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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
  • 김경훈
  • 승인 2016.05.18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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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글을 쓰고 싶었다.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거창하게 생각한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글로 옮겨 보고 싶었다. 글을 쓰기 위해 외부로 향한 안테나를 꺼버린 채 도서관에서 16개월을 보냈다. 남들이 꽃놀이를 떠나고, 휴가 계획을 잡고, 단풍구경을 갈 때도, 엉덩이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도서관 내 지정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어리바리 하고 있을 때 선배의 조언으로 책 쓰기 책들을 구입해 읽었다. 그 책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3개월~6개월 동안 열심히 글을 쓰면 책 한권 분량인 ‘한 꼭지 당 A4용지 2장 반 분량으로 40개의 꼭지를 완성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그랬을까? 그럼 글의 깊이나 완성도는? 독자와의 공감대는? 내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책을 내줄까? 책 쓰기 책에 나와 있지 않았던 것. 그건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10개월 동안 쓴 내 글을 읽어봤다. 허접한 짜깁기 수준이었다. 다시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동안 쓴 글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4개월 뒤, 새로 쓴 글을 읽어보니 그것도 쓰레기……또 3개월……이런 과정을 통해 내 글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그 즈음 ‘투고’를 하기 시작했다. 대형서점을 찾아 책 뒷장에 나와 있는 출판사 이메일 주소를 적어와 여러 곳의 출판사에 내 글을 보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어느 곳도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그때 생각난 문장 한 줄이 있었다. 청년시절에 다녔던 공장 벽에 쓰여 있던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글씨. 중국 송나라 때 문인이었던 구양수는 벽에다 자신이 쓴 글을 붙여놓고 볼 때마다 고쳤다는데, 나도 그렇게 하면 될 거라 믿었다. 다듬고, 고치고, 수정해서 다시 10여 곳의 출판사로 보냈다. 그런데 이번엔 ‘거절 편지’가 돌아왔다. 비참하고, 자존심 상하고, 넌덜머리가 나서 때려치우고 싶었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던 열정과 에너지도 어느새 수그러들어 있었다.

나는 머리도 좋지 않고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성공한 삶도 아니다. 어려운 성장기를 거쳐 젊은 시절도 근근이 버티며 살았고, 여러 차례 넘어지며 인생의 쓰라림도 맛봤다. 하지만 내가 자신 있는 것이 있다. 한번 시작한 것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될 때까지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것. 이게 바로 내가 가진 유일한 특기다.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음속의 나에게 수없이 되풀이 한 말.

“누구에게든 전성기가 있기 마련인데, 나의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 책이 발간될 때는 나는 웃고 있을 거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글쓰기 16개월째. 벚꽃 잎이 눈처럼 흩날리던 어느 봄날이었다. 당시 나는 심한 스트레스로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이명’ 증상이 재발되어,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인간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감동한다더니, 내 글을 인정해 주는 출판사 대표가 너무나 고마웠다. 아,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구나. 감정이 복받쳐 오른 나는 울고 있었다. 솟구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차를 세우고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 울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노래를 잘 부르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머리가 좋거나, 공부를 잘하는 재능 말이다. 그런데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은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잘 만드는 손재주,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솜씨, 내면을 울리는 글쓰기, 훌륭한 음악을 작곡하는 역량 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것을 끄집어내느냐, 낼 수 없느냐는 오로지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때, 배신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처절한 실패를 맛봤을 때,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을 찾아낸다 한 듯 금방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석을 다듬는 것처럼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걸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도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은 뛰어난 재능으로 정상에 올라선 사람보다, 오랜 세월 꾸준히 노력한 사람이다. 타고난 재주로 단기간에 이루어 놓은 업적보다, 긴 세월 땀 흘린 사람이 더 좋다. 책 쓰기는 내게 이러한 것들을 알려 주었다. 흔들리던 내 인생이 가야 할 길을,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주었다.

나는 남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스토리는 많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경험담은 드물다는 것에 주목했다. 기쁨의 감정도 슬픔을 통해 빛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누군가의 실패한 경험담이 아닐까? 성공담은 동기부여를 해주지만 좌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밑바닥까지 살았던 얘기. 배신감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고, 처절했던 경험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거다. 부의금이 없어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던 참담함, 휴가비가 없어 4식구가 일주일동안 방안에 처박혀 있던 비참함, 아들의 급식비를 친구에게 빌렸던 절망적인 심정을 자신 있게 말할 거다.

책 한권이 완성된 지금, 나는 이제 옛날의 내가 아니다. 화사한 꽃을 봐도 스스로를 자학하며 고통 뒤에 숨어 있던 내가 아니고, 좋은 말을 들어도 느낌 없이 받아들이던 내가 아니며, 한때 모든 것을 거부하던 과거의 내가 아니다. 
 
이 책은 내 인생의 진지한 성찰의 기록이다. 평생을 통 틀어 무언가에 이렇게 몰두해 본적이 처음이다. 그래서 미련이나 후회도 없다. 세상으로 나가는 내 경험과 깨달음이 부디 누군가의 내면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래서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나의 노력은 보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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