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채용비리 감사, 시민단체 참여시켜 조사하자

대전도시철도의 채용비리 문제를 제기한 도시철도 경영이사 황재하 씨가 결국 해임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그가 공익제보자라며 해임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대전시에 전달했으나 묵살됐다. 황 씨에 대한 괘씸죄로 보이나 객관적 사실부터 밝혀져야 한다.

이 사건에 대한 대전시 감사(監査)의 공정성은 처음부터 의심을 받았다. 비리를 누가 저질렀는지보다 누가 언론에 누출했는지에 감사의 초점이 맞춰졌다. 완전히 거꾸로 된 ‘나쁜 감사’였다. 그 감사 결과를 가지고 이뤄지고 있는 대전시의 발표와 조치는 신뢰하기 힘들다.

채용 비리보다 더 위험한 대전시의 ‘나쁜 감사’

대전시의회가 나서야 한다. 이 사건은 시민들에게 두 가지 의문을 던져 주고 있다. 첫째 누가 이 비리 사건의 주동자인가 하는 것이고, 둘째 이 사건을 대하는 대전시의 비상식적인 태도에 대한 의문점다. 첫째 문제는 사법기관에서 밝힐 일이지만 둘째 문제는 지방의회가 아니면 밝힐 도리가 없다. 따라서 수사 중인 사건이라 해도 사법기관과 부딪히는 문제는 없다.

‘100% 공공기관’인 대전도시철도공사에서 점수를 조작해서 합격자를 바꾼 건 상상하기 힘든 범죄지만 이 사건을 대하는 대전시 태도의 위험성은 그 이상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과 황 이사의 주장대로라면, 대전시는 도둑보다 오히려 도둑 신고자를 때려잡고 있다.

황 이사는 해임 통보를 받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건의 배후로 ‘비서실’까지 언급했다. 아니라면 책임져야 될 말이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이젠 시 산하기관의 경영이사와 대전시가 맞붙어 싸우는 모양새가 됐다. 시민들은 더 혼란스럽고, 대전시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보다 객관적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시의회 아니면 밝힐 방법 없는 ‘거꾸로 감사’

이런 사건은 지방의회의 전형적인 사무조사 대상이다. 시의회는 채용비리 자체는 물론이지만, 이 사건에 대한 대전시 ‘나쁜 감사’에 대해 보다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채용 비리 문제는 사법기관에서 수사중인 만큼 결과가 나오겠지만 대전시의 ‘나쁜 감사’는 시의회가 아니면 밝힐 곳이 없다.

채용 비리는 범죄로 여기면서도 ‘나쁜 감사’에 대해선 대수롭지 않게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없다. 합격자 바꿔치기는 상식적인 공직자라면 하지 않을 개인적 범죄에 가깝지만, 비상식적인 감사가 용인된다면 대전시 조직 전체를 죽이게 된다.

대전시의 나쁜 감사와 해임조치는 ‘앞으로 비리를 유출하는 자는 반드시 보복당한다’는 메시지를 공무원들에게 남기고 있다. 채용시험 합격자 수 십 명을 바꿔치기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행정 전반에 대해 부정부패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패악한 행정이다.

‘나쁜 감사’가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해도 폐해는 다르지 않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냥 넘겨선 안 되는 문제다. 시의회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런 감사는 계속될 것이고 대전시는 비리천국이 될 수도 있다. 이전에도 이런 식의 감사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심한 경우는 없었다.

시의회 조사특위 만들어 ‘대전시 감사’ 조사해야

시의회는 ‘도시철도 채용비리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 하루빨리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필요하면 시민단체나 전문가도 참여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족스럽지는 못할 수도 있으나 대전시의 ‘나쁜 감사’보다는 나은 나은 조사가 가능할 것이다.

대전시의회에는 특위에 반대하거나 미온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시의회는 현재 ‘여대야소’의 구성이니 특위를 꾸리는 것조차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지인은 “이번 사건으로 특위를 하자고 나서면 안 된다고 할 명분이 없는 문제여서 어떤 당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방의회가 이런 문제에 눈을 감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시 산하 기관에서 합격자 바꿔치기라는 상식 이하의 일이 발생했고, 그런데도 집행부가 ‘감사의 칼’을 오히려 비리 누출자에게 돌려 보복을 가하고 있다. 이런 지경인데 시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지방의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같이 욕먹어도 국회와 지방의회 다른 점

똑 같이 욕을 먹지만 국회와 지방의회가 다른 점이 있다. 큰 일이 터지면 국회에선 적어도 어느 한쪽은 현장으로 달려간다. 최소한 달려가는 시늉은 한다. 그러나 지방에서 오히려 큰 사건일수록 지방의회는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치단체장이 싫어하는 사건엔 눈을 감는다. 대전시의회는 이번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김인식 대전시의장은 얼마 전 “집행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의회 인사권 독립은 마땅히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틀린 말은 아니나 인사권 확보에 앞서 시의회 스스로 집행부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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