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국토교통부 심도 있는 트램 연구로 대책 세워야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고가도로를 철거한 데 대해 잘한 일로 생각한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까지도 이 점은 인정한다. 노후화로 위험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반(反)환경적 구조물’을 걷어낸 것은 그의 공이다.

대전 도시철도 2호선이 당초 고가(高架) 방식으로 결정되었다가 노면(트램)으로 내려온 배경에는 청계천 고가도로에 대한 학습 효과도 있었다. 서울은 고가를 걷어내는데 왜 대전은 그런 시멘트 구조물을 새로 만들려고 하느냐는 반대론자의 주장은 제법 힘을 얻었다. 고가로 건설되면 주변 상가도 장사가 더 안 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79.5km 스카이 트레인 놓은 밴쿠버.. 지난해 12월에도 11km 증설

도시에서 고가 도로나 고가 철도는 이제 반환경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에 철거가 마땅하고, 더구나 이런 것을 새로 설치해선 안 된다는 생각은 환경론자뿐 아니라 웬만한 시민들도 공감하는 ‘환경 상식’처럼 되었다. 그러나 편견일 수 있다. 세계의 모든 도시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캐나다 밴쿠버는 1980년대 유럽에서 트램이 부활할 때 다른 선택을 했다.

밴쿠버는 도시철도에 관한 한 ‘비상식적인’ 결정을 해왔다. 밴쿠버는 인구 63만(광역 246만)의 캐나다 제3의 도시다. 사진을 보면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운 도시다. 이 도시는 지난해 12월 11km의 ‘스카이 트레인(Sky Train)’을 또 개통했다. 고가(高架) 방식의 도시철도다. 밴쿠버에는 지금 3개 노선(79.5km)의 스카이 트레인이 하늘을 달리고 있다. 밴쿠버는 1986년 밴쿠버 엑스포 때 공개행사용으로 스카이 트레인 도입을 시작한 후 줄곧 고가 전철로 확장해왔다. 환경론자들이 트램처럼 지면으로 달리는 라이트 레일(LRT)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고가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

그림 같은 도시 밴쿠버는 ‘흉물’로 인식되는 스카이 트레인을 놨다. 그 결과 스카이 트레인 주변 인구증가율이 지역 평균보다 크게 높았다.

스카이 트레인 주변 인구 증가율 지역평균보다 훨씬 높아

도시철도의 효과는 컸다. 1991년부터 10년 동안 스카이 트레인 노선 500m 이내 지역의 인구 증가율은 37%에 달해 지역 평균 증가율 24%보다 훨씬 높았다. 스카이 트레인 개통 이후 서비스업 총인구 인구는 40만 명에서 130만 명으로 늘었고, 스카이 트레인과 도보 10~15분 내 지역에 50억 달러의 민간 자본이 투자되었다. <위키피디아 자료>

고가 모노레일로 건설된 대구도 밴쿠버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작년 개통 1주년 때, 대구도시철도공사는 3호선 역세권의 부동산 가치가 기존의 1, 2호선보다 7~8% 더 올랐고, 백화점 매출은 8~19% 늘었다고 발표했다. 대구 지역 언론의 보도를 보면 대전에서 가장 걱정했던 미관 문제에 대한 비판도 찾기 어렵다.

하늘을 달리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인기가 더 높다. 고가 레일은 아래에서 보면 보기 싫은 구조물일 수 있지만 이용자의 입장에서 탁 트인 공간에서 시원스레 달리는 건 지하철이나 도로 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전문가들은 “대구 3호선은 대박”이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나 밴쿠버처럼 고가 방식을 선택을 하는 도시는 많지 않다.

대구3호선이 트램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효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반대였을 수 있다. 시내버스 중앙버스차로제가 이를 말해준다. 중앙차로제에 버스 대신 열차가 달리면 트램이다. 대전 오정동은 중앙차로제 실시 이후 지역 상가의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상인들이 떠나는 지역이 되었다. 트램의 선도 도시 전주가 8년을 매달리다 손을 든 것도 돈보다는 이런 반발 때문이었다고 당시 사업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트램, 전 세계 도시에서 개통되는 도시철도 노선의 4분의 1

도시철도는 기본적으로 땅속으로 가는 지하철, 도로 위를 달리는 트램, 공중으로 가는 모노레일 3가지 유형로 구분된다. 속도를 빨리 낼 수 있는 지하철과 모노레일을 한데 묶어 ‘메트로’로 칭하면서 ‘트램’과 구분한다. 도시철도 정보 제공 사이트 ‘어반레일넷’에서 최근 3년치 자료로 추산해보니 전 세계 도시에서 해마다 건설되는 도시철도는 900km 정도다.

이 가운데 4분의 3이 메트로이고 트램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소문으로 듣는 트램의 인기 치고는 의외다. 노선 수로는 트램이 3분의 1 정도다. 메트로는 장거리 노선에, 트램은 비교적 짧은 구간에 건설된다는 의미다. 모노레일은 메트로에 끼어 있지만 그 비중이 미미하다. 인기도는 지금도 지하철-트램-모노레일 순이다.

밴쿠버의 ‘스카이 트레인’ 모노레일처럼 하늘을 달리지만 레일 궤도가 2줄이다.
파리 뮌헨은 트램, 로마와 뉴욕은 지하철 놓는 중

건설비가 제일 비싸고 접근성도 떨어지는 지하철이 가장 인기다. 한물 간 것으로 보이는 지하철을 놓는 도시들이 가장 많다. 파리 뮌헨 시애틀은 트램을 놓고 있지만, 로마 뉴욕 홍콩은 아직도 지하철을 뚫고 있다. 워싱턴은 트램도 놓으면서 지하철도 건설 중이다. 왜 이렇게 다른 선택을 하는가? 전문가들은 도시마다 도시의 구조와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트램이 알맞은 도시가 있고 메트로가 적합한 도시가 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메트로를 놓아야 할 노선이 있고, 트램이 효과적인 도로가 있다. 인구 50만 이상으로 도시철도를 가진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들은 최소한 2~3개의 메트로에다 트램을 겸비하고 있다. 메트로는 간선도로 기능을 하고, 트램은 보조노선 역할을 한다.

‘아시아의 트램 선진국’ 일본 중국 보면 한국 트램 장담 못해

대전시가 2호선을 트램으로 바꾼 이후 국내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우리도 트램을 해야겠다고 나서고 있다. 관련 자치단체들은 국회의원을 앞세우고 교통부장관을 불러 트램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법을 고치고 정부에서 도와주면 우리나라에도 트램 도시가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트램 선진국’ 일본과 중국 사례를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 한 사람은 말한다. “90년대 유럽에서 트램 부활 바람이 불자, 일본도 트램 관련법을 정비하여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트램 도입을 추진했으나 성공한 곳은 거의 없다. 삿포로 히로시마 도야마 등에서 노선을 현대화하거나 구간을 다소 연장하는 정도였다. 교통혼잡 문제 때문이었다.”

중국에서도 정부 차원의 트램 도입을 적극 시도하면서 선양 쑤저우 광저우 등에서 트램을 도입해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 자료를 보면 지금은 시들한 분위기 같다. 현재 중국에서 공사 중이거나 계획 중인 도시철도 노선 190여개 가운데 트램은 16건이다. 사업 예정 노선으로는 메트로가 40여개에 이르지만 트램은 2건에 불과하다. 중국의 트램 관계자 인터뷰나 안내문에는 “트램은 훌륭한 교통시스템이지만 기존 도심에는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자료로 작성. 트램의 수송능력은 대략 메트로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대전시 ‘4700만원 짜리 6600만원 주고 사려는 꼴'

심각한 교통혼잡 유발이라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트램을 내세우는 가장 큰 명분은 저렴한 건설비다. 그러나 착시다. 트램의 모범 도시 프랑스 리용에는 메트로(지하철)가 32km, 트램이 66km 깔려 있다. 하지만 1년 이용자는 메트로(1억9600만명)가 트램(8560만명)의 2배 이상이다. 같은 길이 기준의 수송능력은 메트로가 4.7배에 이른다. km당 트램이 1000명을 수송하고 있다면 메트로는 4700명을 실어나르고 있다.

리용이 이런 차이가 심한 편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도시에서 트램에 대한 메트로 분담률의 우위는 확고하다. 대전과 규모가 비슷한 도시로, 프라하는 3.9배, 브뤼셀은 3,7배, 뮌헨은 2,9배 차이가 난다. 트램의 수송능력은 어림잡아 메트로의 3분에 1이다. 메트로 건설비가 3000억 원 들 때 트램이 1000억 원 든다면 건설비의 경제성은 같다는 뜻이다.

대전 2호선은 메트로(고가) 기준으로 1조3600억 원이었다. 차이가 가장 작은 뮌헨을 기준으로 해도 2호선 트램 사업비는 4700억 원 정도다. 지금 대전시가 내놓은 금액은 6600억 원이다. 4700만원 짜리 시내버스를 6600만원 주고 사는 꼴이다. 70%나 더 주는 것이다. 여기에 어마어마한 도로 잠식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트램이 싸다는 주장은 고속도로 중앙에 새 철도를 놓으면서 건설비가 싸게 먹힌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수입과 운영비 차이를 감안하면 트램의 경제적 손실은 훨씬 커진다. 트램은 메트로에 비해 수입은 적으면서 비용은 오히려 더 나갈 수 있다. 밴쿠버 스카이 트레인은 2006년부터 무인운전을 해오고 있다. 세계의 많은 도시철도가 무인운전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도로를 달리는 트램은 어쩌면 그게 불가능하거나 가능한 날이 온다 해도 가장 늦을 것이다. 메트로를 선택하는 것과 비교하면 기회비용의 차이가 크다.

트램의 장점들 한국 트램에선 현실성 의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램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몇 가지가 더 있다. 친환경 수단이란 점과 유리한 접근성, 승용차 억제책 등이다. 친환경 수단이란 점은 이젠 모든 도시철도가 전기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트램만의 장점으로 인정하지 않는 전문가들이 많다. 접근성 문제는 노약자 여부에 따라 이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 시행 중인 시내버스 중앙차로제를 보면 트램이 노약자에게 편리한 수단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를 횡단하는 일은 노약자에게 더 위험해 보인다. 유럽의 작은 도시처럼 골목길을 한가롭게 지나는 트램이어야 노약자에게 편리하다. 대전 2호선은 그런 트램이 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승용차 억제책’이 가장 명분을 갖는 부분이다. 도로는 한정돼 있으니 차량이 한없이 늘어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인 만큼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전시의 트램 전환 과정에는 그게 전혀 없었다. 도시철도 담당 공무원조차 트램 변경 사실을 시장의 기자회견을 보고서야 알았다.

도안 신도시 주민들은 시내버스 중앙차로제 때문에 심각한 불편을 겪고 있다며 소송까지 냈었다. 오정동 상가 주민들도 중앙차로제로 날벼락을 맞고 떠나고 있다. 대안도 없이 트램이 추진되면 이런 날벼락을 맞는 시민들이 수십 만 명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시민들은 트램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생기면 좋은 도시철도일 뿐이다. 

국토교통부, 심도있는 트램 연구로 대책 내놔야

트램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된다고 해도 이런 문제가 풀려야 트램이 달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혼란만 겪게 된다. 이젠 몇몇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다. 국토교통부는 트램 문제를 심도있게 검토해야 한다. 트램이 유럽에선 가능한데 왜 아시아권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지, 국가별 도시별로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 등을 꼼꼼하게 연구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대전 2호선에 트램은 적절치 않다’는 필자의 생각도 편견일 수 있다. 그래도 시민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필자는 정책 결정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장관이든 시장이든 정책 결정자의 편견은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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