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공대 교수가 진단한 암울한 한국 과학

머리카락 굵기의 100만 분의 1을 충남대 캠퍼스 크기라고 가정할 때 충대 캠퍼스 안에 놓인 사과의 1000분의 1은 과연 어느 정도로 미세한 두께인가? 눈으로 보일 리는 없고 상상으로도 짐작이 어렵다. 파동(波動)이 그 정도로 미세하다면 측정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이것을 해내는 게 현대 과학이다. 얼마 전 과학계를 놀라게 한 중력파 실험이 이것이다. 중력파를 연구를 해온 과학자들은 지난 2월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합쳐질 때 발생한 중력파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어떤 공대 교수(A 교수)는 충남대 캠퍼스를 예로 들어 중력파 실험을 설명해줬다. 

기초과학연구원 조감도. 대전시 제공

지구 반대편서 모래알 떨어지는 소리 알아내는 기초과학

이 실험은 ‘아르헨티나에서 작은 모래알 하나를 떨어뜨렸을 때 생기는 미세한 진동을 지구 반대편의 우리나라에서도 알아낼 수 있는 정도의 기술’로 비유된다. A교수는 바람 자동차 등 온갖 소리가 함께 울리는 상태에서 오직 모래알만의 진동을 가려서 지구 반대편에서도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이라고 했다. 
 
중력파 실험이 이뤄진 곳은 물론 우리나라가 아니다. 현대 과학의 중심 미국이다. 우리나라 과학으로는 엄두도 못 낼 실험이다. 그러나 A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하기에 따라서는 가능한 부분이 있다. ‘중력파가 존재한다’는 이론은 종이와 연필만으로 알아낸 사실이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론으로 밝힌 것이다. 초창기의 진공관 컴퓨터가 1946년에 나왔으니 아인슈타인이 컴퓨터를 사용했을 리 없다. 종이와 연필로 추론해낸 중력파의 존재가 이번에 증명된 것이다.

중력파의 존재는 물론이고 중력파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에도 장비와 실험보다는 이론이 먼저다. 가령 ‘어떻게 하면 중력파의 존재를 검증할 수 있다’는 이론이 나온 뒤에야 그것을 실험으로 증명하는 것이 과학기술 발전의 일반적 과정이다. 중력파의 개념은 물론이고 중력파를 검출하는 기술도 기초과학 분야에 속한다.

여전히 종이와 연필, 열정으로 하는 기초과학

기초과학은 기본적으로 종이와 연필로 하는 학문이다. 장비 이전에 공부와 아이디어로 씨름하는 학문이다. 우리나라는 이 기초과학이 크게 부족하다. 노벨상 후보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임지순 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다. 우리나라에선 노벨상 후보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학자로 소개되곤 한다.

그러나 A교수에 따르면, 임 교수 정도의 업적을 가진 과학자는 미국에만 300명도 넘는다. 그는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후보가 미국이 50명이라면 일본은 15명 정도, 한국은 0명이라고 했다. 중국 과학은 더 무섭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피지칼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는 세계 최고 권위의 물리학회 논문집이다. 우리나라에선 여기에 3년에 1편만 논문을 올려도 최고 수준의 과학자로 인정받지만 중국 과학자들의 활약상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A교수는 말한다.

“이제 이론물리학과 수학은 중국이 이끌어”

“‘메이드 인 차이나’ 하면 여전히 형편없는 제품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중국 천재들은 기초과학에 몰려있다. 미래의 컴퓨터라는 ‘퀀텀 컴퓨터(양자 컴퓨터)’ 전문가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중국에는 이 부분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많다. 세계의 수학계를 중국이 장악하기 시작했다. 10년 전쯤부터다. 미국에서 공부한 과학자들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고, 중국 국내파 과학자들도 많다. 이론물리학과 수학은 이제 중국이 이끌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천재들은 다 의대로 빠지고 있다. 한때 서울대 물리학과는 우리나라 이과의 천재들이 지원하던 곳이었다. 국내 자연계 학과 커트라인 톱이었고, 서울대 합격자 수석도 종종 물리학과에서 나왔다. 한국경제 기사를 보면 현재 물리학과 랭킹은 어느 수준인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공학은 돈으로 하는 학문, 수학은 미친놈이 하는 학문”

A교수는 “공학은 돈으로 하는 학문이고 수학은 미친놈이 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공학은 바로 돈이 되는 기술 개발에만 매달리며, 수학은 돈을 버는 학문이 아니므로 학문에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엔지니어는 연구보다 돈(연구비)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엔지니어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지금까지는 필요성에 의해서, 상품 개발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연구하고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고, 엔지니어가 그것을 해주었지만 앞으로는 기초과학이 그 역할을 떠맡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호기심으로 연구한 이론이 더 많은 부(富)를 가져다 주는 시대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없어서는 안 될 것 중 하나가 내비게이션이다. 이게 없으면 복잡한 도로를 찾아가기 힘들다.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계산을 보정하지 않으면 오차 거리가 수백m에 달하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없던 제품이다. 세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핵무기도 그 원천은 상대성이론이다. 모두 기초과학의 산물이다.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건립된다는 기초과학연구원 기공식에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도 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엔지니어 시대 가고 기초과학 시대 온다”

하지만 필자 같은 보통 사람들은 기초과학의 힘을 잘 모른다. 돈이 안 되는 ‘한가한 학문’ 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정치인이나 공무원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초과학은 결코 그런 학문이 아니다.

지금 대전에 들어서는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그래서 나온 ‘국가 과학진흥정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전엑스포과학공원 터에 들어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만든 기관으로, 과학벨트의 핵심 시설이다.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유치해서 한국 과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기초과학은 여전히 ‘종이와 연필’, 그리고 호기심을 향한 과학자의 ‘열정’에서 출발하지만, 호기심을 검증할 수 있는 장비와 시설이 없다면 그 열정은 지속되기 힘들다. 따라서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임은 분명하다. 정부는 열정을 지닌 과학자들을 찾아내서 지원해줘야 한다.

대한민국은 ‘차관급 기초과학’인가?

지난주 대전 도룡동에서 열린 기초과학연구원 본원 착공식은 너무 초라하게 진행됐다.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아닌 (미래부)차관이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 해당 부처 장관조차 다른 일정은 없었다. 대한민국 기초과학은 차관급 정책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정부가 진정으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행사를 이렇게 치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A교수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현실에서 앞으로 20~30년은 노벨상(과학)을 탈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노벨상을 타려면 20대부터 ‘광채’가 나야 하는데 그런 인재를 보기 힘들고, 일본이나 중국처럼 ‘미친 놈들’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전부 의대로만 달려가며, 우리나라에선 과학자가 존경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필자가 한 가지를 더한다면, 정부조차 여전히 기초과학을 잘 모르거나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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