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의 행복한 인성이야기]

김종진 동화작가 심리상담사

    
                                                                 

전통시장에는 구경거리가 참 많다.
싱싱한 나물이며 잘 깐 도라지, 직접 짜온 참기름 등 눈이 심심하지가 않다. 왠지 고향을 옮겨온 것 같아 마음도 편안하다.
시장에 가면 꼭 들르는 노점상, 그 자리에 다른 할머니께서 앉아계셨다.
‘어디 편찮으신가?’ 생각하며 여쭤 봤더니 집에 자식들이 와서 오늘은 안 나오신다고 한다. 손자 손녀들 용돈 주느라 그 일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셨던 할머니. 돈이 있어야 자식들이 온다고 하셨던 할머니의 말씀이 생생하다.
3월, 봄이라고는 하지만 엊그제 내린 눈과 꽃샘추위로 시장도 추웠다. 양초로 두 손을 녹이는 할머니의 등이 굽어 있다. 잠깐 웃는 눈이 필자의 할머니를 닮았다. 필자의 눈은 할머니를 닮았는데…….
 “할머니, 촛불이 따뜻해요?”
 “그럼 손은 따뜻해.”
 눈빛처럼 말씀도 따뜻하신 할머니,
“사진 찍어도 되냐?” 는 물음에 “뭘 이런 걸 찍냐”며 웃으시는 모습이 다정하고 친근하다.

대낮의 햇빛이기에 너무 밝아서 사진에는 촛불의 빛이 안 보인다. 그러나 그 시간 큰 양초 세 개의 불은 태양보다 뜨거웠다. 미련이 남았는지 봄 곁에 떠도는 겨울바람까지 녹이고 있었다. 얼어붙은 사람의 마음까지 녹일 듯 했다.
장갑이 있어도 일하는데 불편해서 안 끼신다는 할머니는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의 할머니실까? 돌아가신지 20년이나 되는 내 할머니의 환영일까? 내가 다 클 때까지도 땅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귀하게 키우셨다는 할머니, 눈물 나게 보고 싶지만 지금은 안 계시다.
필자도 노점상 할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촛불에 손을 쬐며 깐 도라지, 냉이, 시금치, 파 등을 구겨진 검은 봉지에 천천히 담는 거친 손을 바라보았다.
전에 노점상 할머니는 “뭘 살까요?” 물으면 “다 사면 좋지”하셨는데, 오늘 할머니는 깐 도라지, 그 중에서 다듬어 놓은 도라지를 사라고 하신다. 손질 다해서 편하고 몸에도 좋다고. 마치 필자가 도라지를 좋아하는 걸 아시는 것처럼.

 어떤 행복콘서트 강사가 본인은 어르신들께 가까이 하려고 하는데 왠지 잘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 할머니와 가까이 지낸 적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필자는 그 말을 듣자 ‘내가 지금도 유난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그분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이다. 나의 마음의 놀이터인 할머니는 늘 내 곁에서 보호를 해 주셨고, 할아버지는 논으로 밭으로 산으로 나를 잘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친밀감 형성이 잘 된 까닭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사회공헌일자리를 준비하다가 서구노인복지관에서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증명서를 살펴보니 매주 은빛쉼터 독거노인을 위한 다도(茶道)와 시조낭송 봉사활동을 2005년부터 현재까지 12년 동안 꾸준히 해 온 것이다. 가슴이 뿌듯했다. 도솔노인복지복지관에서도 매주 8년을 어르신들과 만나고 있다. 그동안 돌아가신 어르신들 만해도 많다. 필자도 필자가 그렇게 꾸준히 하고 있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만 되면 어르신들을 만나는 것이 기쁘고 즐거웠다.
“에고 새댁이 우리 늙은이들 때문에 기운을 다 빼앗기는 거 아니야.”
“어르신들 제 기운을 다 드릴 게요.”
필자는 한 분씩 손을 꼭 잡고 기운을 나눠드리고, 어르신들은 고마워하셨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안 계신 은빛 쉼터의 한 할머니께서  “난 자식들보다 새댁이 더 좋아. 자식들은 멀리 있어 잘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 새댁은 가까이 있는 천사여.”라고 하셔서 온종일 행복에 잠기기도 했었다.

그럼 나의 부모님은? 나는 과연 부모님께 잘하고 있는 걸까? 팔순이 다 되시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 부르기만 해도 눈물 나는 나의 부모님. 내가 더 신경 쓰고 잘 해야 하는데, 매일 전화한다고 하면서 그것도 잘 하지도 못하고, 잘 찾아뵙지도 못하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네 남매의 우리 부모님도 할머니 할아버지시다. 시나브로 늙고 계심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나의 기운을 나눠드리기는 했었나, 사랑한다고 안아드리기는 했었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 마디로 불효자다. 다음에 친정에 가면 엄마 품에 꼭 안겨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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