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영어회화전문강사의 비애

 2008년 1월 이명박 정부 출범을 준비하던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영어 공교육 정상화 방안' 공청회에서 "미국에서 '오렌지(orange)'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다가 '어륀지'라고 하니 알아 듣더라"며 영어 발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그대로 영어몰입교육으로 이어졌다. 

영어몰입교육은 영어만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뜻한다. 영어 수업시간에도 한국어를 함께 썼던 방식을 버리고 영어 외의 과목까지도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애당초 이명박 정부는 초·중학교에서 수학과 과학까지 영어로 가르치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이렇게 정부가 영어교육을 통해 ‘세계화’의 물결에 동참하여 아이들을 국제인으로 기르겠다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이 정책으로 영어유치원과 영어마을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영어 사교육 바람을 일으켜 학부모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갔다.

2009년 영어회화전문강사제도 도입 후 전국 3255명 근무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나라가 발전할 것으로 보았던 기대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명박 정부는 영어몰입교육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어회화전문강사제도를 만들었다. 이 제도는 2009년 도입되어 8년이 지났다. 처음부터 이 제도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는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추진으로 이들 강사들은 첫 해에 1,300명으로 시작하여 한때 6,000여명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전국의 학교에서 3,255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래도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보람 때문에 이 직업을 명예롭게 생각했는데… 너무 창피하고 답답해서 이제 그만 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학교에서 선생님 소리 들어가며 가르칠 때는 즐겁죠. 그런데 채용 시험을 또 다시 치르려면 자존심이 무너져요. 다른 선생님들도 이렇게 다시 채용시험 치르라고 하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토익점수 900점을 요구해요. 우리 가운데에는 유학을 다녀온 분들도 있지만 오랫동안 이런 시험을 잊고 살아온 저희들에게 그런 점수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에요.”
“채용시험은 재직학교에 치르는데, 평가위원들은 어제까지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이에요. 그 앞에서 수업 시연하고 면접하고… 서로 계면쩍고 답답하더라구요. 재직기간의 근무에 대해 심사해서 하자가 없는 한 그대로 근무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평가했던 선생님들도 말씀하세요.”

지금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의 하소연은 끝없이 이어진다.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해 시름이 깊은 탓이다. 필요하다고 추진했으면, 정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의 정책에 따라 열심히 일한 교사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8년 가까이 지났지만 현재 이들의 대우는 기간제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하루 8시간 꼬박 근무를 해도 매월 손에 쥐는 급여는 200여만 원 수준이다. 성과급이나 연금 혜택도 전혀 없다. 호봉승급도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정규직과 소득차가 발생한다. 또 학교에서는 각종 수업 외 업무나 행사 등에 손쉽게 동원되는 인력으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학교내 비정규직 가운데 가장 불안한 고용조건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선생님이다. 학교장의 결정에 따라 계약 연장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늘 을의 위치에서 고용불안에 떨어야 한다. 특히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42조 5항에 따라 4년 범위 내에서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4년을 초과하면 신규 채용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신규 채용 절차가 차별적이고 교권을 유린하는 절차이다. 교사들은 임용할 때 이외에는 시험을 다시 쳐서 재임용을 하지 않는다. 교사가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가르치는 전문성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사람이 교사이다. 그런데 다른 교사들에게 요구하지 않는 재임용시험을 4년마다 치러야 한다는 것은 해당 교사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재임용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면 적격 심사를 하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영어회화전문강사는 연장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해마다 줄고 있다. 그러나 이런 차별적 방식으로 인해 쫓겨나듯 떠나는 것은 없어야 된다. 교육기관인 학교는 무엇보다 모든 구성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라고 가르칠 수 있다.

영어회화전문강사 많이 채용한 대전교육청 책임져야

대전시교육청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가장 앞장서서 시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규모별 비율로 보자면 이들 교사들을 가장 많이 채용한 교육청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력을 채용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교사들에게 모욕적인 재임용시험을 치르라고 요구하는 교육청의 관료들에게도 시민들이 능력을 판별하여 탈락시키겠다고 재임용시험을 치르라고 요구한다면 무어라고 대답할까?

어찌되었든 이 사태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 있다면 교육정책을 세우고 시행하고자 할 때는 먼저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들이 어떤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지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영어만 잘 한다고 국제인이 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영어몰입교육의 허상을 좇다가 결국 오늘날 이러한 참극을 낳았다는 사실을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상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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