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뿌리공원 민간투자 논란'의 허와 실

지난 9월 뿌리공원에서 열린 효문화뿌리축제 모습. 자료사진

아는 분(A씨)의 초등학생 손녀가 하루는 학교에서 울고 왔다. 까닭을 알아보니 뿌리공원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뿌리공원에 갔다. 손녀는 아무리 찾아도 자기 집안의 비석은 없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종중에서 회의를 열어 중구청에 조형물 설치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다고 한다.

이런 집안이 100곳이 넘는다. 중구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뿌리공원에 왔다가 자기 성씨 비석이 없어 실망하는 바람에 조형물 설치를 요구하는 집안이 적지 않다”고 했다.

뿌리공원 찾았다가 실망해서 돌아오는 손자 손녀들

중구 안영동에 위치한 뿌리공원은 여러 성씨의 유래를 담은 비석 조형물로 꾸며놓은 공원이다. 관광지이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확인해볼 수 있는 '효테마 공원'이다. 인성교육, 특히 효교육에 이만한 곳이 없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좋아한다. 뿌리공원이 유명해지면서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1년에 200만 명 넘게 찾는다.

뿌리공원은 전성환 초대 중구 민선구청장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20년이 돼 간다. 처음엔 이름깨나 있는 문중들도 이 사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뿌리공원에서 볼 수 없는 성씨들이 많다. 뿌리공원이 인기를 끌고 효교육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우리 성씨 비석도 설치해 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중구는 아직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부지가 더 필요한데 예산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던 차에 작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는 ‘충청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을 활용해 보기로 하고 신청서를 냈고, 지난 6월 공모사업으로 선정됐다. 논산의 돈암서원과 윤증고택, 대전의 동춘당 등과 연계시키는 사업 구상은 좋은 아이디어로 정부가 인정해준 것이다.

정부가 134억 원 대주겠다는 데도 싫다는 대전시

총사업비 333 억원 가운데 정부가 134억 원을 대주고, 나머지 199억 원을 대전시와 중구가 분담해야 할 사업이다. 일단 중앙정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만큼 정부 예산 확보에는 청신호가 켜졌다. 대전시가 의지만 가지면 뿌리공원은 더 멋진 뿌리공원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대전시는 이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시는 뿌리공원에 다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민간투자사업으로 꿈돌이랜드 같은 청소년 놀이시설을 만들어보겠다는 게 대전시 구상이라고 한다. 꿈돌이랜드가 없어진 만큼 이를 대체할 만한 놀이시설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구상 단계여서 구체적인 계획은 나와 있지는 않은 상태다.

대전시가 진정 ‘놀이시설’이 필요하다고 보고 유교문화권사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뿌리공원 인근에 놀이시설인 오월드가 있고 전국 도처에 이런 시설이 있는데 굳이 대전에 또 그런 시설을 만들 이유가 없다. 대전시가 중시하는 것은 ‘사업의 내용’보다 민간투자라는 ‘사업 방식’에 있는 것 같다.

뿌리공원을 확장하려면 대전시나 구청에서 개인 땅을 매입해야 한다. 민간투자방식으로 할 경우 민간업체가 그 땅을 매입해서 추진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대전시 ‘구상’대로라면 민간업체가 뿌리공원 확장 부지를 사들여 꿈돌이랜드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이 땅이 앞으로 4년 뒤 ‘공원용지’에서 해제된다는 점이다. 규제일몰제에 따라 뿌리공원 부지는 2020년부터는 공원용지에서 풀린다. 땅값이 크게 오를 것은 불문가지다. 뿌리공원 지역은 누군가는 돈을 벌 수 있는 땅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대전시의 ‘민간투자 사업’은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전시가 구체적이지도 않은 ‘구상 단계’의 놀이시설을 이유로, 정부가 134억 원이나 대주겠다는 사업을 스스로 걷어차는 비상식적인 행정을 할 이유가 없다. 지방자치단체도 돈이 없으면 민간자본을 이용할 수는 있다. 대전시는 정부가 돈을 주겠다는 데도 이를 거부하고 민간업체에 손짓하고 있다.

‘업자’ 위한 행정 말고 손자 손녀 위한 행정 펴야

뿌리공원은 세계 유일의 성씨 조형물 공원이다.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도  이런 효테마 공원은 없다. 뿌리 의식이 흐려지고 인성교육이 부족한 시대에 이만한 교육 장소가 없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설사 대기업이 수천억 원을 들여서 놀이시설을 만든다 해도 이보다 나을 수는 없다.

대전시는 이런 뿌리공원을 뿌리치고 이상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대전은 볼거리가 없는 도시에 속한다. 한 번 온 사람들은 다시 대전을 찾지 않는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뿌리공원은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계족산과 더불어 ‘대전의 명물’이 되어 있다. 대전의 효자 관광상품이다.

이걸 더 키워서 더 많은 관광객들이 오게 해야 할 대전시가 오히려 이를 방해하고 있다. 대전시는 A씨 손녀를 더 이상 울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뿌리공원을 다녀가는 아이들 가운데도 울고 돌아가는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대전시는 ‘특정 업자’가 아니라 아직 성씨 비석을 갖지 못해 울고 가는 ‘많은 손자 손녀’를 위한 행정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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