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삭제된 친구’ 자리를 파고드는 ‘가짜뉴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친삭’이 번져가고 있다.

‘친삭’은 ‘친구 삭제’의 줄임말이다. 네이버 오픈 국어사전에 ‘게임이나 휴대폰 등에서 친구와 인연을 끊음을 이르는 말’로 정의돼 있다.

최근엔 페이스북 공간에서 ‘친삭’이 부쩍 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근 정치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본래 ‘친삭’은 불량감자를 솎아내는데 주로 활용돼 왔다. 상업적 광고나 음란물을 시야에서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친삭’은 정치적 호불호를 드러내는 정치수단이 됐다. 

‘친삭’을 공지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이가 있는가하면, 흰머리 솎아내듯 조용히 ‘친삭’을 결행중인 이들도 눈에 띈다.

문제는 ‘친삭’이 다양성을 배격하는 방향으로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는데 있다. 정치 커뮤니티는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는 공간이 아닌, ‘다름’을 차단하는 공간이 돼 가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분명해지면 분명해질수록, 자신이 지지하는 대선후보에 대한 확신이 명확해지면 명확해질수록 ‘친삭’의 대상은 더 많아지고, ‘친삭’을 결행하고자 하는 의지 또한 확고해진다.

4000명 이상의 페이스북 친구와 교류해 왔던 한 지인은, 단기간에 ‘친삭’에 ‘친삭’을 거듭하더니 불과 200~300명만 친구로 남겨뒀다. 이후 “진짜 친구들만 남겨뒀다”고 자랑했다. 그는 온라인 공간에서 한 야권 대선후보를 돕는 열혈 지지자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친삭’. 어떤 면에서 순혈주의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온라인 공간의 ‘순혈주의’는 결국 정치적, 이념적 근친상간을 불러내기에 이른다. 그렇게 태어난 괴물이 ‘가짜뉴스’다.

돌이켜 보면 ‘가짜뉴스’란 괴물은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출몰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던 시점,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가 촛불시민의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된 사례가 전혀 없지 않았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자신들에게 이념적 무기를 제공해 왔던 보수 성향 종편까지 비판하며 “어떤 언론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스마트폰을 내밀며 “여기에 진실이 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친삭’의 후유증이다. 그들이 ‘친삭’을 통해 자기들끼리 뭉쳤을 수도 있고, 젊은이들로부터 ‘친삭’ 당하다보니 그들만 남았을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그들이 ‘친삭’을 통해 고립된 존재라는 점은 분명하다.

전혀 흔들릴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촛불민심도 ‘대통령선거’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면서 내부적으로 갈등하고 있다. 저 광장에서 문재인과 이재명, 안희정은 어깨를 건 동지이지만 온라인 공간으로 돌아오면, 그 지지자들끼리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친삭’을 하고, ‘친삭’을 당하면서 자기들끼리 결집력을 높이고 있지만, 다른 편과의 토론과 논쟁은 점차 실종되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 또 싸우고 있는지에 대한 무용담만 난무하고 있는 중이다.

‘친삭’은 2017년 탄핵정국을 읽는 가장 중요한 코드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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