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해묵은 지역주의 벗고 미래를 준비할 때

지난 달 24일 충남 천안시 신부동 문화의거리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지역구 의원들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대선 때마다 ‘충청대망론’은 지역 정가의 단골 메뉴다. 더불어 정부 인사 때마다 자주 나오는 말이 ‘충청홀대론’이다. 대권을 한 번도 잡아 보지 못한 지역 현실을 반영하는 단어들로 고착화됐다.

이번 19대 대선을 앞두고도 충청대망론은 여지없이 등장했다. 반기문(충북 음성) 전 유엔사무총장과 안희정(충남 논산) 충남지사, 정운찬(충남 공주)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뜻을 이루진 못했다.

문재인 정부 충청 인사 등용되려면..

다만 안 지사가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2위에 올랐고,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며 차기 대권 유력 주자로 희망을 보여줬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파격 행보가 연일 화제다.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벗고 국민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인수위원회 없이 직무를 시작했음에도 국민적 호응도가 높다. 이 중 인사와 관련해서는 ‘탕평’이란 원칙을 세워 조각(組閣)을 진행 중이다.

이 와중에 지역사회는 두 차례 진행된 청와대 인선 발표를 두고 또 다시 ‘충청 홀대론’을 제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날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발표한 핵심 참모진에는 호남 국무총리(이낙연 후보자, 전남)와 비서실장(임종석, 전남)이 지명됐다. 또 국정원장(서훈 후보자)은 서울 출신이고, 경호실장(주영훈) 출신지는 충남이다.

또 이튿날(11일) 발표한 수석비서관을 보면 ▲영남 2명(조국 정무수석, 부산), (이정도 총무비서관, 경남) ▲서울 2명 (조현옥 인사수석, 권혁기 춘추관장) ▲호남 1명(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전북) ▲강원 1명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등이다.

정리하면 호남과 서울 출신이 각각 3명으로 가장 많고, 영남 2명, 충청과 강원이 1명씩이다. 이마저도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호남에서도 전남 2명, 전북 1명으로 갈리고, 영남도 PK지역인 부산과 경남으로 나뉜다. 오히려 지금까지 인사에서 홀대를 말할 수 있는 곳은 영남 중에서도 TK(대구·경북)라고 볼 수 있다.

'충청대망론', '충청홀대론' 청산될 단어

지난 달 30일 대전 으느정이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시민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는 모습.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하지만 일부 지역 언론에서는 내각 구성도 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충청홀대론’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역대 정권에서 청와대를 비롯해 중앙 정부 인사에서 지역 인사가 대거 중용되지 못한 데 따른 우려라고 본다.

그렇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지 며칠 안 지났다. 내각은 아직 구성조차 하지 않아 정식 출범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국민추천제’로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지역안배는 이루어질 것이다.

사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과 문 대통령에게 있어 호남은 ‘애증의 땅’이다. 1년 전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를 안겨 줬기 때문에 어느 지역보다 ‘탈환’이 어려웠던 곳이었다. 하지만 호남은 이번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충청과는 득표율 면에서도 차이가 컸지만, 야권의 심장부에서 압승했다는 상징성은 수치로 매길 수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을 통해 지역구도가 약화됐다는 점에서 이제는 ‘충청대망론’도 해묵은 헤게모니로 청산할 단어다. 솔직히 충청이 역대 정부에서 인사 홀대를 받은 이유는 영·호남 패권의 영향도 있지만, 지역 인재 풀(pool) 부족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즉 발탁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얘기다.

지역 정치권 역량 결집 통해 '인재 풀' 확보, 전문성 길러야

이것은 비단 지난 정부 탓으로만 돌릴 성격은 아니다. 무엇보다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 지역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비록 충청도가 그동안 정치적 변방에 있었다곤 하지만, 정치권은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때문에 여당으로 신분이 상승한 더불어민주당 역할이 중요해졌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보수 성향이 강한 충청권(대전·충남·세종·충북)은 지역구 총 27석 중 절반인 13석을 안겨줬다. 면면을 보면 초선부터 7선까지 고르게 포진해 있다. 4선 이상 중진은 무려 6명(이해찬 7선, 박병석 5선, 양승조·이상민·변재일·오제세 4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청권 의원들은 정례모임도 없는 상태다. 형식적이라도 자유한국당이 20대 개원 직후 정례모임을 만들어 매월 유사제로 만나 지역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여야의 정치적 위치를 떠나 중요한 대목이다. 의원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하고, 지역 출신 인사들은 자수성가(自手成家)하고 있다. 그러니 고위직 공무원이 되더라도 후배를 끌어준다는 개념을 갖기란 어려운 법이다. 이렇다보니 지역에서조차 “그러니까 충청도”란 한탄어린 자조마저 나온다.

과거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도 지났다. 전문성이 인정받는 시대다. 유능하고 전문성 있는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는 작업에 정치권이 앞장서야 한다. 중앙 무대로 진출하는 인재들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정부 요직에 발탁될 확률도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안희정 지사가 언급한 ‘인사추천권’ 활용 의지는 의미심장하다. 안 지사는 11일 도청 기자들과 차(茶)담회에서 “문재인 정부는 정파와 지역을 초월해서 많은 인적 자원을 활용하고, 최대한 공정하게 기회를 주는 정부가 될 것”이라며 “충청지역의 좋은 인재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뛰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원칙과 상식’을 주창했고, 임기 시작 불과 며칠 만에 대한민국의 변화를 느낄만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인사에 있어서도 충청권은 큰 걱정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문 대통령 스스로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이제 충청은 ‘대망론’과 ‘홀대론’같은 낡은 프레임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아직 5년이란 시간이 남아있고, 기회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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