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20대 책임론’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

전국 어디서나 미리 투표를 가능하게 해 투표율을 높여보자는 게 ‘사전투표’ 제도다. 하지만 정작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청년들의 투표권행사는 더 어려워졌다. 기존의 부재자 투표소가 학내에서 사라졌기 때문.

이유는 사전투표소 설치 기준 때문이다. 이전 부재자 투표소는 16개 구·군에 1개씩 설치되고 2000명 이상이 모여 있는 밀집시설에 추가로 설치할 수 있어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투표가 가능했다. 자연스럽게 선거철 대학 캠퍼스에선 짧게나마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사전투표소는 각 읍·면·동 단위로 1곳씩 두게 돼 있는데, 주민자치센터 위주로 설치된다. 지난 19대 총선 때 전국 29개 대학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됐던데 반해 이번 20대 총선에서 설치 된 대학 내 사전투표소는 단 6곳에 불과하다. 청년들의 투표 접근성은 오히려 더 낮아진 셈.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 조사 결과 이번 총선 사전투표 의향은 20대가 21.8%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도 연령대 사전투표율은 20대가 15.97%로 가장 높았다. 대학 내 사전투표소 설치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달 30일 중앙선관위에서 발표한 연령별 적극 투표 의사 조사에서 20대는 55.4%로 지난 19대 총선과 비교할 때 19.3%p 증가한 경향을 보였다. 선거 때마다 저조한 투표율로 눈총 받았던 20대 유권자들의 변화조짐을 엿볼 수 있는 수치다.

이에 반해 주요 정당들은 대학 및 청년 관련 공약 제시에 소홀했다. 오히려 과거와 비교해 후퇴한 수준이라는 평을 받았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등록금 관련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고,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공약이었던 반값 등록금보다 후퇴한 공약을 내놨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 준하는 수준의 공약은 정의당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현 정부의 대학 정책을 수정해 비슷하게 가져온 수준이다. 40개 대학과 청년단체가 모인 ‘대학생·청년 공동행동네트워크’는 최근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대학 캠퍼스 내 사전투표소를 설치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선거에 필요한 전용 망 설치와 예산문제, 기존 부재자투표 때보다 늘어난 투표소 개수 등을 들어 학내 투표소 설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지훈 대학생·청년공동행동네트워크 대표(현 ‘청년하다’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전투표의 목적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이를 제일 필요로 하는 유권자 가까이에 사전투표소를 설치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에는 대학생과 교직원 등을 포함하면 2만 명 이상이 상주한다”고 했다. “학내 투표소를 설치하면 선거 초년생인 청년층의 선거문화 조성은 물론 20대 투표율도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도 했다.

‘20대 책임론’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시각”이라고 했다. 대학생과 청년들이 제시하는 투표시간 연장, 사전투표소 설치 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서는 거론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청년층의 투표 독려를 위해서는 규정이 개정되거나 해석의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번 선거는 끝났지만 내년 19대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학내 사전투표소 설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모두들 “세상은 청년들의 손에 달렸다”고들 한다. 하지만 매번 그랬던 것처럼 투표율은 낮을 것이고, ‘2030책임론’은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한국에서 20대 투표율이 낮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치열한 입시를 겪으며 정치를 접해 본 적 없는 선거 초년생. 아직 직업도 없고, 소속과 거주지도 뚜렷하지 않은 이에게 나의 ‘대변자’를 선택하는 일은 일반 사람들보다 벅찬 일이다.

그럼에도 이제 20대는 움직이려 한다. 당연히 이들을 보는 시각도 변해야 할 것이다. 매번 반복되는 ‘20대 책임론’ 말고, 투표도 안하면서 반값 등록금 타령하지 말라는 꾸중 말고, 신생 유권자들이 정치 무관심과 정치 혐오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의 투표 문화를 지켜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내년 선거에선 삼삼오오 모인 대학생들이 학내 투표소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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