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고향으로 떠나는 고속터미널 편의점에서 자주 사 먹는 것 중 하나가 보름달 빵이다. 보름달 빵을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어릴 적 아버지는 장성에 있는 고려시멘트회사에 다니셨다. 야근을 하고 나면, 보름달 빵을 가지고 오신다. 야근이 얼마나 고된 작업이란 걸 철이 들면서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 철없는 나는 보름달 빵에 시선이 멈추곤 했다.

지금도 변함없이 보름달 빵이 나오고 있는 것이 참 고맙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변함없는 아버지의 사랑, 늘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눈빛,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오늘 결혼기념일이지? 밖에서 맛있는 거라도 사먹었니?’ 아버지가 그것을 기억하시다니. 마음 한편이 울컥했다.

23살 때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이왕이면 큰물에서 놀자’ 무작정 계획 없이 서울로 가서 직장 생활하겠노라고 결정을 하고 일방적으로 부모님께 통보했다. 결정이 내려지면 흐트러짐이 없다는 걸 아시는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그 때 아버지께서 방으로 나를 불렀다.
 
자리에 앉자, ‘너에게 좋은 말을 하는 사람하고는 가까이 하지 말거라, 쓴 소리를 해 준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다.’ 평상시에 거의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의 한 마디 말씀을 듣고, 현금 백만 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나의 타지 생활은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건사고를 뒤로 한 채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결혼과 동시에 대전으로 왔다. 준비되지 않는 육아가 시작되면서 최대 혼란시기를 맞게 된다. 육아스트레스,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일을 선택한 것이 어린이집 운영이었다.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고민 끝에 해결하지 못하고 학부모님들과 식사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119차를 타고 응급실을 통해 입원까지 하게 된다. 급기야 아버지한테 전화 한 통을 힘겹게 한다.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통장마저 마이너스 가득이었다. 당장 이 달에 공과금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하였다. 수십 번 수백 번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아빠, 돈 좀 해주세요.” 아빠의 한마디 “이제 그만 좀 일 벌려라.” 퉁명스러운 말씀에 숨이 꽉 막혔다. 그대로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원망했다. 숨을 고르게 잡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뒤로 전화통화는 물론, 찾아뵙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아버지는 마음이 편치 않았나보다. 언니를 통해 전화가 왔다. “아빠가 너 많이 삐진 것 같다고 맘 불편해 하신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마이너스 통장을 막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적금을 해약했다고 하신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것은 금전이 아닌, 사랑, 근면 성실함, 인간다움, 그게 나에겐 귀한 재산이다.
 
23년이 지난 지금에야 “너에게 좋은 말을 하는 사람하고는 가까이 하지 말거라, 쓴 소리를 해 준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다’란 아버지의 말씀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내 것이 되는데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젠 혼자여도 외롭거나 힘들지 않다. 쓴 소리 해 주는 사람이 좋다. 아버지의 한 마디 말씀이 내 삶의 지침이 됐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