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기회를 놓친 만학도의 요람 대전예지중고등학교가 1년 넘게 이어온 파행에 돌파구가 마련됐다. 대전시교육청이 지난해 10월 예지재단 이사들의 취임승인을 취소하자 이사진이 반발해 이를 취소해 달라고 낸 행정소송에서 법원이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사들의 전원 사퇴를 요구하는 교사와 학생들은 교육청에 이사 취임승인을 취소하라고 압박했으며 이사들의 집까지 찾아가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교장의 갑질 논란에서 비롯된 예지중고 사태는 수업거부와 삭발, 땡볕 시위, 한파 속 천막수업, 졸업식 연기, 고소고발 등 숱한 곡절을 거듭했다. 일평생 처음 집회에 와봤다는 60~70대 어르신들은 기자들의 카메라를 피하더니 이제는 교육청으로, 법원으로, 이사들이 사는 전라도까지 찾아다니며 학교를 정상화 시켜달라며 목청을 돋운다. 가진 자들의 욕심과 행정의 무관심이 순박한 만학도들을 용감하게 만든 것 같다.

어제 판결로 예지중고 사태에 물꼬는 텄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재단 측이 불복해 항소하면 최종 판결까지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고 학교가 정상화되는 데도 난관이 적지 않다. 20여명의 교사들은 반년이상 월급을 못 받아 고통 받고 있으며 예산부족으로 학생들이 사용할 새 학기 교과서를 준비하지 못해 수업진행도 어렵다고 한다. 재단 측이 해임한 유영호 전 교감에 대한 복직도 막혀 풀어야할 갈등이 산적해 있다.

대전시의회에서 황인호·정기현 의원 등이 관심을 갖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대전지부도 수차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지켜보는 눈은 많지만 결국 사태 해결의 당사자는 예지재단과 학교 구성원이다. 교사와 학생들에 대한 무더기 고소고발 등 교장과 교사, 학생들 사이의 골 깊은 갈등을 누군가 나서 중재하지 않고선 갈 길이 멀다. 대전교육의 수장인 설동호 대전시교육감과 교육청이 해결에 적임자다.

학교 정상화를 위해 재단은 소송전을 멈추고 교사·학생들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하루빨리 임시 이사진을 구성해 중단된 교육청 보조금이라도 다시 받아야 교사 월급 등 막힌 재정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유 전 교감의 복직은 물론 더 이상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니는 학생들이 없도록 고소고발도 서둘러 취하하는 게 좋겠다.

재단이 학교 파행의 책임을 지고 조속한 정상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 주체는 교육감과 교육청이 되어야 한다. 이들이 문제해결에 더 일찍,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이처럼 장기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립학교법의 적용을 받는 학교법인이 아닌 평생학습시설이라 예지중고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은 교육청의 핑계에 불과하다. 이 학교에 연간 5억 원대의 시민 세금이 지원되니 교육청에 당연히 지도감독의 의무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설 교육감과 교육청이 예지중고 정상화에 앞장서길 바란다. 교육감이 재단 같은 이해당사자뿐 아니라 학교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사람들을 끌어 모아 협조를 구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정상화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긴 싸움으로 서로 상처 난 마음들을 보듬고 달래는 화합의 마당을 교육감이 깔아 준다면 회복도 빠를 것이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학생만 대전교육 가족이 아니라 70살 여중생도 살펴야할 대전학생이다.

교사들에 대한 임금체불과 학사파행을 빚고 있는 대전예지중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천막 농성을 벌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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