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대전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자료사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중도 하차다. 그는 1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 교체를 이루고 국가 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안타깝지만 잘한 결정이다. 그에게 대권 도전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대권의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전형적인 관료, 특히 외교관의 길을 걸으면서 유엔사무총장까지 올랐다. 유엔사무총장은 막중하고 영광스런 자리이긴 하지만, 그가 대권 도전이란 험난한 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이 적지 않았다. 고건 총리가 걸었던 실패를 또 한 번 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들이 있었다.

정치 경험이 없는 관료 출신이 대권 도전에 나서는 것은 여러 면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능력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승진하는 게 관료의 세계라면 정치는 무엇보다 대중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가치관이 분명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험난한 여정도 거쳐야 한다.

그동안 반 총장의 행보를 보면 어느 면으로도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짧은 시간 안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지지율을 끌어올릴 방도도 없어 보였다. 지난 설 연휴 기간에도 ‘반기문은 어렵다’는 분위기만 거듭 확인됐다. 대선 포기 선언은 시간 문제였다.

그는 상당 기간 대권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렸다. 출마 결심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여론조사 1등이었다. 그러나, 보수 쪽에서 보면 그의 1등은 결과적으로 다른 주자의 등판을 막는 결과가 되었다. 그의 섣부른 대권 행보는 보수 진영 전열만 흩트려 놓은 셈이다. 지금 보수 진영에는 이렇다 할 후보가 없다. 오죽하면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황교안 총리만 바라보는 꼴이 되었다.

반 총장 맹종하던 새누리 충청권 의원들은 해명을

그동안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은 무턱대고 반 총장을 따르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충청 정치인으로서 충청권 출신을 응원하겠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무조건 반 총장만 좇으려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었다. 보수 여권 전체가 그런 편이었지만 특히 그를 구세주처럼 여기며 맹종하던 충청 정치인들은 무슨 해명이라도 해야 될 것이다.

충청권 의원들은 반 총장이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과 그에 대한 지지율이 높다는 것 하나로 그를 좇았다. 현실 정치가 그렇다고는 하나 이렇다 할 명분도 근거도 없이 ‘미지의 정치 입문자’를 추종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반 총장의 중도 사퇴는 준비되지 않은 후보는 완주도 어렵다는 점을 또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어떤 지위나 경력, 이미지만으로 대권 레이스를 펼치는 주자들은 누구라도 반 총장처럼 될 수 있다. 겉으론 대권 후보감이지만 본인 능력이 이를 감당해내지 못하는 주자들은 낙오될 수밖에 없다. 설사 당선된다고 해도 대통령직을 무사히 마칠 수 없다는 사실도 ‘최순실 게이트’가 보여주고 있다.

반 총장은 잠깐의 대권 레이스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위로 해주어야 한다.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 자리까지 올라 세계를 무대로 뛰었던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쓰여지도록 해야 한다. 그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외교적 난국 시대’에 나라를 위해 대통령 이상 중요한 일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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