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센터, 진료실 이야기 (21) | 이형석 유성선병원 뇌졸중센터 신경과 과장

호흡곤란과 어지러움으로 병원을 찾은 50대 여성을 만났다. 내과에서 폐, 혈액, 심장 등 수많은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낮 동안은 숨이 차기는 했지만 산소 수치는 떨어지지 않고 잘 유지되었는데, 밤만 되면 갑자기 숨이 멎는 일이 잦아져 급기야 인공호흡기까지 달게 됐다.

그러던 중 내과 주치의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필자에게 의뢰를 했다. 추가적으로 MRI 등 몇 가지 검사를 시행한 뒤 환자에게 내려진 진단은 연수 경색에 의한 ‘온딘의 저주 증후군’이었습니다. 어쩌다 질병 이름에 저주라는 말까지 붙었을까?

유성선병원 뇌졸중센터 신경과 이형석 과장
독일의 전설을 언급하자면, 이 이야기는 아름다운 물의 요정인 온딘에 대한 이야기이다. 온딘은 물의 정령으로 매우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인간을 사랑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불멸과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잔혹한 운명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온딘은 젊은 기사 로렌스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맹세를 나누고 그의 아내가 되었다. 불멸의 삶을 사랑과 바꾼 것이다. 첫 아이를 낳고 나자 젊고 아름다웠던 온딘도 나이를 먹기 시작했고, 그녀에 대한 남편의 관심도 사라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온딘은 다른 여인의 품에서 잠든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그녀는 배신감에 몸을 떨며 그에게 저주를 내뱉게 된다.

“굳건한 사랑의 맹세를 저버린 자여,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나와 함께 숨을 쉬겠다는 맹세를 잊은 자여, 그대는 이제 다시는 매일 아침 나와 함께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리라. 매일 밤 잠이 들게 되면, 당신은 숨 쉬는 것을 잊을 것이오, 다시는 깨어날 수 없을 것이리라.”

이러한 전설에서 비롯된 온딘의 저주라는 질병은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불수의적 호흡이 없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선천적인 뇌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나 뇌종양, 뇌경색 등의 뇌 손상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연수 또는 숨뇌라고도 하는 부위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몸속의 이산화탄소농도를 감지하고 호흡 근육에 명령을 내려 자동적으로 숨을 쉬게 만드는 곳이 있다.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깨어 있을 때는 대뇌의 명령 하에 의도적으로 숨을 쉬지만, 잠이 들어 의식을 하지 않으면 숨이 멎게 된다. 다른 생각을 하다가 숨 쉬는 것을 잊어도 무섭게 산소 수치가 떨어지며 잠들면 호흡부전으로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질병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환자가 바로 이 연수 경색에 의한 온딘의 저주 증후군 환자였다. 환자는 당시 부정맥이 있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피떡(혈전)이 뇌혈관을 막은 것이다. 뇌경색이었지만 팔다리 마비, 심지어 발음 장애도 없었다.

여러 가지 약물 치료 등으로 증상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 결국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밤에 자는 동안에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낮에는 산소 포화도 검사기를 부착하고 있다가 숨을 안 쉬어 알람이 울리면 숨을 쉬는 식으로 적응을 해갔다. 이후 증상은 좀 나아졌으나 여전히 밤에는 호흡기를 달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뇌경색, 뇌졸중은 이처럼 예고 없이 다양한 증상으로 갑자기 찾아오며 한 번 뇌졸중이 생기면 특성상 완전히 회복될 수 없다. 하지만 해당 환자와 같이 원인을 알고 미리 대처한다면 막을 수도 있으며, 증상이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면 혈관을 다시 뚫어 증상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무작정 뇌졸중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뇌졸중과 관련한 나의 위험 요소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어떻게 그것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뇌졸중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뇌졸중센터 신경과 이형석 과장

<전문진료분야>
-뇌졸중 / 뇌전증(간질) / 두통 / 어지럼증

<약력>
-신경과 전문의
-충북대학교병원 권역심뇌혈관센터 임상교수
-대한 신경과학회 정회원
-대한 뇌졸중학회 정회원
-대한 뇌전증학회 정회원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