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뭣이 중한지도 모르는 하반기 원구성

텅빈 천안시의회 본회의장.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전국 지방의회의 하반기 원구성 상황을 보면 말들이 많다. 인터넷 검색창에 ‘원구성’이란 말을 넣었을 때 ‘반쪽’, ‘진통’, ‘불협화음’ 등 부정적 단어들 일색인 점만 봐도 혼란스러운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충남의 천안과 아산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양 의회에서 벌어진 파행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흡사하기까지 하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원구성 배분 과정에서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다시피 하면서 불만을 가진 새누리당이 ‘보이콧’으로 대응하는 형국이다. 

정치라는 것이 본래 서로가 실익을 두고 논의와 타협을 반복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논란과 갈등이 뒤따른 건 필연적이다.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원구성 과정을 보면 ‘명분’이 사라졌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왜 이렇게 배분했는지 질문을 던지면,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 대신 “당론에 따랐다”는 답변만 들려온다. 

그럼 당론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정당의 의견’, 당원들의 합의에 따른 결과물을 뜻한다. 즉, “당론에 따른다”는 말은 “정당 소속 의원들의 합의대로 행동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에 맹점이 있다. 당론 결정 과정에서 당리당략만 있을 뿐, ‘시민’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당이 이기는 것에만 혈안이 됐을 뿐 ‘어떤 인물이 어떤 역할에 적격한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특히 정당공천제 이후 공천권을 쥐고 있는 ‘여의도 금배지’의 입김이 더욱 강해졌다. 이번 원구성에서도 각종 소문이 지역 정가에 범람하고 있다. “A국회의원이 자기 공약사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 B시의원을 다른 상임위로 보내라고 했다더라”, “(부)의장 후보 선출할 때 C국회의원의 압박으로 마음에도 없는 D후보를 찍게 했다” 등등. 불법적인 녹취나 용기 있는 내부고발이 없는 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당론에 따른다’는 것은 당의 ‘정권 쟁취’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각오는 아니다. 시민들은 지역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길 기대하며 시의원에게 표를 줬지 정당에 충성하라고 뽑아주지 않았다. TV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국회의 모습이 ‘생활정치’를 표방하는 시의회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새삼 지방의원 정당공천제 논란이 떠오른다. 2006년부터 시행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는 풀뿌리 자치의 근간을 훼손하고 지방자치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반대 여론이 거셌다. 이에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공약으로 채택한 바 있다. 또 2013년 7월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 정당공천제 폐지안을 담은 공천제도 개혁안을 꺼내기도 했다. 물론 모두 헛구호에 그쳤다.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이 온전하겠는가.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기초의회의 정당정치를 보면 시의원들은 생존(공천)을 위해 잘 적응한 듯하다. 시의회가 다뤄야 할 지역현안 대부분이 정당논리에 매몰되고 있고, 대화와 협치 대신 패권을 위한 ‘과반수’ 확보에 목을 매고 있다. 기초의회 정당공천제 도입 당시, ‘중앙정치 대리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이번 원구성 현장을 보고 있자니 요즘 유행하고 있는 영화 ‘곡성’의 대사, “뭣이 중한지도 모른다”는 말이 절로 입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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