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대전 트램과 브렉시트의 공통점

어떤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그 결과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 영국이 겪고 있는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후폭풍도 그 경우다. 영국인들은 결과적으로 브렉시트를 가능한 선택지로 여겼다. 그러나 막상 결정을 한 뒤에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결정을 해놓고도 심각성을 모르다가 일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전에 도입된 간선급행버스체계(BRT)는 이런 경우다. 도로 가운데를 시내버스에 전용 노선으로 내주는 것이어서 ‘시내버스 중앙차로제’로도 불린다. 대전역~세종 간 BRT는 시범 운행을 시작한 후에야 문제점을 알았다.

시내버스 중앙차로제에 오정동 상인들 비명

며칠 전 대전 MBC는 “지난 한 달간 오정로 교통량을 분석한 결과 온종일 지·정체 현상에 시달리면서 차량 행렬이 수백 m씩 길게 늘어서 있다”고 보도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대부분 시간대에 걸쳐 시속 15㎞ 미만인 정체나 25㎞ 미만의 지·정체가 나타났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BRT 주변 상인들이 입고 있는 치명적인 피해다. 도로 가운데 2차선을 시내버스 전용 구간으로 내주면서 일반차량들에겐 차선이 줄고, 이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존폐를 고민할 정도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 지적하는 내용이다. 상인들은 “BRT가 지역경제만 파탄내고 있다”며 “교통지옥 사고지옥을 원상회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전 대덕구 오정동에 내걸린 상인들이 내건 BRT 반대 플래카드

BRT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도입해서 성공한 정책이다. 그걸 보고 광주광역시도 2009년 광산구에서 버스 중앙차로제를 실시했다가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자 3년 만에 폐지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국내 대도시 BRT는 서울을 제외하곤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BRT보다 더 신중해야 하는 게 트램이다. BRT가 ‘버스중앙차로제’라면 트램은 ‘도시철도 중앙차로제’라고 할 수 있다. 다 같이 일반 도로 위를 달리지만 트램은 육중한 전철 차량이 궤도를 달린다는 점이 다르다. 트램은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도로교통 통제 수준이 BRT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 오정동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트램 환영하던 전주시민들 기본설계 본 뒤 “내 상가 앞은 안돼”

이런 트램을 뾰족한 대책도 없이 대전 도심의 순환선으로 깔겠다는 게 도시철도 2호선 계획이다.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우리나라에선 복잡한 기존 도심 도로에 트램을 신설한 사례가 없어서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10여 년 전 이 사업을 추진했던 전주시가 겪은 일은 참조할 만하다.

전주시는 지금까지 트램을 추진한 국내 도시 가운데 ‘진도’를 가장 많이 나갔던 도시다. 전주시는 100억 원 이상을 들여 기본설계까지 진행했었다. 건축물로 비유하면 조감도를 거쳐 설계도 작성까지 공정을 진행한 셈이다. 그 지역 시민단체는 경제성이 없다며 반대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환영했다. 트램이 들어오면 교통이 편리해지고 주변 집값과 상가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게 시민들 기대였다.

그러나 트램 건설을 환영하던 전주 시민들은 기본설계와 공청회를 진행하면서 ‘도심 트램 건설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오정동 상인들과 같은 반응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 상가 앞에서는 고가(高架)로 건설해달라. 트램 노선을 차라리 다른 데로 돌리라”는 강력한 요구들이 이어졌다. 이를 받아들이다 보니 지상과 공중을 오르내리는, 트램 아닌 트램이 되었고 사업비도 당초 예산의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버스와 택시 등 운수업계의 반발도 컸다. 이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다.

전주시는 벨기에에서 트램 최고 전문가까지 데려오면서 이 사업에 8년을 매달렸으나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전주시의 실패담은 ‘기존 도심 도로에 트램을 놓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를 실증하는 사례다. 대도시의 경우 기존 도심 도로에 트램을 새로 깐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없다.

세계 수백개 도시 중 기존 도심 도로에 트램 도입 사례 아직 없어

전 세계에서 운행되는 트램은 수백 개 노선에 달하지만 ‘기존 도심 도로’에 철로를 깔아서 운행하는 경우를 필자는 아직 찾지 못했다. 대전시에 트램을 권유하고 있는 몇몇 전문가들에게 그런 사례가 있는지를 물어봤지만 모두 대답을 못했다.

‘파리 T3’ 트램처럼 도심 외곽이나, 과거 전차 노선을 되살리는 경우는 있지만 전주시의 시도처럼 기존 도심에 새로 트램을 놓는 데 성공한 사례는 없다. ‘100% 불가능’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오정동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과 전주시가 겪었던 실패, 그리고 아직 세계적으로 그런 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전 트램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트램이 가능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대전엔 꽤 있다. 대전시가 트램 노선 일부를 변경하면서 추진 시기를 늦추려 하자 모 구청장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일부 주민들도 왜 우리 지역은 늦추느냐고 항의했다. 대전시가 트램 시범노선을 발표하자,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해당 지역 아파트 값이 2000만원 올랐다는 얘기도 들렸다. 다들 트램이 정말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반응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대전시가 트램으로 바꾸겠다고 한 뒤, 지역의 유력 건설업체 오너는 “잘못된 결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도시철도가 하늘로 가든 땅으로 가든, 어떤 시장이 결정을 하든 사업을 빨리 시작하는 게 절실한 기업인에게 대전의 트램은 현실성이 없는 방식이다. 그가 일부러 탄식할 이유는 없다.

런던시장보다 비겁한 대전의 침묵자들

대전 트램과 브렉시트는, 보통 사람들은 문제점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오정동의BRT처럼 문제점이 드러난 뒤에야 심각성을 깨닫는다. 영국은 국민투표 후에 찬성론조차 “어이쿠!”하고 스스로 놀라고 있다.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런던시장은 총리 불출마를 선언하며 꼬리를 내렸다. 

대전은 공무원도 시의원도 국회의원도 시민단체도 교수도 트램 문제에 대해 짐짓 모른 체한다. 트램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는 일반 시민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대전시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지도자들이면 ‘기존 도심 도로에 트램 도입 시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선 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오정동 상인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데도, 트램의 앞날이 뻔히 보이는 데도, 그래서 시민혈세가 허공에 줄줄 새는 데도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건 무슨 까닭인가?

브렉시트의 죄인이 된 런던시장처럼 나중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면 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도시철도가 실패하든 말든 시장이 하는 데까지 그냥 내버려두는 게 낫다는 방관자의 태도인가? 그렇다면 런던시장보다 더 비겁한 것 아닌가? 어쩌면 트램 문제보다 대전이 이런 도시라는 게 더 안타깝고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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