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전 충청남도 부여군 부군수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지금은 두 분 다 고인이 되신 무애 양주동의 시에 작곡가 이흥렬이 곡을 붙인 노래 ‘어머니의 마음’ 1절이다.

엊그제 어버이날은 일요일이기도 해서 교회에 갔다. 교회권사인 집사람의 강권에 못 이겨 억지춘향으로 나간 것이다. 마침 목사님도 설교 주제를 어버이날에 맞춘 듯, 부모님을 무시하지 마라, 부모님을 기쁘게 하라, 부모님을 용서하라(이 세상에 부모님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없었던 사람은 없다. 그런 상처의 기억을 지우고 부모님을 용서하라)는 등등 좋은 말씀을 많이 했다.

특히, 작곡가 이흥렬의 일본 유학시절 일화는 감명 깊었다. 「동경의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이흥렬이 “저에게 피아노가 필요해요”라고 집으로 편지를 보내왔는데, 가난했던 그의 어머니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솔방울을 따 장에 내다 팔아야 했다. 손에 가시가 들고 피가 나도록 솔방울을 따 어렵사리 모은 돈을 자식에게 보내줘 피아노를 사게 했다. 무사히 음악 공부를 마친 이흥렬은 어머니의 고생을 알게 됐고, 양주동이 지은 시 ‘어머니의 마음’을 보고 크게 감동해 곡을 붙였다」한다.

집에 돌아와 작곡가 이흥렬을 검색해 보았다. 이흥렬은 1909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났는데,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동양음악학교(현 도쿄 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귀국 후에는 한국의 슈베르트로 불리며 주옥같은 곡들을 썼는데, <자장가> <섬집 아기> <바위고개> <봄이 오면> <꽃구름 속에> 등등이 그의 곡이다. 병사들이 목청 높여 부르는 <진짜 사나이>도 그의 작품이다. 훌륭한 어머니가 그 아들을 훌륭히 키웠던 것이다.

자고로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어머니들이 많았다. 명필 한석봉의 어머니,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사형수가 된 아들 안중근에게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죽어라”고 한 조 마리아 여사 등등등.

물론, 세상에는 자식 앞에서만큼은 한 치의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길러 낸 아버지들도 많다. 날품을 팔아서라도 자식들을 성공시킨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가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날’을 아버지를 포함하는 ‘어버이날’로 해 ‘어버이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는다’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부모의 자식 사랑만큼 자식들의 부모 사랑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일요일은 신문이 오지 않아 인터넷 신문을 보노라니, ‘어버이날에도 무료급식소에 줄서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어르신들 모두가 자식이 없지는 않을 텐 데 말이다. 어버이날에도 한 끼 해결을 위해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는 심정이 오죽 하겠는가. 자식들마저 있다면 더 참담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길거리에서 빌어먹는 분들은 더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가끔 길거리에서나 등산길에서 개를 애지중지 안고 다니거나, 데리고 다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강아지도 있고 성견도 있다. 추운 겨울에는 덧옷을 입힌 개도 볼 수 있다. 때로는 털을 빗기고 목욕을 시키고 개 미용실에도 데려가 단장을 시킨다 한다. 어떤 개에게는 영양가 많은 사료만 골라 먹이고 개 껌까지 씹힌다 한다. 이쯤 되면 개 팔자가 상팔자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여기서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의도가 전혀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애견인들이 불효자라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다만, 팔자 좋은 개의 신세에도 미치지 못하는 처지를 감내하고 계신 어르신들이 안타까워 상팔자를 거론했을 뿐이다. 어버이날에도 서글픈 어버이들이 계신 우리사회는 딱한 사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어버이날에 어릴 때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권효가(勸孝歌)’ 몇 구절을 옮기며 허튼소리를 마치려 한다.

‘부생모육(父生母育) 그 은혜는 하늘 같이 높건만/ 청춘남녀 많은데도 효자효부 드물구나.’ ‘과자 봉지 들고 와서 아이 손에 쥐어주나/부모 위해 고기 한 근 사올 줄을 모르도다’ ‘열 자식을 키운 부모 한결같이 키웠건만/열 자식은 한 부모를 귀찮다고 생각하네. 

(첨언 : 필자도 시골에 계신 노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부끄러운 불효자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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