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업인] 이길환 진성엘엔엘 대표…"한 우물만 팠다"

'7월 20일 개통되는 대전 세종간 BRT 전 구간 가로등 설치. 세종시 도심지역 가로등 설치'. 지역 유일 철재가로등주 KS 인증 획득 및 관련 특허 기술 보유.

지역 산업조명업계에서 새로운 강자로 주목받고 있는 주식회사 진성엘엔엘이 자신있게 내세우는 최근 사업 실적과 자랑거리다.

산업조명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수 있지만 이 업체가 생산, 설치한 제품을 보면 대부분 '아!'라는 탄성과 함께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대표적인 생산제품은 가로등주, LED가로등기구, LED터널등기구, 조명타워, 태양광가로등주, 경관조명기구다. 쉽게 말해 가로등이나 터널속 조명을 설치하는 회사다.

이길환 진성엘엔엘 대표, 방위산업체 근무하면서 사업 구상

실내조명을 하는 회사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산업조명 업체는 많지 않은 게 사실. 진성엘엔엘이 창립될 당시인 2003년만해도 지역에서 산업조명을 생산하는 업체는 한 곳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LED에 대한 시장 수요가 늘어나면서 산업조명업계도 경쟁이 치열해졌다. 현재는 관련 업체가 1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진성엘엔엘이 이 업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경영자 때문이다. 진성엘엔엘의 등기상 대표이사는 채정민 씨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업체를 설립하고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실질적 대표이사는 이길환(38) 대표다. 채 대표는 이 대표의 부인으로 주로 회사 내부 살림을 맡고 있으며, 회사 경영은 온전히 이 대표의 몫이다.

진성엘엔엘이 주목받는 이유는 성공한 청년창업 사례란 점이다. 197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그는 공주고를 졸업한 뒤 공주대 지질환경공학과에 입학했다. 이 대표는 고향 인근에 있는 방위산업체에서 대체복무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솔직히 군대에 가기 싫었다"고 했다. 전공과 상관없는 전기공사 기능사 자격증도 일찌감치 취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가 근무했던 방위산업체가 바로 조명기구를 생산하는 업체였다.

3년간의 방위산업체 근무를 마친 그는 같은 업체에서 복무했던 선배로부터 창업 권유를 받았다. 선배는 이미 창업한 상태였다. 해 볼만한 사업아이템이고 어렵지 않다는 선배의 말이 솔깃했다. 더구나 실내조명이 아닌 산업조명이 생소하던 시절이어서 창업에 자신감도 생겼다.

고민끝에 이 대표는 결단을 내렸다. 나름 사업에 대한 영감도 얻었다. 사업 비전도 있었다. 그렇게  복학을 포기하고 고향인 공주에서 사업가의 발을 내디뎠다. 그의 나이 고작 25세였다. '진성엘엔엘'의 탄생 스토리다.

창업 후 그는 곧바로 사무실을 대전 서구 갈마동으로 이전했다. 공장은 그대로 공주에 두고 주된 사업무대인 대전으로 본사를 이전한 것. 말이 본사지 이 대표 혼자 1인 사업체였다. 창업 자금 3000만원은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방위산업체에서 받은 월급과 아르바이트하면서 틈틈히 모은 돈으로 충당했다.

사업 초기 이 대표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스물다섯'이라는 젊은 나이가 사업에 지장이 됐다. 거래처를 뚫기 위해 업체나 기관을 찾아가면 색안경부터 끼고 쳐다봤다. "젊은 사람이 제품에 대해 뭘 아느냐", "사업도 해 본 적이 없는 젊은 사람을 어떻게 믿느냐", "아버지 잘 만나서 사업하느냐" 등의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했다. 문전박대 당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 대표는 이 때를 회고하며 "멘탈이 붕괴된 시절"이라고 했다.

25세에 사업 시작...사회 편견과 부딪치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

이 대표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명함을 '대표이사'가 아닌 '영업부 과장'으로 만들고 옷도 나이들어 보이게 입었다. 또 젊은 사람답게 "(제 제품을) 써 줄때까지 올테니 알아서들 하시라"라는 엄포를 놓으며 매일 매일 업체로 출근했다. 심지어 "제 창고를 당신들 창고처럼 마음대로 쓰라"며 의욕적이고 패기있게 일했다. 무시당할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새벽에 출근해 밤 늦게 퇴근하며 영업을 했다.

창업 2년만에 당시 지역 조명업계에서 1~2위를 다투던 송촌조명과 서부조명에 납품하는 성과를 거뒀다. 조명유통협회에도 가입해 본격적으로 지역 조명업계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14년 동안 조명업계를 누빈 결과 지난해 기준 6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최고 90억원까지 매출을 끌어올릴 정도로 산업조명업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직원도 어느덧 17명에 달한다.

그동안 그가 지역에서 사업을 벌인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전 세종간 BRT 전 구간에 이 대표가 생산한 가로등이 설치된 것을 비롯해 세종시 신도심 도로변에도 이 대표가 만든 가로등이 매일같이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한밭수목원과 대전오월드, 한빛대교, 동춘당 공원, 서대전역사, 유림공원, 대청댐, 목척교, 송촌체육공원 등 대전지역 이곳저곳 뿐 아니라 공주 백제큰길 연결도로와 금강철도, 홍성여고, 서천고, 심지어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에 이 대표가 설치한 가로등이 있다.

20대 젊은 창업가가 100억을 바라보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에 대해 이 대표는 "한 우물만 팠다"고 했다. 이는 이 대표의 경영철학이다. 사업이 성장하자 주변에서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곁눈질 하지 않고 조명사업에만 매진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연구개발에도 꾸준히 자금을 투자하면서 기술력 제고에도 힘쓰고 있다.

LED 터널용등기구 특허와 대전 충남에서 유일한 철재가로등주 KS 인증을 비롯한 KS 인증 5개와 각종 제품에 대한 인증 40여개의 고효율 인증은 모두 이 대표의 연구개발에 대한 의지의 결과다. ISO 9001·14001 인증도 따냈다. 이런 기술력은 경쟁력으로 부각돼 LH나 수자원공사, 국토관리청 등 공공기관에서도 인정받게 받기에 이르렀다.

이 대표는 현실에 안주하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업계 팽창에 따른 경쟁업체의 출현과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대표는 눈길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조만간 있을 조명박람회에 참가해 해외 바이어들에게 자신이 만든 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과 함께 코트라와도 접촉해 중동 등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인도 시장은 이 대표가 첫번째 목표로 삼은 곳이다.

끝까지 한 우물만 파겠다는 이 대표..."지역업체도 믿고 써 달라"

그는 "14년 동안 조명 외길을 걸어왔고 조명시장도 재패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신기술과 신제품을 개발하고 해외 수출도 추진 하는 등 한 우물만 파겠다"고 했다. "제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일이자 이 자리까지 온 비결은 조명밖에 몰랐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대형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업체보다 중앙의 큰 업체를 선호하는 행정관청의 처사 때문이다.

그는 "지역업체는 무조건 작은 사업만 해야 한다는 선입견으로 인해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되고 있다"며 "지역업체가 성장하면 지역인재들을 채용하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역업체를 믿고 써달라"고 호소했다.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으로 선정된 이 대표, 아직은 어린 나이지만 고향 어르신들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그의 경영 철학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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