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나는 왜 대통령에게 질문하지 못했나

지난 4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2차 담화를 하고 있는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 모습.(청와대 제공)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 중 일부다.

나는 오늘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자괴감과 비애를 느끼면서 참회록을 쓰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기자’와 그 앞에 붙는 ‘청와대 출입기자’는 어감에서부터 뉘앙스가 다르다.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시골에 계신 촌로의 내 부모님 같은 세대는 말할 나위도 없이-얼굴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보게 만든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의 출입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해도 다 같은 기자가 아니다. 일반 등록기자와 상시로 출입하는 풀(pool)기자로 구분된다. 풀 기자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와 행사 참석에 대동해 취재가 가능하다. 정부 광고도 받고, 이따금씩 수석비서관들과 식사도 하며 이런 저런 정보를 얻거나 친분을 쌓지만, 일반 등록기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보니 일반 등록기자는 거의 기사 작성 공간인 춘추관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등록기자다. 상시 출입기자가 아니란 이유를 들어 내 부스에 달렸던 언론사와 기자 이름이 적힌 명패도 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곳에 적(積)을 올려놓고 있는 기자란 이름과 사명으로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올해 초 신년기자회견 때 일이다. 대통령 담화가 끝난 뒤 곧바로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회견 뒤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다. 10여명에 달하는 기자들이 손을 들었고, 대통령은 막힘없이 답했다. 임명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대변인은 기자들 얼굴을 벌써 다 외웠나 싶을 정도로 거침없이 호명했다. 하지만 당시 질문은 청와대와 사전 약속돼 있던 기자들에 한했다. 난 오기를 부려 일부러라도 손을 몇 번 들었다. 역시나 대변인은 날 호명하지 않았다.

지난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2차 대국민 담화가 있었다. 녹화 중계로 진행된 1차 담화 때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2차 담화 때도 당일 오전에야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2차 담화 이후 대통령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전’에 질문은 받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것에 동의하거나 약속한 바 없다.

때문에 난 그때 혼자라도 벌떡 일어났어야 했다. 군색한 변명이지만, 밀물처럼 밀려온 허무함에 용기란 단어는 차마 떠올릴 수 없었다. 돌아온 기자실에서 한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러려고 청와대 출입기자 하나 자괴감이 든다.” 대통령 담화 내용 중 일부를 빗대한 이 말은 금세 세간에도 화제가 되며 패러디 봇물을 이뤘다.

어제(15일)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와대기자단에 소속된 모든 기자들을 향해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에게 질문하라”고 촉구했다. 대통령의 두 차례 담화 발표에도 질문하지 않았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에 대한 언론계 내부의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였다. 물론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모두 본분에 충실하고 있다. 다만 나는 그들의 말이 참 가슴 아프게 들렸다. 나는 왜 대통령에게 질문하지 못했나. 청와대 출입기자란 사실이 ‘부러움’이 아닌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조만간 대통령의 3차 담화가 있을 것 같다. ‘가만히 있으라’는 청와대의 요구에 기자들은 이번만큼은 거부했으면 한다. 난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에게 질문하겠다. 그리고 언론의 본령과 사명이 무엇인지 절대 잊지 않겠다.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하는 참회록도 더는 쓰지 않겠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