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회계학’은 대학시절에 힘들게 공부했던 과목이다. 종류도 많았다. 세무회계, 원가회계, 재무회계, 기업회계 등. 이 교과목들을 매학기 마다 배웠다. 그런데 지금도 아쉬운 장면 하나가 있다. 원가회계 시간에 교수님이 어려운 부분을 한참동안 설명하더니 칠판에 연습문제를 적으며 말했다.
“이건 꼭 알아야 하는 거니까 한사람씩 앞으로 나와서 풀어보자.”

앞줄에 앉은 사람부터 앞에 나가 문제를 풀기 시작했지만 나는 푸는 방법을 몰랐다.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 가방을 챙겨 슬그머니 뒷줄로 자리를 옮기며 생각했다. ‘오늘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풀어볼 순 없을 거다. 버티자. 그럼 된다.’ 내 예상은 맞아 떨어진다. 예닐곱 명쯤 문제를 풀었을 때 수업 끝나는 종이 울렸고 나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기말고사에서 어리석은 내 행동을 후회한다. 그 문제가 출제 된 거다. 원가회계는 C학점이었다.

비슷한 일이 또 있다. 석사과정 중 ‘사회조사 방법론’이란 과목이 있었는데, 생경한 단어들이 많아 수업을 들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도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 학기만 버티면 된다.’ 그렇게 그럭저럭 학기를 끝냈지만 다음 학기에서 곤란한 상황에 직면 한다. ‘사회조사 방법론’은 논문을 쓰는 방법이었는데 이걸 충분히 익히지 못하면 논문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책을 펼치고 다시 공부해야만 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 버티고 견디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알아야 하는 것을 모르면 고통이 찾아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신생아실에서 아기가 혼자 우는 일은 없다. 한 아기가 울면 다른 아기들도 따라 우는데, 타인의 울음소리에 고통을 공감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신의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면 울지 않는다. 본인의 울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타인과 공감하려는 본능으로 인해 우리는 주변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수다를 떤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매일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속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찾았다. 그게 소통이라 믿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여태까지 무엇을 위해 노력했을까? 학창시절을 거쳐, 20대, 30대, 40대를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 세월 속에서 성공의 기회도 있었을 텐데 왜 잡지 못했을까?

이런 고민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 있다. 그건 ‘내가 나를 모른다’는 거였다. 겉으로는 행복한 척 웃고 있지만 나의 내면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내가 이토록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마음속 나와 진지하게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란 것도 알았다. 나의 내면세계는 나로부터 관심 받아야 하는 귀중한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외치는 아우성을 외면하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삶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타인의 울음’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울음’에 먼저 반응하는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아직도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당연하다. 자신과 진지한 대화를 해보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스펙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그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 보는 것이라고. 나는 누구일까?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할까? 내 에너지를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출항에 앞서 정확한 목적지를 정해 놓은 배는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는 것처럼 그 출발점은 바로 ‘자신과의 대화’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700만 관객의 영화 ‘히말라야’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엄홍길 대장(황정민 분)이 이런 말을 한다.
“너무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제가 몰랐던 제 모습이 나옵니다. 그동안 쓰고 있던 모든 가면이 모두 벗겨지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평생 그 맨얼굴을 모른 채 살아가는 지도 모릅니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절차가 있다. 승패가 갈리고 난 뒤 판국을 비평하기 위해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는 거다. 이 과정을 통해 지게 된 원인을 찾고 발전을 위한 되새김을 한다. 바둑판에선 ‘악수’를 두며 지는 것을 ‘패착’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둑을 둘 때는 모르지만 판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의 수가 패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내 인생의 ‘복기’였다. 내가 겪은 방황, 경험, 상처, 고통, 배신, 괴로움, 깨달음의 감정들을 글로 적으며 내 삶의 궤적을 되짚어 봤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나와 만났다. 사실 나는 글을 써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에 문예부 활동도 해보지 않았고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 본 적도 없다. 내가 가진 글쓰기 이력은 고교시절에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 작가가 전부였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진행자로 활동하다 보니 작가가 써준 시나리오(문어체)를, 입말(구어체)로 바꾸는 일을 20년 동안 했다. 그걸 거꾸로 하려니 얼마나 어렵던지…. 말로 하라면 할 수 있겠는데 글로 옮기면 왜 그리 허접하고 초라하던지….

하지만 글을 쓰며 가장 힘들었던 건 ‘미래에 대한 불투명’이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다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글쓰기는 달랐다. 하루 종일 산을 올라갔다가 어두워지면 다시 내려와 다음날 처음부터 다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든 처음은 있는 법. 열정이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해낼 수 있을 거다. 이런 단련을 통해 내가 터득한 것은 ‘배짱’이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낯간지러움을 극복하는 ‘용기’와 날선 비판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겸허함’을 배웠다.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내 글을 읽는 분들은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 거다. 그래서 내 글이 누군가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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