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난세에 혼란 수습 인물 어디없나

흰 눈이 내려 쌓이고 날씨도 연일 추웠다. 찬바람 맞으며 앞산에 가기도 그렇고, 딱히 할 일도 없어 책장에서 오래된 책을 꺼내 다시 읽어봤다. 일본의 미야기타니 마사미쓰가 쓴 소설 <안자>다. 1995년도에 출판됐으니 제법 오래된 책이다. 필자는 여기서 책에 대한 줄거리를 쓰거나 독후감을 쓰고자 함이 아니라, 안자의 당당함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안자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 때의 명재상인 안영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제나라에는 명재상이 또 하나 있었는데, 안영 보다 100여년을 먼저 산 관중이다. 관중은 제환공을 중원의 첫 패자로 만든 경세가였지만, 인격적인 면에서는 다소 흠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기를 쓴 사마천도 관중보다는 안영의 인품을 더 흠모했다. 사마천은 “만약 안영이 살아있어 그의 마부가 돼 말고삐를 잡는다면 더없는 영광이겠다”고 까지 말했다.

안영은 키가 6척으로 135cm(춘추시대 1척은 22.5cm)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학다식하고 배짱이 있었으며 인품이 훌륭했다. 반면에 그의 마부는 8척 장신에 중후했다. 안영보다 45cm나 더 컸다. 그런데 어느 날, 문틈으로 마차가 출발하는 것을 엿본 마부의 아내가 귀가한 마부에게 이혼하자고 했다. 놀라 이유를 묻는 마부에게 그의 아내가 말했다.

“안자는 키가 여섯 자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제나라의 재상으로 제후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고, 마차타고 가는 것을 보니 무척 생각이 깊으신 모습에다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면서 남에게 고용된 마부에 지나지 않는데도 자신에게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헤어지자고 하는 까닭입니다.” 이후로 마부는 무척 겸손해졌고, 마부의 깊은 뜻을 알게 된 안영이 제경공에게 추천해 대부로 삼게 했다.

안영이 경공의 사자로 초나라에 가게 됐다. 초나라와 서먹서먹해진 외교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 초나라는 영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영왕은 왕위에 있는 조카가 앓아눕자 문병을 핑계로 병석에 들어가 왕을 살해하고 권좌를 탈취한 극악한 인물이었다.

영왕은 사신으로 오는 제나라 재상 안영이 키가 작다는 것을 알고 대문 옆에 기어서나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을 내게 했다. 안영이 초나라에 도착해 영왕을 배알하려하자, 큰 문이 아닌 작은 문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일국의 사신이 개구멍으로 들어가면 본인은 물론 나라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안영이 작은 문 앞에 서자, “개나라에 온 사자는 개문으로 들어가지만, 나는 지금 초나라의 사자로 왔으니 이 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하고 우뢰같이 외쳤다. 작은 문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개나라가 되는 판이라 초영왕은 대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안영의 배포와 기지였다. 이외에도 안영을 창피주려는 시도가 계속되었지만, 안영은 박학다식함과 언변으로 이를 극복했다.
 
초영왕이 안영에게, “제나라에 인물이 없어 볼품없는 사람이 사자로 왔느냐”고 비아냥거리자, 안영은 “제나라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현자는 현군에게 심부름을 보내고, 불초한 자는 불초한 군주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나는 불초함으로 초나라에 심부름을 왔습니다”라고 말해 오히려 초영왕을 무안하게 했다.

또 제나라 사람이 절도죄를 지었다고 범인을 조작하고서는, “제나라 사람은 본시 도둑질을 잘하는 모양”이라고 안영에게 말했다. 이에 안영이 “귤나무를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귤이 열리지만, 회수 이북에 심으면 탱자나무가 됩니다” “제나라에서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했으니 초나라의 풍토가 그런가봅니다”라고 대답했다. 초영왕이 되레 망신을 당한 것이다.

안영의 키 작음을 비웃는 초나라 대신들에게, “저울추는 작아도 천근을 누를 수 있고, 노는 길지만 물에서만 쓰인다”고 말해 키 큰 그들을 머쓱하게 했다. 마침내 두루 박학다식하고 언변과 배짱이 좋은 안영은 제나라의 국격을 손상시키지 않고, 본인의 체면도 구기지 않으면서 맡은 소임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제나라의 안영은 비록 키는 작았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폭군의 앞일지라도 결코 비굴하지 않았다. 그는 2,500년이 지난 지금도 빛나는 이름을 남기고 있다.

사드배치는 온 국민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임에도 대외적으로 저자세 행태를 보이는 정치인들이 있다. 사드배치를 철회하라며 내정간섭을 하고 있는 중국에 신년 초부터 찾아가 중국 외교부장에게 환대를 받고 온 야당 국회의원들이 있다한다. 사드배치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고나 왔으면 오죽 좋으련만, 사드배치는 확정된 게 아니라며 중국의 비위만 맞춰주고 온 모양새다.

이들의 얘기를 듣고 중국이 사드배치와 관련해 경제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듣지도 못했다. 한국은 압박을 하면 제 발로 찾아와 사정한다는 그릇된 신호만 준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들은 국격과 국위를 생각해 보기나 한 것일까?

현재와 같은 난세에는 혼란을 수습할 인물이 필요하다. 제나라의 작은 거인 안영과 같은 청사에 빛날 큰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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