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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강을 건너는 행운의 징검다리
불행의 강을 건너는 행운의 징검다리
  • 김경훈
  • 승인 2016.12.26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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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횡재가 있나. 해변을 거닐고 있던 중 발아래 반짝이는 것이 보여 머리를 숙였다. 금반지였다. 몇 걸음을 옮기자 반지가 또 있었다. 가만 보니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사방에 금반지가 널려 있었다. 정신없이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때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소리의 발신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으나 곧 그것이 내 휴대전화 알람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소리에 눈을 떴다. 꿈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생생했다. 반지를 줍던 손의 감촉과 묵직한 호주머니의 느낌까지 그대로였다. 인터넷으로 ‘금반지를 줍는 꿈’을 찾아봤다. ‘횡재’ 또는 ‘재물’이 들어올 운세였다.

 
그날 아침 문자가 왔다. ‘부고 알림, 고교동창 K, 심근경색으로 사망.’ K는 나와 친한 친구였기에 충격이었다. 알고 보니 심근경색이 아니라 자살이었다.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 혼자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간밤에 꾸었던 금반지 꿈이 생각났다. 횡재와 재물이 들어올 운세라더니 이게 횡재인가?

그날 저녁에 K의 빈소로 갔다. 4개의 근조화가 나를 맞았다. 4개뿐이었다. 입구 상단 모니터에 K의 이름이 떠 있었고, K의 이름 앞에 ‘고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낯모를 외로움에 직면했다. 고인의 이름 아래 상주의 이름이 없었다. 그건 마치 넓은 운동장에 한사람만 서 있는 느낌이었다. K는 미혼이었고 가족이 없었다. 너무도 쓸쓸한 장례식이었다. 문상을 하기 위해 구두를 벗었다. 그때 스님의 염불이 들려왔다. 신발을 벗는 순간 시작 된 것 같았다. 염불이 끝난 후에 문상을 하기로 마음먹고 입구 의자에 가서 앉았다. 웃고 있는 K의 영정사진이 보였다. 녀석에게 물었다. 왜 그랬니? 왜 너의 고통을 죽음으로만 표현해야 했니? 

한때는 나도 K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가슴속 불씨가 꺼지며 열정이 사라졌고 매일매일 늪지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나에게 덧씌워진 너울을 벗어 버리고 날아가고 싶었다. 절망으로 인해 자제력의 사슬이 끊어졌고 소리를 지르며 세상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그것은 근원적인 것을 모르던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쾌활했다. 고귀하면서도 황량했다. 그걸 깨닫고 난 후 비로소 내 방황은 멈추었다. 나를 괴롭혔던 처절한 외로움과 장차 닥쳐올 고난에 대한 두려움과도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었다.

K와 나는 고1 때 단짝이었다. 우린 공통점이 있었다. 두 사람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것. 그것은 ‘달동네’였다. 녀석은 보문산 달동네에 살았고, 나는 성남동 달동네에 살았다. 달동네는 값이 싸질수록 풍경이 좋아지는 특징이 있었다. 집값이 저렴할수록 위쪽으로 한없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K의 집은 보문산 케이블카 매표소 앞에 있는 계단으로 한참을 올라가는 산 중턱에 있었고, 우리 집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셀 수 없이 많은 골목과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K의 집에 자주 놀러갔다. 녀석을 생각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K의 집에서 잔 다음날 K의 어머니가 아침밥을 챙겨주셨다. 그날 아침 나는 밥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넓적한 양푼에 밥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그게 한사람 몫이라고 했다. 많은 양이었지만 나는 거절 할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배부르게 먹는 것을 원 할 테니까. 남기지 않고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내가 잘 먹는다고 생각해서인지 K의 어머니가 한 그릇을 더 주셨다. 배가 불렀지만 사양 할 수 없었다. 끝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 위장은 결코 두 그릇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소화를 시킬 수 없었다.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모두 토했다. 물론 K의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했다.

녀석과 나는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추억들. 보문산 길거리에서 사먹던 냉차, 번데기, 솜사탕,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길게 줄을 서있던 사람들을 보며 녀석이 말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구경이 최고랑께. 보문산 공원에는 나들이 나온 여자 애들이 많았다. 이리저리 부대끼다 보면 인연이 생길 것 같았지만 결코 그런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린 2학년이 되면서 멀어졌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함께 추억할 무엇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K가 세상에 없는 지금, 추억은 모두 소멸해 버렸다. 우리가 K의 삶을 조금 더 토닥여 주었더라면. 너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K의 고달픈 삶을 맘껏 슬퍼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K의 발인에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르며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야했다. 그게 예의였다.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했어야 마땅했다. 결국 점심 먹은 것이 체했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자학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경솔한 내 행동을 후회했다. 

그날 늦은 오후, 고3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 축하해 주세요. 제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어요!” 아아, 얼마나 기다렸던 소식이던가.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아들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그리고 고맙다.

이틀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금반지를 줍는 꿈, K의 죽음, 배탈과 설사, 아들의 대학합격 소식까지. 이 모든 것이 이틀 사이에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깨달은 것이 있다.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인간의 삶은 계속 되어야 하고, 슬픔 속에서도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생명의 본능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연인들이 사랑하고, 직장인은 일터로 나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인간의 삶에서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많다. 하지만 그 불행의 강을 행운이란 징검다리를 밟으며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금반지 줍는 꿈’을 꾼 후 로또복권 2장(1만원)을 샀습니다. 그러나 모두 꽝이었죠. 신기했습니다. 어쩜 그리도 빚나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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