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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유람기
제주도 유람기
  • 김경훈
  • 승인 2016.12.04 16: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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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일이었다. 내가 속한 창조경영 3기 원우회에서 ‘제주도 1박2일 워크숍’을 가기로 했다. 말이 좋아 워크숍이지 단순한 여행이었다. 참가하겠냐는 의사를 내게 물었을 때 “반반”이라고 대답했다. 그날은 강의가 있는 금요일이 끼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불참은 내 스스로 결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일정과 예약을 사무총장이었던 내 이름으로 했기에 영락없이 가야 할 팔자였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강을 결정했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 그러다 잘리는 거 아냐?

2016년 11월 25일. 아침 6시30분에 유성 월드컵 경기장에서 4명이 모이기로 했다. 대충 짐을 챙겨 6시쯤 집을 나섰다. 출발한지 5분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환경사업을 하고 있는 김 대표였다. 출발하셨어요? 저 좀 픽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순간 내 인상이 찡그려졌다. 에이 좀 더 일찍 전화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멀리가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쪽으로 갈게요라고 말하며 차들 돌렸다. 김 대표가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오른쪽 헤드라이트가 안 들어오는데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봤다. 남들은 다 알고 있지만 자신만 모르는 것. 이를테면 자신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고장, 브레이크 등 고장, 또는 고집, 독선, 불통…….

6시30분. 유성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하니 먼저 온 두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웃도어 매장을 운영하는 박 대표와 식품사업을 하는 안 대표다. 안 대표는 우리 모임의 홍일점이었기에 총무를 맡고 있다. 청주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고민이 생겼다. 안 대표와 내 차중에 한 대를 가져가야 하는데 내차로는 갈수가 없었던 거다. 추운 날 야외에 주차해 놓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다. 상황을 설명하자 안 대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은 운전이 서투르단다. 그래서 이렇게 결정했다. 내차는 월드컵경기장 지하주차장에 세워두고 안 대표의 스타렉스 차량을 내가 운전하기로.

7시30분. 청주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일행 두 분이 나와 있었다. 브라질에 8200억 원의 수출 계약을 체결한 박 대표와 청주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 대표였다. 인사를 나누고 우리 6명은 항공사 창구로 갔다. 국제선과 달리 국내선은 절차가 간단했는데 신분증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창구에 있던 항공사 여직원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급히 나오느라 제대로 씻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내민 것은 신분증이 아니라 신용카드였다. 지갑에서 나도 모르게 카드를 꺼낸 것이다. 습관은 이렇듯 무서웠다.

검색대를 통과해 2번 게이트로 갔다. 의자 위에 뭔가가 놓여 있었다. 주워보니 주민등록증이었다. 64년생 여자. 주위를 둘러봤지만 우리 외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비행기를 탄 것 같았다. 아니면 다른 비행기로 떠났을 수도 있고. 안내소에 신분증을 맡기며 말했다. 아직 공항에 있을지도 모르니 안내방송 한번 해 주실래요? 8시30분. 드디어 우리가 탄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행은 떨림과 설렘이라더니 그 말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부아 앙!” 엄청난 굉음을 내며 비행기가 활주로를 질주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잠시 후 창밖으로 구름바다가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와,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사방이 온통 백색이었다. 아아, 이토록 멋진 백색이 있을까. 저 눈부신 백색위에서 맘껏 뛰어다니고 싶다.

9시30분. 제주공항에 내렸다. 공항에는 김포에서 출발한 회장님이 와 있었다. 회장님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사장이다. 이로써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대전에서 4명, 청주에서 2명, 제주에서 1명 총7명이다. 예약해둔 콜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말한 1번 게이트로 나가자 우리 앞으로 12인승 스타렉스가 와서 섰다. 기사가 우리를 보며 인사했다. 제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50대 후반쯤 되었을까. 큰 눈에 주변에서 흔히 보는 동네 아저씨였다. 부드러운 말투와 7대3 가르마를 보며 선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9시 50분. 기사가 섬머리 도두봉 공원에 우릴 내려줬다. 제주바다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꼭대기에 올라가면 경치가 좋을 겁니다. 갑자기 21년 전의 제주바다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부부는 이곳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왔었다. 12월의 제주도는 바람이 매서웠다. 아내가 먼저 감기에 걸렸고 약속이라도 한 듯 나도 뒤따라 감기에 걸렸다. 4박5일 동안 우리는 두통과 미열에 시달리며 감기약을 먹으며 버텼다. 그래서 제주도에 관한 기억은 고생한 것 밖에 없다. 도두봉 언덕을 올라가자 눈 덮인 한라산이 내게 말했다. 오랜만이야. 

11시30분. 점심메뉴는 돼지 삼겹살로 정했다. 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기사는 ‘기업 형 식당’이라고 말했다. 입구에는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명성에 걸맞게 고기 맛이 끝내줬다. 도시에서 흔히 먹던 돼지고기 맛이 아니었다. 아마 장소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바다를 보며 먹는 회와 골방에서 먹는 회 맛의 차이.
식사를 끝내고 1층으로 내려오니 한산한 건너편 식당과 달리 이집은 주차장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차들이 들어차 있었다. 기사가 두 집의 스토리를 얘기해줬다. “이집과 저 집은 친한 친구사이였어요. 여기선 쇠고기만 팔았고 돼지고기 손님을 앞집으로 보내주었죠. 그런데 앞집만 장사가 잘되더랍니다. 여기서도 돼지고기 장사를 시작했고 지금은 이집만 성업 중입니다. 당연히 두 사람은 멀어졌고 이젠 원수사이가 되었죠.”

기사의 말을 들으며 두 집의 스토리가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가까운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고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니까. 다음 목적지인 송악산으로 이동하며 기사가 말했다. 제주도는 오름이 360개, 산이 세 개입니다. 한라산, 송악산, 산방산이죠.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송악산입니다. LED사업을 하는 박 대표의 전화벨이 울렸다. 오전 회의는 잘 끝났어요?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이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입찰 보는 날이죠? 어제 결정한 그 가격으로 넣어요. 이들이 CEO들이 맞긴 맞나보다. 여행지에서도 업무를 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과 달리 내 핸드폰은 잠잠했다. 혹시나 싶어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핸드폰을 꺼내봤다. 메시지 하나가 와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열어봤다. ‘중앙일보 고객감사 이벤트. 응모해 주시면 추첨을 통해 푸짐한 선물을 드립니다.’

도로 양쪽으로 감귤농장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수확을 앞둔 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귤들이 썩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기사가 설명해줬다. “옛날에는 귤나무 세 그루만 있어도 애들을 대학까지 보냈는데 지금은 인건비 뽑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다들 한라 봉이나 황금 향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문득 귤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먹을 것이 귀하던 어린 시절, 행상을 다녀온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귤 봉지를 보며 펄쩍펄쩍 뛸 정도로 좋아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먹던 귤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입속에 퍼지는 달콤함이란. 그땐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귤껍질도 버리지 않았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등을 문질렀고, 햇빛에 말려 차를 끓여 먹기도 했다.

오후 1시30분. 송악산에 도착했다. 송악산 탐방로는 부남코지와 전망대를 돌아오는 두 시간 코스였다. 멋졌다. 우리 모두를 흥분시킬 만큼.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감탄했다. 어떤 보석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했다. 송악산 트레킹은 모든 것이 좋았다. 바다, 바람, 솔밭, 한가로이 풀을 뜯던 말들까지.  

3시40분. 기사가 우리를 감귤체험 농장으로 데리고 갔다. 제주에 오면 꼭 한번 해봐야 하는 체험이라고 했다. 입구에서 사내 한명이 우리를 맞았다. 농장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농민들이 세운 협동농장이며 왼쪽은 감귤 밭이고 오른쪽은 산삼배양근을 재배하고 있는 시설입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감귤농장인데 산삼배양근이라니? 곧 사내가 본색을 드러냈다. 손발저리고, 혈액순환 안 되고……. 약장사란 말인가. 기사에게 화가 났다. 이틀 동안 30만원의 수고비를 받기로 했으면서 우리를 약장수에게 데려 오나니. 우린 약(건강식품)을 사지 않았다. 한통에 10만원이나 하는 걸 누가 사겠는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았으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청주의 정 대표였다. 두 개 살게요. 아내 것 한 개, 아들 것 한 개. 참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었으니까.

4시30분. ‘환상 숲’으로 이동하며 저녁식사 얘길 꺼냈다. 총무가 거래처 직원이 예약해준 고등어 횟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기사가 투덜거렸다. 거긴 숙소와 거리가 너무 멀단다. 하지만 속내는 그게 아닐 거다. 사람이란 흔히 상대적 진실이란 게 있어서 얘기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있다. 기사가 완강히 거부하는 이유는 자신이 예약한 식당으로 우릴 데려가기 위함이리라. 언성이 높아졌다. 고등어 횟집으로 갑시다. 안돼요.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 회장님이 나섰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리됐다. “제주도 특산품 중에 오메기 떡이 있죠? 제가 그걸 살게요. 한 개에 3만원이라고 들었는데 현금으로 30만원 드릴 테니 일곱 개는 저희를 주시고 두 개는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그리고 남는 돈 3만원은 기사님 팁이 예요.”

기사의 얼굴이 환해지며 말투가 달라졌다. 제주도에 오셨으면 고등어 회는 꼭 먹어 보셔야죠. 아무튼 회장님은 늘 이렇게 멋지다. 게다가 돈도 멋지게 쓸 줄 안다. 잘난 체 하지 않고, 폼을 잡지도 않으며, 공치사도 하지 않는다. 오늘만 해도 여러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지 않았는가. 차안에 있던 우리 일곱 명과 막돼먹은 기사까지. 돈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 아닐까.  4시30분. ‘환상 숲’에 도착했다. 제주도 말로는 ‘곶자왈’이라했다. 숲을 의미하는 ‘곶’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의 합성어다.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진 곳이었다. 구불구불한 돌길뿐인데 뭐가 유명하다는 거지? 구경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모퉁이를 돌자 아마존 밀림이 나타났다. 숲에서 타잔과 치타가 나올 것 같았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척박했던 땅이 5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갑자기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이 생각났다. 누가 평범했던 가로수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오후 6시. 고등어 횟집에 도착했다. 식당 이름이 독특했다. 한림바다 체험마을. 식당이 아니라 체험마을이란다. 고등어 회를 시켰다. 결론부터 말하면 맛이 끝내줬다. 고등어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묵은지 한 점, 알 밥 한 숟가락, 고등어 회 한 점을 김에 올려 싸먹었더니 고급 초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추가 메뉴로 ‘돌 광어’를 시켰다. 앞에 ‘돌’자가 붙어서인지 딱딱했다. 마치 홍어 뼈를 씹는 것 같았다. 딱딱해서 인기가 없었으나 회장님만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임플란트 12개를 끼워 넣은 내 친구 Y가 생각났다. 고생하는 Y에게 친구가 물었다. 네가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Y가 말했다. “총각김치를 먹고 싶어. 손에 들고 어그적 어그적.” Y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도 행복이구나. 그나저나 회장님은 저걸 씹어도 치아가 괜찮을까?

저녁8시. 식사를 끝내고 공항 근처 ‘용두암 캐빈’에 여장을 풀었다. 예약된 방은 두 개였다. 하나는 총무가 쓰기로 했고 나머지 여섯 명이 큰방으로 들어갔다. 방2, 거실1, 목욕탕1. 10명이 써도 될 만큼 넓었다. 환경사업을 하는 김 대표가 바닥에 눕더니 코를 곯았다. 저녁식사를 하며 마신 술 때문이리라. 잠을 청하기 위해 나도 자리를 펴고 누웠다. 평소에는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체질인데 웬일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김 대표의 코고는 소리와 비행기 소리가 계속 번갈아 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자리를 펴고 누울 걸…….

다음날 아침8시, 기사가 숙소로 찾아 왔다. 아침식사로 1만5000 원짜리 전복 뚝배기 탕을 추천했다. 맛이 형편없었다. 10점 만점에 4점이다. 식당음식 점수매기기는 TV 맛 집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생긴 습관이다. 오랫동안 방송하며 좋았던 점은 음식을 많이 먹어 보았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입이 고급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맹물로 끓인 전복 뚝배기 탕을 많이 남길 만큼. 

오전 10시. 성산 일출봉에 도착했다. 찌푸려 있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세 가지 복이 있어야 한다고. 날씨 복, 가이드 복, 일행 복이다. 하지만 우린 안타깝게도 두 가지 복이 없었다. 편의점에서 우의를 하나씩 사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많았다. 특이한 것 한 가지를 발견했다. 중국 사람들이 많았다. 비율을 따진다면 8대2정도. 여기도 중국어, 저기도 중국어, 심지어는 안내방송도 중국어로 했으니 마치 중국에 온 기분이었다.  30분쯤 올라가자 정상이 나타났다. 꼭대기는 분화구 형태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오라올 때 내리던 비가 가랑비와 안개로 바뀌어 있었다. 안개비는 성산 일출봉을 집어 삼키며 제주 바다로 빠져나갔다. 비와 안개사이로 바다가 보이다가 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11시20분. 일출봉에서 내려와 섭지코지로 이동했다. 코의 끄트머리모양처럼 삐죽 튀어나온 지형이어서 섭지코지라 했고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였다. 해안가에 우뚝 솟은 바위와 기암괴석들이 모두의 탄성을 자아냈다. 여기도 중국사람 천지였다. 우리 앞에서 사진을 찍던 아가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자신의 일행에게 말했다. “이, 얼, 싼!” 12시10분. 점심식사는 ‘제주해녀 소라엄마’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천막으로 쳐진 식당 중앙에 소라엄마처럼 보이는 해녀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3만 원짜리 ‘해산물 모둠’ 두 개와 일곱 개의 전복죽을 시켰다. 내가 말했다. 모둠 한 접시가 3만원이면 엄청 싼 거네요. 하지만 접시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해삼 한 개, 멍게 한 개, 소라 한 개, 문어다리 한 개가 전부였다. 이걸 3만원이나 받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복죽 맛은 괜찮았다. 해산물 모둠의 안 좋은 기억을 모두 지울 만큼.

점심식사를 끝내고 LED사업을 하는 박 대표가 먼저 떠났다. 오늘이 아버님 생신이어서 가족들과 저녁식사가 있다고 했다. 미련 때문이었을까.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박 대표가 자꾸 우리를 돌아봤다. 오후2시. 성산읍에 있는 ‘일출랜드’로 갔다. 입장료가 9000원이었다. 한마디씩 했다. 여긴 왜 이렇게 비쌀까? 하지만 나올 때는 이렇게 말했다. 9000원을 받을 만 하다. 그 말처럼 일출랜드는 볼거리가 많았다. 석회암 동굴, 아열대 식물원, 분재, 화석, 선인장 온실까지. 

오후 3시가 되자 기사가 족욕 체험장에 우릴 내려줬다. 가격은 한 사람당 1만 2000원이었고 새로 생긴 곳이라고 말했다. 이상했다.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두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 거지?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3번 방 앞으로 가자 사람들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방으로 들어가며 총무가 말했다. 요즘은 여행 끝날 때 꼭 이런 코스를 넣더라고요. 회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총무의 말을 받았다. 피로를 풀어야 하니까요. 이건 유행사업도 아니라 돈을 많이 벌겠네요.

족욕이 시작됐다. 여자 직원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아로마가 어떻고, 박찬호 파스가 어떻고……돈이 아까웠다. 5000 원짜리도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것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는 거라고 생각했다. 관광지의 바가지요금,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저녁6시. 식당으로 이동했다. 메뉴는 갈치조림으로 정했다. 제주도에 와서 갈치조림을 먹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라며 기사가 설레발을 쳤다. 식당은 공항근처에 있었다. 1층은 특산품 판매점이었고 식당은 2층에 있었다. 기사가 우리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끝까지 우리를 돈으로 보는 것 같았다. 사람이란 단순한 동물이라서 한번 미워지기 시작하면 계속 밉게만 보이는 법이다. 그가 그랬다. 1층을 둘러본 후 2층으로 올라갔다. 메뉴판을 보자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통 갈치 철판조림’ 한 상에 15만9000원이란다. 세상에. 16만 원짜리 갈치조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침착하던 회장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우리가 원한 갈치조림은 이게 아니잖아요. 식사를 끝내고 기사에게 약속된 금액 30만원을 지불했다. 우리는 단 1원의 팁도 더 주지 않았다. 자업자득이니까.

저녁 8시30분. 우리가 탄 비행기가 제주공항을 날아올랐다. 여행의 끝은 아쉬움이라더니 꼭 뭔가를 빠뜨리고 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운해 하지 않기도 했다. 좋은 것, 맛있었던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햇살에 비치던 멋진 송악산 앞바다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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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2017-06-24 08:45:59
그런 일이 있으시군요...
제가 봐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주도에 있는 제가 봐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많이 씁쓸합니다.
베낭 하나 달랑 메고...
돈 안쓰며 여행하시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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