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 아니니까 아껴 써라.”
절약 정신이 몸에 배인 아버지는 용돈을 줄때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돈 벌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우리 아버지의 말씀이 틀렸다. 얼마 전 하늘에서 돈이 떨어졌다.

‘2016년 2월 20일. 충북 청주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현금이 뿌려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12층에 사는 집주인 A씨가 이불을 털다 이불속에 들어있던 현금 650만원이 바람에 흩날렸다. 5만 원 권 지폐 130장이 아파트 단지 안팎 인도, 주차장 등에 떨어지자 이를 본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이 나섰다. 떨어진 돈 중 580만원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줬지만 70만원은 아직 회수하지 못했다. 경찰은 길에 떨어진 현금을 가져가면 점유물이탈횡령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돈을 주울 경우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돈은 집주인이 두 자녀 등록금을 내기 위해 대출받은 돈이었다.’ <충청투데이- 2016.02.20>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받는 느낌은 의아함이다. 나머지 70만원은 어디로 갔을까? 그 돈을 가져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주운 돈으로 음식을 사먹으면 그게 목으로 넘어 갈까?

살다보면 상식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난다. 남들이 어떻게 되건 말건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아파트를 예로 들어 볼까. 지하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관 앞이나 인도 옆에 불법 주차를 한다. 그나마 승용차는 좀 나은 편이다. 포크레인, 기중기, 사다리차, 덤프트럭 까지 아파트 단지로 들어온다. 그로 인해 어린이들이 길을 건널 때 위험하다고 여러 차례 안내 방송을 해도 소용이 없다. 강력스티커를 붙이면 되지 않겠냐고? 당연히 붙인다. 하지만 무용지물이다. 그들에게 뿌리는 모기약 하나면 만사형통이고, 차에서 떼어낸 스티커도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 주변을 어지럽힌다. 그런데 더 분통 터지는 일이 뭔지 아는가?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과태료를 부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래 전에 읽은 책 중 공지영 작가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었다. 단편 소설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느닷없이 이 책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제목 때문이다. 응축된 뜻이 송곳처럼 날카롭다.

25살 때 내가 근무하던 회사의 국장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못난 사람일수록 쥐꼬리만 한 권력만 잡아도 턱 없이 우쭐댄다던가. 그는 아랫사람들을 무시하며 횡포를 일삼았다. 비정규직이었던 나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였다. 내가 야간대학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 “주제를 알아야지. 꼴에 무슨 대학을 다닌다고”라는 말을 내 면전에다 퍼부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등록금을 내 주는 것도 아닌데 왜 험한 말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사람을 하인 부리 듯 들들 볶아댔다. 담배 사오라, 구두를 닦아오라, 약국 가서 소화제를 사오라, 심지어는 대학에 다니는 자기 딸의 무선호출기(삐삐) 연체료를 은행에 가서 대신 납부하고 오라고까지 했다. 할 일도 많은데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은행에 갔더니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그때마다 내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불만 탓이었을까.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졌다.

‘송년회’ 1차 회식을 끝내고 2차로 자리를 옮겼을 때다. 가장 좋은 술안주는 ‘직장상사 도마 위에 올려놓기’라는 말처럼, 집으로 들어간 국장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취기가 오를수록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술잔이 돌수록 솔직한 대화가 이어졌다. 사람을 무시한다, 부당한 일을 시킨다, 되지 않은 말로 괜한 트집을 잡는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국장님 머리 빗는 모습 보셨어요? 엄청 공을 들이던데요?”

나는 안다. 부족한 머리 숱 때문에 그런 다는 걸. 헤어스프레이 심부름을 자주 했던 탓에 많이 봤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님 미움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대목에서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오버해서 하고 만다. 직접 흉내까지 낸 것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눕힌 다음 스프레이를 뿌리고 브러시로 마무리 하는데, 왼쪽 머리카락을 오른쪽으로 널 듯 해야 합니다. 요렇게요.”
내 시범을 보며 동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다음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자 국장이 나를 좀 보자고 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어제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슬프게도 내 예감은 적중한다. 방으로 들어가자 그가 물었다.

“네가 어제 사람들 앞에서 내 흉내 냈냐?”
머릿속이 하얘졌다. 누군가 어제 일을 일러바친 것 같았다. 대충짐작이 갔다. 국장에게 아부하는 꼴이라니. 미처 답변을 준비하지 못한 내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있자 국장이 재차 물었다.
“내 흉내를 내서 사람들이 엄청 웃었다던데? 그랬어, 안 그랬어?”
다 알고 물어보면서 뭘 어쩌란 말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술기운에…….”
순간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불이 번쩍했다. 쓰고 있던 안경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며 뺨이 얼얼했다. 국장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자식아, 내가 웃음거리냐? 네 까짓 게 뭔데 나를 놀려?”
분에 못 이긴 국장은 씩씩거리며 험한 말들을 뱉어냈다.
“너 같은 놈 자르는 건 일도 아니니까 각오해. 알았어? 이 자식이 얻다대고 까불어. 꼴도 보기 싫으니까 썩 꺼져버려.”

꺼지라는 말을 듣자 참고 있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수치와 모멸감에 회사를 그만 둬야 할 것 같았다. 내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나도 안다. 나로 인해 국장이 화가 났다면 그에게 용서를 빌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뺨을 때리는 무차별한 폭력과 욕설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을까.

원치 않게도 이 소문은 회사로 퍼졌다. 동료들은 나를 보며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만 나는 그런 관심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학비가 필요했으니까. 국장은 나를 볼 때마다 눈엣 가시처럼 생각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국장도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고, 상처도 서서히 잊혀졌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국장 보다 회사를 더 오래 다녔다.

최근 취업포털 잡 코리아가 20대 미혼 남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배우자 선택기준으로 무엇을 꼽을 텐가?’ 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 놀랍다. 외모나 경제력 보다 ‘인성을 선택 하겠다’는 대답이 1위(69%)였다. 사랑의 감정에 속아 한 평생을 힘들게 살고 싶지 않겠다는 말일 게다. 젊은이들의 성숙한 답변에 박수를 보낸다. 이젠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됨됨이가 되지 않으면 결혼도 어려운 시대다. 하긴 요즘은 군대나 직장에 입사할 때도 규격화된 인성검사가 필수 코스라 하지 않은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어른이 어른다운 행동을 못하거나, 나이 값을 못하면 손가락질 받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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