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법정부담금과 법의 역설

우리나라 법은 고용주가 근로자의 4대 보험금 및 퇴직금 등을 일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정해진 법에 따라 회사가 내야 하는 부담금을 법정부담금이라고 한다. 사립학교 법인도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로 법정부담금을 내도록 돼 있다.

안 내도 그만인 사학법인 법정부담금

그런데 실제 법정부담금을 모두 내는 사립학교법인은 거의 없다. 2013년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초‧중등 사립학교법인의 평균 법정부담률은 21.3%였다. 해마다 줄어 올해는 17%선까지 감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립학교법인이 법정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왜 그럴까?

사립학교법인이 법정부담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부족분을 학교회계에서 납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제47조 1항과 국민건강보험법 제67조 1항은 학교경영자가 수익이 없으면 법인부담금 부족액 전부 또는 일부를 학교에 부담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 대다수 사립학교는 법인이 부담해야 할 교직원 보험금 및 퇴직금 등 일부를 대신 내고 있다.

학교들이 대납하는 법인부담금은 어떻게 마련될까? 교육청이 사립학교에 부족한 인건비와 학교운영비를 재정결함보조금이란 이름으로 지원하는데, 국민 세금인 이 돈의 일부가 법인부담금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법이 사립학교에 법정부담금을 강제하면서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일반회사처럼 사립학교 경영자에게 법정부담금을 강제하면서도 그 부족분을 국가예산(세금)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해주니 법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왜 허점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걸까?

이유 있는 ‘법의 역설’

유엔은 ‘누구나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규정했고, 우리 헌법도 제31조 1항을 통해 이를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립학교는 대부분 국가가 돈이 없을 때 개인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했다. 원래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온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 법의 역설이 있다. 학교법인과 학교의 법적 성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학교법인은 근본적으로 사유재산권에 속하는 존재다. 민법상의 재단법인으로 학교 재산권을 보유하고 행사한다. 법정부담금 납부 의무를 져야하는 이유다.

그런데 학교법인의 관리 아래에 있는 인적‧물적 시설인 사립학교는 사실상의 공공재다. 국가는 학교를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 ‘누구나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한다. 사립학교에 대해서도 교직원 인건비 등 운영에 필요한 경비 대부분을 국가가 지원하는 이유다. 사회통념상으로도 공립이냐 사립이냐는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비평준화지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여기서도 선택권은 학업성취도가 높은 일부 학생들에게만 주어질 뿐이다.

요컨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균등하게 교육받는다는 명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사립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사립학교 비율은 중학교 19.9%, 고등학교 41.6%다. 가히 사립학교 천국이다. 공‧사립의 차별이 없다는 것은 가르치는 선생, 배우는 학생들이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사립학교 교사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공립학교 교사의 지위에 준하는 법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사립학교 교사가 차별받아서는 균등한 교육권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정부담금을 사립학교 교사의 지위와 결부된 문제로 봐야 하는 까닭이다. 부담금 납부 능력이 없는 사학법인이 학교에 부담을 전가할 수 있도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오 카츠의 책 제목처럼 애당초 법은 부조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담금 안내면 ‘비리’, 못 내서 보조금 깎으면 ‘차별’
 
문제는 이런 ‘법의 부조리’를 악용하는 학교법인이 있다는 데 있다. 학교법인 대성학원은 교원임용 비리 사건으로 이사장과 상임이사 부부 등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비리사학’이란 낙인이 찍히다보니 법인부담금을 고의로 내지 않았다는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학교법인 대성학원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이 올해 기준으로 3억 8000여만 원이고, 자사고인 대성고(5155만원), 성남고(2588만원), 대성여고‧대성여중‧대성중(1180만원) 전출금을 제외하면 부채상환, 세금, 건물유지수선비 등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 그나마 올해 성남고 전출금이 늘어난 것은 순차적으로 법인부담금을 전국 평균 수준에 맞추겠다는 세종시교육청과의 약속 이행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한편에선 왜 법인부담금을 안 내느냐고 하고, 다른 한편에선 낼 돈이 없다는 게 성남고를 둘러싼 논란의 골자다. 의무 이행능력이 있는데도 돈을 안 낸다면 비리의 문제지만 능력이 없어서 못 낸다고 재정결함보조금을 덜 준다면 누구나 균등하게 교육받을 기본권을 침해해 더 큰 문제다.

학교법인 대성학원은 현재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다. 임시이사회가 산하 학교들에 대한 권리 의무를 대신한다. 유낙준 이사장(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은 세종시교육청이 요구한 법인부담금 순차적 증액은 물론 인사권도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만하면 세종시의회가 얻을만한 것은 얻지 않았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세종시의회의 용기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이번 ‘사립학교 재정보조 관련 개정 조례안’이 국회의 사학법 개정 의지에 윤활유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사립학교 교사와 학생을 차별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건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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