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대권주자로 뛰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특징은 콘텐츠가 아니라 태도와 스타일로 승부하려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되어 ‘무엇(what)’을 하겠다보다 ‘어떻게(how)’ 하겠다는 말이 더 주목을 받는다. 그의 상징어처럼 된 선의와 대연정도 ‘무엇’이라기보다  ‘어떻게’다. 그는 어제도 “모두가 상대를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마음의 불덩어리로 미움과 분노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미움과 분노의 정치로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일이 안 열릴 것 같다”고 했다.

무엇(what)보다 어떻게(how)로 승부하는 안희정

정치인들은 잠깐 전략적으로 관용의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곧바로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을 내세우는 데 열을 올린다. 안 지사는 이 점에서 꽤 다르다. 그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줄기차게 주문한다. 과거 안철수가 민주당을 떠나자 다들 손가락질을 할 때도 안 지사는 그를 감쌌다. 최근에는 문재인과 감정싸움까지 가는 일도 생기고 있지만 ‘착한 정치인’ 이미지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러나 안 지사엔 포용 정책이 가져오는 문제가 있다. 그에겐 공약이 잘 안 보인다.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선의의 정치가 가져오는 결과일 수도 있다. 자기 공약을 너무 강하게 주장한다면 상대를 끌어안기 힘들다. 중도노선의 한계일지 모른다. 안 지사가 공약을 새롭게 내놓기보다 ‘전임 대통령의 좋은 공약 중에 하지 못한 것을 하겠다’는 식으로까지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김대중의 후계자들이 원하고 박정희의 후예들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을 강조한다. ‘원칙’과 ‘정의’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원칙과 정의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다. 이것을 확장하면 민주주의고 구체화하면 법치주의다. 그는 민주주의자이면서 법치주의자다. 삼성 이재용 영장 기각에 대해 그는 “사법부 판단 존중”이란 입장을 내놓아 민주당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소신일 것이다.

그는 충남도지사로서 당진 땅을 떼어내 평택 땅으로 넘겨준 행정자치부 결정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당진시장과 주민들이 삭발투쟁을 벌일 때도 정치 투쟁조차 자제했다. 충남도는 이 문제에 대해 로펌 변호사를 사서 대응하고 있다. 법치주의자답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과정에서 ‘정치자금 문제’가 있었으나 안 지사의 책임이라고 보긴 어렵다.

‘감독 대통령’보다 ‘심판 대통령’ 하겠다는 안희정

안 지사에겐 이쪽 편도 저쪽 편도 아닌 중간자의 입장에서 가장 공정하게 나라를 운영해보겠다는 생각이 읽힌다. 집권한다면 ‘감독 대통령’보다는 ‘심판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공정한 심판관’보다는 ‘유능한 감독’이 되어 우승을 이끄는 주역이 되려했다. ‘유능한 한국팀 감독’을 약속하고 막상 감독이 되면 한쪽 팀만의 감독으로 전락하며 갈등의 정치를 해왔다.

그가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심판관으로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심판은 분노를 자주 터트려서도 안 되고 어떤 편이 맘에 안 든다고 편향된 판정을 내려서도 안 된다. 상대가 누구든 포용해야 한다.

안 지사는 충남 도정도 이런 식으로 운영해왔다. 본인이 직접 어떤 계획을 세워 추진하기보다 공무원들에게 아이디어를 내도록 해서 스스로 추진하는 방식을 강조했다. 많은 시도지사들이 이런 식으로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안 지사는 정말 그런 식이었다. 주요 도정 업무 가운데 정치적 공정성이 의심되는 사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심판관 대통령’은 요순의 정치에 가깝다. 과거 성군(聖君)들은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서 업적을 내는 방식이 아니었다. 누구든 좋은 의견을 내면 사심없이 받아들여 성과를 내는 게 이상적인 정치였다. 안 지사가 추구하는 정치는 성군의 스타일이다. 고집불통의 감독형 대통령만 뽑아온 국민들에게 안 지사가 제시하는 정치모델은 기대감을 줄 만하다.

우리 국민들은 갈등과 분열의 정치에 질려있다. 말로만 외치는 통합과 관용의 정치를 한번이라도 경험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안희정이란 정치인이 그것을 정말 실천할 것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필자는 “안 지사, 사람 참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대개는 여느 정치인과는 달라보인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2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현실정치의 벽이다. 여야 간에는 물론이고 같은 당내에서도 진영논리가 너무 강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그의 ‘착한 정치’는 파고들 여지가 별로 없다. 말하는 모습을 보면 문재인보다 안희정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중에도 진영논리 때문에 안 지사한테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둘째는 안 지사 자신의 문제다. 그에게 정말 통합과 포용의 정치를 해낼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이 되면 대연정을 하겠다는 그가 도지사를 하면서 왜 연정실험조차 시도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충남도의회와 경기도의회는 모두 여소야대였다. 도지사로서는 둘 다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경필 경기지사는 도의회와 함께 연정 실험을 했다. 그는 야당(민주당) 사람을 정무부지사(통합부지사)에 임명하기도 했다. 충남도엔 그런 시도조차 없었다.

안희정, 모래성 말고 견고한 자신의 성 쌓아야

재작년 도의회는 안 지사의 정책 실패를 따지는 ‘특별위원회’까지 만들어 안 지사를 곤란하게 했다. 지역 언론들에선 ‘안희정 특위’라고 불렀다. 이 말은 안 지사와 도의회 간의 불통과 갈등의 상징어였다. 도의회의 도를 넘는 공격으로 볼 수도 있으나 도지사와 도의회의 갈등 관계가 근본 원인이었다. 국회는 도의회보다 더 집요하고 드센데 대연정이 가능할까?

안 지사는 지금처럼 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정치가 말로 하는 것이고 이미지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으나 말로만 정치를 하면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멋진 말과 좋은 표정만으로는 ‘가짜 모래성’을 쌓을 뿐이다. 안 지사는 선의 발언을 해도 대연정을 제안해도 그것 때문에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지 않을 ‘진짜 성’을 쌓아야 한다.

‘통합 정치’ ‘관용 정치’는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임은 분명하다. 갈등과 분열만이 정치의 본성은 아니다. 지금은 ‘감독’보다 공정한 ‘심판’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감독이든 심판이든 말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치의 스승’ 노무현의 축성 과정을 봐도, 말보다는 ‘정치인으로서의 행동’이었다. 안 지사는 통합과 관용이란 자신의 깃발을 내걸었다. 설사 이번에는 다 쌓지 못한다하더라도 다음번에는 완성할 수 있는 튼튼한 기초라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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