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천안시의회 윤리특위 조례안 논란의 본질

26일 열린 간담회 모습. 초선의원들은 불참한 가운데 윤리특위 조례안 발의에 참여한 중진의원들만 참석했다.

천안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갈등(본보 8월 25일자 <천안시의회 신-구 갈등 2차전, '초선의 반격'> 등 보도)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립구도가 묘하다.
 
먼저 최근 사태를 정리해보자. 지난 26일 정도희 위원장은 본인을 비롯해 조례안을 발의한 7명의 중진의원들(안상국·김영수·서경원·황천순·유영오·인치견)과 운영위원회 초선 의원들을 모아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은 전원 불참했고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만 참석했다.
 
중진 의원들은 초선의원들을 향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고 의회의 할 일인데, 문제가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고 조율해야지 무조건 피하고 있다”고 공세를 취했다.
 
전날 초선의원들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초선의원들이 ‘일방적 추진’이라고 했지만 지난 6개월간 논의돼왔던 사안”, “숙지가 안됐다는 말은 의원으로서 직무유기”, “유영오 부의장 당연직 위원장 건은 본회의장 토론에서도 수정이 가능한 일”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합당한 지적이다.
 
특히 이날 중진의원들은 “이 사달이 날 동안 의장으로서 무슨 일을 했느냐”며 전종한 의장을 겨냥했다. 의장이 나서 사태를 해결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깔려 있었다. 윤리특위 구성을 놓고 벌어진 천안시의회의 신구 갈등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날 윤리특위 조례안 발의 의원들은 더 이상 초선의원들과 대화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의장직권 상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전종한 의장은 “아직 협의를 위한 충분한 노력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며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의원 제명’ 가능한 윤리특위 강력한 힘…칼자루 잡기 싸움
 
그렇다면 초선의원들이 이 사안을 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초선의원들은 이번 조례안에 대해 중진의원들과 상당한 시각차를 나타냈다. 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총의를 모아 새로운 안을 발의 하겠다’고도 했다.
 
잠시 여기서 초선의원들의 입장에서 이번 윤리특위 조례안을 살펴보자. 윤리특위와 관련된 조례안은 특위의 징계기준과 양형을 규정한 ‘천안시 의회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규범 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과 구성방법을 다룬 ‘윤리특별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전부개정규칙안’이 있다.
 
조례안에 따르면, 먼저 윤리특위는 ▲품위유지(음주운전, 금고미만 확정판결 등) ▲청렴의무(탈세 등) ▲겸직금지 ▲금품취득금지 ▲회피의무 위반 ▲업무추진비 공개 위반 ▲회의불참 등의 7가지 기준을 두고, 이 기준을 하나라도 어길 시에는 즉시 본회의나 윤리특위에 회부하도록 돼있다. 회부된 의원은 사안에 따라 ▲경고 ▲공개사과 ▲출석정지 ▲제명까지 징계가 가능하다. 속된말로 한 번 잘못 걸리면 어렵게 얻은 의원배지가 그냥 날아갈 수도 있다. 실로 막강한 권력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막강한 조직인 윤리특위 구성원은 위원장을 의회 부의장이, 부위원장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 당연직으로 맡도록 돼있다. 또 각 상임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위원으로 참여해 10명 이내로 구성토록 돼있다. 이대로라면 윤리특위는 유영오 부의장이 위원장, 노희준 의원이 부위원장을 맡고 정도희·인치견·김은나·황천순·김행금·김각현·박남주 의원이 당연직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조례안 발의에 참여한 7명 중 4명이 포진해 있다.
 
얼핏 보면 청렴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조례로 보이지만 현실화 되면 의회 안에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조직이 탄생하는 셈이다. “조례안을 발의한 중진의원들이 막강한 윤리특위를 구성하고, 당연직으로 포진해 조직을 장악하려 한다”는 정치적 계산. 이것이 초선의원들이 주장하는 이번 조례안의 불합리성이다.
 
한 초선의원은 “말이 좋아 동료의원이지 특위 위원들에게 밉보이는 날에는 언제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 모른다. 시민이 준 권한을 윤리특위가 날릴 수 있다는 뜻이다. 상임위원장이 당연직인데 상임위 안에서 소신발언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친의장파·초선의원, 반의장파에 정면승부 선포
 
앞서 의회 신구 갈등의 열쇠가 ‘전종한 의장’이라고 이야기했다.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갈등이 얼핏 중진 대 초선 간 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반의장파’와 ‘친의장파’의 대리전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조례안을 발의한 중진의원 7명을 보면, 상당수가 후반기 원구성 때 전종한 의장과 각을 세웠던 인물들이다. 전 의장과 각을 세우기까지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원구성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경쟁관계에 있었거나 감정적으로 골이 깊은 관계라고 표현해두겠다. 정확한 의미를 담았다고 보긴 어렵지만 문맥적인 필요에 의해 이들을 ‘반의장파’로 칭한 이유다.
 
어쨌든 이들 외에 다선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전 의장과의 관계가 괜찮은 편이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이번 초선의원들의 반란(?)에 멘토 역할을 해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반의장파’와 마찬가지로 이들을 편의상 ‘친의장파’로 부르겠다. 이렇게 보면 천안시의회 안에 정당을 떠난 진영논리가 작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흔히 OOO의원은 친의장파, OOO의원은 반의장파, OOO의원은 애매하다고 속삭이곤 한다.
 
이런 구도 탓에 이번 조례안 논란 과정에서 반의장파는 “전 의장의 측근 의원 상당수가 불미스런 일로 징계대상이 될 수 있으니 찔리는 마음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친의장파는 “신임의장 흔들기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고 응수하고 있다. 이미 ‘누가 옳다, 그르다’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초선의원, 그러니까 친의장파 의원들은 29일 열리는 제196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새 조례안을 발의해 의원총회를 열고 전체의견을 물을 예정이다. 반의장파의 조례안과 정면승부를 펼치겠다는 것. 이렇게 되면 중도의원들의 선택에 향방이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조례안의 내용보다 양쪽 진영의 정치적 물밑작업이 승부를 가를 수도 있다. 어쨌든 의원 모두 윤리특위 조례안의 당위성은 인정하고 있으니, 이참에 ‘정말 시민들이 바라는 의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새 학년 새 학기, 학교 안에서는 아이들 간 주도권을 놓고 기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다. 잘 정리되면 서로 우정을 다지는 계기가 되지만 유혈사태로 확대돼 외부에 알려지면 학교폭력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천안시의회가 이 점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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