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2월 말에서 3월초 나올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정치권 시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엄밀히 말하면, 대선정국은 이미 시작됐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설 민심을 잡기 위해 대선출마를 서두르고 있다. 정당들은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경선룰을 정하기 위한 내부논의에 들어갔다. 설 명절이 지나면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권 발걸음만 분주한 것은 아니다. 대전시도 대선공약 정책과제를 발굴하기 위해 ‘정책 라운드테이블’이란 생소한 거버넌스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지역 숙원사업과 미래먹거리 사업 등 21개 과제를 추려, 민간단체장과 전문가들 앞에 선보였다. 정치권에 화두를 던지기에 앞서 중지를 모아보자는 의도다. 

지역의 숙원해결을 위해 ‘대통령 선거’라는 공간을 주도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점에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시도다. 대선후보가 던져주는 지역발전 공약을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능동적 입장에서 주도하겠다는 것이므로 대전시의 시도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그러나 대전시가 준비한 21개 대선공약 정책과제에 대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시도는 좋지만 접근방법이 세련되지 못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초안임을 감안하더라도 ‘물질적 수혜’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논리와 명분이 없는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고 말았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숙원사업을 죄다 끄집어 내, 좌판을 펼친 들 장사가 될 리 만무하다. 신상품 몇 개가 눈에 띠긴 하지만, 다른 지역이 꺼내놓을 지역공약과 어떤 차별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대로라면 좌판만 펼치고 물건을 하나도 팔지 못할 것이 뻔하다.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가 지역의 ‘작은 장터’라면 대통령 선거는 5년에 한 번 열리는 ‘큰 장터’다. 지역이 국비지원을 요청하고 후보가 이를 약속하는 ‘작은 장터’로 인식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전시는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서 대전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란 큰 명분과 가치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큰 가치와 명분이 제시되면,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와 물질은 당연히 뒤따라오게 돼 있다. ‘물질적 수혜’에만 매몰돼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그것은 작은 장사치에 불과하다. 대전만 바라보지 말고, 이웃 세종·충남·북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공시적 관점, 50년 뒤 대전의 미래를 고민하는 통시적 관점이 두루 필요하다. 권선택 시장은 이왕이면 거상(巨商)이 되시라.

대전시가 대선공약 정책발굴을 위해 지난 20일 개최한 행복나눔 정책 라운드테이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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