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외롭고 힘든 그를 응원하며

지난 3일 새누리당 20대 첫 원내대표로 충청 출신 4선 정진석 당선인이 선출됐다. 이완구 전 총리에 이은 충청권 두번째 원내대표가 선출된 순간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충청도가 정국의 중심에 섰다. 4.13총선을 통해 충청권은 다선 중진이 대거 배출됐다. 5선에 성공한 더민주 박병석 의원(대전 서갑)은 국회의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같은 당 4선 양승조 의원(충남 천안병)은 비상대책위원 선임과 동시에 보건복지위원장이 유력하다. 또 이상민 의원(4선.대전 유성을)은 원내대표 선출에는 실패했지만,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언변으로 충청도민의 자긍심을 심어줬다. 박완주 의원(2선.충남 천안을)은 원내수석부대표란 중책을 맡았다.

다선 중진 대거 배출..정국 중심에 선 충청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으로 눈을 돌려 보자. 3선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예산)이 사무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이명수 의원(3선. 충남 아산갑)도 원구성에서 상임위원장 한자리를 꿰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지금의 ‘충청대세론’을 이끄는 장본인은 4선의 정진석 원내대표(충남 공주·부여·청양)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이어 충청권 2번째 원내대표에 올랐다. 그는 원내대표 당선 직후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새누리당 마무리투수 겸 선발투수 하겠다. 박근혜 정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정권 재창출에 선발투수가 되겠다. 여러분께서 고단한 여정을 함께 해줘야 한다. 뭉쳐야 한다. 대동단결해야 한다. 협치와 협력으로 새로운 활로를 열겠다. 그래서 우리에게 등 돌린 민심을, 우리에게 회초리 든 민심을 되찾아 오겠다.”

이런 포부를 밝혔던 그가 원내대표 취임 보름 만에 위기에 부닥쳤다. 바로 지난 17일 있었던 비대위·혁신위 출범을 위한 상임 전국위와 전국위가 친박(친 박근혜)계의 조직적인 불참으로 무산되면서다. 당내 계파 갈등은 폭발했고, 정 원내대표는 거취 압박을 받고 있다. 비박(비 박근혜)계 분당 설까지 나오는 등 당 안팎에선 정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던지는 목소리가 높다.

충청대세 중심 정진석, 어깨가 무거워 보여

취임 보름 만에 리더십 위기에 직면한 정진석 원내대표. 지난 18일 광주 5.18 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출처: 새누리당 홈페이지)
지금 정 원내대표의 심경은 어떨까. “저는 힘이 필요하다. 외롭고 힘들다”고 했다. 지난 20일 충청권 출향 명사들 모임인 백소회(百笑會)에서다. 이날 모임은 그의 원내대표 당선 축하연 성격으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주인공이었던 그는 “기운 좀 실어주십시오”라며 도움을 청했다. 그 말은 참 쓸쓸하고 외롭게 들렸다.

정진석이 누군가.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과 정치부차장, 논설위원 등을 거친 언론인 출신으로 정치적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99년 자민련 명예총재 특보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JP(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적 아들이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JP 행사에서 휠체어를 민다.

그의 부친은 두 번의 충남도지사를 거쳐 내무부장관(현 행정자치부장관)을 지낸 6선(10대~15대) 고(故) 정석모 전 의원이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친의 지역구였던 공주·연기에서 자민련으로 첫 금배지를 달았다. 18대까지 내리 3선을 했다.

엘리트 코스 밟은 충청도 프랜차이즈 정치인

정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와 중진의원들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비대위와 혁신위 구성에 대해 재논의 시간을 가졌다. 정 원내대표는 "당을 조속히 정상화시키는데 모든 역량을 모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중진들은 정 원내대표 결정을 지켜보겠다며 다시 공을 넘겼다. (출처: 새누리당 홈페이지)
2005년 공주·연기 재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자민련 후신격인 국민중심당 최고위원과 원내대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들어왔다. 국회 정보위원장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으로 발탁됐고, 국회 사무총장도 지냈다. 정말로 화려한 경력이다. 그런 그가 4선 성공 뒤 원내사령탑에 올라 계파 청산을 선언했지만, 결국 계파 헤게모니 싸움에 벼랑으로 몰렸다. 그리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내년 대선, 매우 어렵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게 당원과 국민에 대한 도리다. 그런 기초 위에서 모든 걸 다퉈야한다. 원내대표에 출마해 여소야대 3당 구조는 협치와 혁신의 명령이라고 했다. 결국 계파청산 하라는 것 아니냐. 계파청산과 혁신을 하기 위해선, 반성하지 않으면 새누리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 선출된 지도부도 저 혼자 밖에 없기 때문에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했다.”

지난 19일 저녁, 국회 근처인 여의도 서울시티클럽에서 충청향우회 중앙회 주최로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축하연이 열렸다. 이날의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정 원내대표였다. 그는 행사 내내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한꺼번에 몰린 취재진으로 초반 행사진행마저 어려울 정도였다. 그의 발걸음에 충청향우회 행사가 ‘모처럼’ 빛났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정 원내대표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계파 청산 총대 멘 결과 '고립무원', 누가 그를 일으킬 건가

20일 오전 충청권 출향 명사들 모임인 백소회에 참석한 정 원내대표는 "힘이 필요하다. 외롭고 힘들다. 기운을 좀 달라"며 심경을 토로했다.
그리곤 다음 날(20일) 오전 그는 백소회 모임에 와서 외롭다며, 기운을 달라고 했다.

“모두가 여소야대 충격에 쌓여있는 그 상황에서 누가 원내대표를 맡으면 좋은가. 그런 상황에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되니까 그를 누가 상대할건가. 그렇게 출마하게 됐다. 처음부터 손들고 나가겠다고 한 게 아니다.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져 힘든 출발을 했다. 친박계 의원들도 많이 도와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는 친박·비박 따지지 않고 다 만나 읍소했다.”

이어 광주에서 열린 5.18행사를 마치고 올라오면서 고향인 공주에 들른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부친 선영을 다녀온 이야기도 했다.

“최근 보여준 일련의 일들로 선배들께 걱정을 끼쳐 송구스럽다. 다 제가 부덕하고 부족한 탓이다. 어제 공주에 있다 저녁에 올라왔는데, 고향 들녘에 활력이 넘치더라. 선거 다음날 산소 갔다가 어제 다시 찾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여쭤봤다. 아버님은 늘 ‘정관정요(貞觀政要: 당 태종이 군신들과 정치 문제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책)’을 인용하며 국민은 ‘바다’, 정권은 ‘조각배’라고 했다. 국민이 성나면 언제든 뒤집힌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는데, 아버님 말씀이 정답 아닌가 싶다. 아직도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오늘 바로 가서 4선 이상 중진들 모시고 들어봐야겠다. 여러 의견이 나오면 결정할 것이다. 그 결정은 매우 중대한 기로에 큰 갈림길의 결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갈림길 선 정진석..충청인이 기운 북돋아야

지난 19일 저녁 여의도 서울시티클럽에서 열린 충청향우회 중앙회 행사에서 만난 정 원내대표와 친박계 좌장 서청원 의원(천안 출신)이 인사 뒤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이날 열린 새누리당 중진 연석회의는 정 원내대표의 고민을 풀어주지 못했다. 정 원내대표는 4선 이상 중진의원들에게 당 수습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정 원내대표의 결정을 지켜 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로 하여금 그는 다시 갈림길에 섰다.

충청권의 높아진 위상만큼 그가 짊어지고 있는 집권 여당 원내대표란 짐은 무겁고 벅차 보인다. 솔직히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에서 말했듯이 아주 오랜만에 충청도가 정국의 중심에 선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정진석’이다. 때문에 그는 쉽게 그 자리를 내려와서도 안 되고, 충청도 역시 그를 놓치면 안 된다.

백소회 모임에서 충북 제천 출신인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서울 서초갑)은 정 원내대표를 이렇게 감쌌다. “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 해달라고 해서 상임위 활동이나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와드린 이유는 같은 충청인이고,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정치인 중 한분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이 생각 하나만으로 나섰던 게 방해가 된 건 아닌지 싶다.”

'정진석 판' 변화는 정면 돌파 뿐..힘을 내요 슈퍼파워~

이 의원은 “기자들 만날 때 늘 드리는 말씀은 당에 봄이 오고 있다. 당이 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당의 의사결정 과정이 걱정되는 면이 있었다. 결정이 늘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공지하는 수준이었다. 토론이 없어 불만이 쌓였는데, 정 원내대표 오고 나서 의총에서 토론과정이 허용됐다. 누구나 토론할 수 있다. 늘 형식적 토론 이후 결론 통지였는데, 의총대로 결론이 내려지고 의원들 전수 여론조사 많이 나온 대로 결정하는 절차로 최근 일들이 이뤄졌다”고 했다.

“밖에서는 잘 모르는데, 당을 이렇게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렇게 이뤄져왔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정진석 판’ 변화 아닌가. 이 변화가 계속 오게 하려면 충청부터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청시대, 충청대망론, 충청대세론. 중앙 정치권에서 이런 말들이 물밀 듯 쏟아져 나오는 이때, 지역이 배출한 ‘귀중한 자원’을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 피아(彼我) 구분 못하고 물고 뜯어서야 되겠나. 정 원내대표 역시 600만 충청도민의 기운을 받아 힘을 내야 한다. ‘정면 돌파’의 과단성이 필요하다. 최종 결정과 결단은 원내대표의 몫이다. 힘을 내요, 슈퍼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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