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의 예술계 산책] 청각장애 2급의 송근호 화백 사생화

1. 예술 창작혼은 벽이 없다
송근호 화백은 지난 8월 2일부터 1주일간, <대전 KBS 갤러리>에서 ‘한국적인 풍경이야기’ 개인전을 열었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들에서 신선한 바람이 일었다. 약간 거친 듯, 고졸(古拙)한 멋을 담고 있는 작품에서 한국의 풍광이 풋풋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얼마 후, 10월 4일부터 1주일간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한 ‘2016 가고 싶은 세종 명소 13선’ 전시회에서 송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조형미술협회(대표 백향기)에서 주최한 전시회 작품을 감상하면서 훌륭한 작품에 경탄하였지만, 송 화백의 담담한 사생화를 보면서 꼭 고향을 대하는 것 같았다.

2. 송근호 화백은 청각장애인

리헌석 전 대전문인협회장·문학평론가 겸 아트리뷰어
현당 송근호 화백은 청각장애 2급으로 평생을 살아오며, 그의 가슴에는 수많은 생채기가 모여 시내를 이루었을 게다. 왼쪽은 실청(失聽)이고, 오른쪽 귀의 보청기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한다. 이러한 신체적 장애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미술 작품 창작에 힘써 중견 화가로 자리한다.

현당 송근호 선생이 장애를 극복하고 예술가로 우뚝 서기 위해 눈물을 흘린 세월은 얼마나 길 것인가. 그는 1949년 12월 11일 대전시 동구 가오동 134번지에서 출생한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후손이었지만, 농사를 짓는 부모가 포도와 벼를 가꾸며 소를 기르는 전형적인 농가에서 자란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스스로 들리지 않는 것에 답답증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또래들과 어울리며, 다른 아이들은 듣는데 자신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할 때마다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래서 가슴에서 솟구치는 화를 풀기 위해 울기도 하고, 세상을 향하여 눈을 흘기기도 하였지만,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소심하게 성장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세월을 보내다가, 뒤늦게 신설학교인 대전서중에 무시험으로 입학한다. 그때 청각을 상실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할 수 있는 공부를 찾았는데, 그게 미술반이었다. 3년 동안 미술 공부를 하여, 충남의 중고등학생들이 겨루는 실기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홍익대에서 시행한 전국 실기대회에서도 입상을 하여,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화가로 정하기에 이른다. 청력의 장애로 인해 학습이 부족함을 깨달은 그는 충남상고에 진학한다. 이 학교에서도 3년 동안 미술반에서 공부하여 여러 상을 받는다. 특히 대전문화원에서 가진 [상업미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화가의 꿈을 가꾸었다.

좀 더 전문적인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그는 서울에 있는 홍익전문대학 요업과에 편입학하여 교양과 도자기 제작을 학습한다. 1년을 마쳤을 때 학제 개편에 의하여 폐교하면서 미술 공부에 대한 염원을 접게 된다. 낙향하여 부모의 농사를 도우며 생활하였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 때문에 몸이 삐쩍 마르고 죽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그나마 문화원과 시민관 등의 전시회를 찾아 눈요기를 하는 것으로 미술 창작의 열망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송근호 화백과
3. 미술은 그를 행복하게 한다.
농사를 지으며 그림 창작의 열망을 가꾸던 그가 35세쯤이었을까, 김치중 교수가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는 ‘일요스케치’ 모임을 소개받는다. 가끔 스케치를 하러 가는 것이 유일한 그리기였는데, 그 곳에서 송영호 화백을 만나 동행의 벗이 된다. 몇 년간 그 모임이 휴지기에 들어 아쉬워하던 차에, 송영호 화백이 새롭게 ‘대전사생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아 운영하게 된다. 송화백이 슈퍼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듣고, 그도 농사를 지으며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헛간으로 쓰던 곳을 작업실로 개조하여 그림에 전념하는 계기가 된다.

몇 번 허물을 벗어야 성체(成體)가 되듯이 그 역시 허물을 벗고 새로운 지기(志氣)들을 만난다. 한국전업미술가협회 대전충남지회가 결성될 때, 그 역시 창립 멤버로 참여한다. 대전문화원에서 창립총회를 하여 신현국 선생이 회장을 맡고 박명규 선생이 부회장을 맡는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담당하기도 하고, 차량을 통하여 작품을 운반하기도 하는 등, 이 단체에서 그는 모든 행사의 실무를 맡아 봉사한다. 그리하여 이사와 부회장을 거쳐 현재는 자문위원으로 봉사한다. 매년 개최되는 전시회를 통하여 그의 그림도 발전하여 감을 스스로 깨닫는다.

2010년에는 대전에서 ‘한국조형미술협회’를 결성하여 지역적 자주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2010년 6월 4일에 개최한 창립전 도록에 의하면 박명규 선생이 이사장을 맡고, 송근호 선생을 포함한 몇 분이 부이사장을 맡아 지역 미술 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 이 모임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도 현당 선생은 핵심 인물로 참여하여 중견 미술인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진다.

현당 선생은 1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작품 수준을 높이면서 여러 상도 받았다. 2004년에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고, 2005년에는 한국전업미술가협회 공로패를 받는다. 2006년에는 한국예총 이사장상을 받고, 2007년에는 대전광역시 시장 표창을 받는다. 2009년에는 한국전업미술가협회 미술공로상을 받고, 2010년에는 한국전업미술가협회 공로패를 받았다.

이제 사단법인 한국조형미술협회 부이사장, 한국전업미술가협회 대전지회 자문위원, 한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미술협회 서양화분과 심사위원, 대전사생회 운영위원 등으로 봉사하고 있다. 특히 대전광역시 동구 가오동 591번지에 3층(042-284-2173, 016-412-2173) 건물을 신축하고 미술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조형예술 창작에 전념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특히 청각장애 2급, 그 아픔과 어둠을 씻고 새로운 작품 창작을 위해 새롭게 거듭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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