한 갈증이었다. 모든 것이 허무에서 비롯되고 허무로 마무리된다는 사막의 진실. 그것이 여행자를 사막으로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그들은 그 허무의 바다에서 멀리 사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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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박 교수가 핸들을 잡았다. 그는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조금은 차분하게 차를 몰았다. 모래언덕의 가장자리를 돌아 평탄지를 찾아 달렸다. 오원장이 움푹하게 패여 웅덩이가 된 와지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내달렸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뒤에 앉았던 김 사장도 조금은 살만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모래바다를 넘어다 볼 여유조차 생겼다.
“역시 박 교수야. 뒤에 탄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좋았어.”
“그래? 그럼 내가 너무 심하게 몰았다는 말인가?”

오원장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야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뒤에 탄 사람의 입장은 박 교수가 잘 헤아려 주는구먼.”
“너무 천천히 몬다는 의미는 아니겠지.”
박 교수는 와지가 내려다보일 때마다 움찔 놀라며 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그럼 이정도가 딱 좋아. 일부로 거칠게 몰 거 없어.”

김 사장은 다소 아쉬운 감을 속으로 삭이며 말했다.
“사막은 이런 재미로 여행을 하는 거야. 때 묻지 않은 처녀성을 정복하는 맛이라고나 할까. 광활한 공간을 가로지르며 언제 또다시 변화할지 모르는 세상을 마주하는 기분이랄까.”
앞좌석에 앉은 오원장이 말했다.

“그럼. 이 맛이지. 미지를 향해 내달리는 긴장감. 아무것도 없는 오로지 붉은 모래만 쌓여있는 이 황량한 모래바다를 항행하는 고독감. 이것이 내가 느끼는 감정이야.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바로 이 고독감과 긴장감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정말 좋은 표현이야. 역시 박 교수군. 우리야 뭐 잡놈 아닌가. 그냥 내달리고 밀어붙이고 거칠게 몰아세우는 것 이런 게 다거든. 느낌은 있는데 그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

김 사장이 뒷좌석 가운데로 몸을 옮기며 말했다.
“이번 여행지는 정말 잘 선택했어. 붉은사막을 달리니까 모든 시름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는 느낌이야. 십년 묵은 체증이 한순간에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따봉이야.”
오원장이 엄지손가락을 쳐들며 말했다.
“아니 그렇게 탄탄하게 살아가는 오원장이 무슨 시름이 있다고 그러나.”
“야, 이친구야.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촌놈이 의대 나와서 처가살이하며 병원세운 심정을 누가 알겠나. 남들이 보면 병원장이라고 하지만 처가 돈으로 세운병원. 처가식구들 눈총 받으며 사는 마음을 알겠나.”

의외의 발언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박 교수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솔직히 너희들이니까 깨놓고 말할 수 있지만 처가살이가 얼마나 고된지 알잖아. 남들은 장가 잘 들었다고 하지만 부모님께는 늘 죄인이야. 효도는 고사하고 자주 찾아뵙기라도 해야 하는데 어디 그게 그러냐고.”

오원장의 어깨가 축 내려앉았다.
“그야 그렇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 부분은. 부모님께 죄스러운 따름이지. 매번 학교일이 바빠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솔직히 마누라 눈치에 몇 달에 한 번씩 가보지만 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
“그런 면에서 내가 좀 자유로운 편이야. 사업하는 놈이니까. 하지만 집사람 눈치 보는 것은 마찬가지지. 남의 식구가  내 마음 같나 어디.”

김 사장이 말을 거들었다.
“미국 갔던 처남이 이번에 돌아온다니까 머리가 더욱 복잡해지는 거야.”
오원장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왜? 미국간지 꽤 오래되지 않았나?”
김 사장이 물었다.
“꽤 오래 됐지. 처가에서는 병원을 처남에게 물려주려는 건데 나는 뭐냐고. 그렇다고 생떼를 쓸 수도 없고…….”
“골치가 아프겠다.”

박 교수가 차를 몰며 말했다.
“그럼. 여간 아픈 게 아니야. 게다가 내가 전공은 외과로 해놓고 성형외과로 병원을 키웠잖아. 그런데 지금 와서 외과로 돌아가자니 그렇고.”
“열 받네.”
김 사장이 바짝 당겨 앉았다.
“처남이 성형외과를 맡겠다는 거야. 아가씨들 얼굴 고치는 것이 전문이라나. 어떻다나. 젊은 친구가 돈밖에 몰라. 나도 그때는 그랬지만…….”

지프차가 와지를 돌아 편편한 사원을 내달렸다. 멀리 모래무더기가 이어지는 구릉을 따라 크고 작은 사구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었다.
오원장이 달렸던 지형에 비해 상당히 편편한 모래벌판이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박 교수는 그곳을 따라 달렸다. 모래바람을 일구며 자동차가 내달렸지만 벌판이라 엔진소음은 그다지 크게 들리지 않았다.
“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누구나 머리가 안 아픈 사람이 없어.”

박 교수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박 교수도 고민이 있나? 학생들 가르치는 거나 고민거리지.”
“모르는 소리 마. 낸들 촌놈 아닌가. 무슨 수로 살았겠나. 처가 덕도 봤고 정부 관료들 비위맞추며 연구비도 뽑았지. 그러지 않고 어떻게 살겠나. 그러다보니 말이 교수지 수시로 접대하느라 더러운 꼴 다보고 살지.”
차의 속도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었다.
“뭘 그렇게까지 할 게 있어. 교수가.”

오 원장은 박 교수의 말이 위로가 된 듯 도리어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물론 남들처럼 살려면 그래도 되지. 하지만 그러면 집에 가서 령이 안서. 마나님은 보직교수 안한다고 안달인데 그 바가지를 어떻게 견디나. 게다가 접대가 소홀하면 계속사업이 안 이루어져. 그러니 어쩌겠나. 비위를 맞출 수밖에.”
“교수들은 안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면이 있구먼.”

김 사장이 바짝 당겨 앉으며 말했다.
“그럼 사람이 사는 집단인데 무슨 일인들 없겠나. 어디 그뿐만 인가. 이사장 눈치도 살펴야하고 총장 속내도 간파해야 하는 게 교수야. 허울은 좋지만 보직이라도 한번 맡으려면 간을 꺼내놓아야지. 정치인이 따로 없어.”  
박교수의 이빨사이로 가는 바람이 빨려 들어갔다. 운전대를 잡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못마땅한 눈치였다.

“참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어. 그래도 우리는 이런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다행 아닌가. 병원에서 가운입고 있다 너희들 만나면 살 것 같아.”
“맞아. 이런 이야기를 누구하고 하나. 마누라하고 할 수도 없고. 공사판에서는 술이라도 퍼 마지시만 너희들은 그런 것도 없잖아. 오 원장은 그래도 술은 한잔씩 하잖아.”
“술로 된다면야…….”

김 사장과 오 원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차창 밖을 내다봤다.
모래바람이 만든 풍문을 지날 때마다 자동차가 흔들렸다. 지프차는 이들의 마음을 실은 탓인지 무겁게 달렸다. 바퀴의 아랫부분이 모래 속으로 파고들었다. 모래지반이 유난히 약한 지역인 모양이었다. 자동차의 속도도 그만큼 느리게 진행됐다. 

“말은 안했지만 낸들 속이 편하겠나. 오죽했으면 전화도 안 되는 지역으로 도망가고 싶었겠어. 말이 오지여행이지 나는 솔직히 도망오고 싶었어. 매일 독촉과 결재와 기관 눈치 보는 것에 정말 질렸어. 뭐하나 쉽게 되는 게 없어. 건설업이란 것이 잡놈직업 아닌가.”
“김 사장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잡놈 직업이라니. 그래도 경제역군 아닌가.”

오원장이 뒤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말로만 경제역군이지. 누가 그렇게 봐주는가. 솔직히 노가다 십장이지. 남들 보기는 그럴듯하지만 물량확보 하려면 간을 내놓고 살아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가랑이 사이를 기어 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발바닥이라도 핥아야 할 판이라니까. 그러니 내 자존심은 뭔가. 버리고 산지 오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꿈틀거리는 게 있지. 나도 사람인데......”
“그야 그럴 테지.”

“오늘 그런 것을 떨어내자고 오지 않았나. 즐겁게 달려보자고. 이제 차를 세울 테니까 김 사장이 차를 몰아봐. 스트레스를 확 풀고 가야지.”
박 교수가 브레이크를 잡았다.
“그래? 내가 핸들을 잡으면 두 사람은 속이 편치 않을 텐데.”
“그래도 잘 몰아봐.”
박 교수가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사장이 핸들을 잡았다. 그는 브레이크를 밟고 헛바퀴가 돌만큼 액슬레이트 페달을 깊이 밟았다. 바람을 3/1정도 뺀 타이어는 두꺼비가 되었다. 넙적한 배를 바닥에 납작 붙이고 내달릴 때를 기다렸다. 요란한 굉음이 나팔소리가 되어 사막을 향해 퍼져갔다.  
“자 출발이야. 지금부터는 잡놈이 모는 걸 보셔. 신나게 달려 보자고. 머리 아픈 것들은 날려버려.”
“좋아. 한번 힘껏 내달려봐. 미처 보는 거야.”
“출발. 낭만과 그리움이 있는 땅. 저 사막을 향해. 골치 아픈 일들을 떨쳐버리고 달려보자. 오직 미래를 향해 그리고 우정을 향해 출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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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트뉴스24 사장·소설가
이광희 소설가는 지난 1997년 구인환 선생과 윤병로 선생의 추천으로 천료되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붉은새> 상·하, <청동물고기> 1·2·3권, <소산등>, <문화재가 보여요>, <충청혼맥> 등이 있다. 현재는 본보에 연재소설 <진시황과 여>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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