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학교 앞 4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앞쪽에 경찰의 이동식 카메라가 보여 황급히 속도를 줄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속도위반을 찍고 있었으니 당황스러웠다. 속도계를 봤다. 시속 65km. 찍히지 않았을 거야. 겨우 65km이었잖아? 그로부터 일주일 후 집으로 속도위반 통지서가 날아왔다.
‘스쿨 존에서 20km 이상 초과. 과태료 10만원’

헉! 10만원? 속상했지만 어쩌겠는가.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내 잘못이었으니.
이렇듯 모든 세상사는 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험 성적이 잘 나오고,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운동을 하면 근육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이걸 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고통이 따른다.

“진해 벚꽃은 이번 주말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됩니다.”
몇 년 전 우리가족은 장모님을 모시고 벚꽃구경을 위해 진해로 향했다. 진해까지는 3시간이 넘었기에 새벽 댓바람부터 부산을 떨었고 10시쯤 도착한다. 하지만 진해는 초입부터 전국에서 몰려든 차들로 인해 교통정체로 헐떡거렸다. 그때 내 마음은 두 패로 나뉘었다. 차가 많이 막히니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갈까. 아님 애초의 생각대로 밀어붙일까. 예전 같으면 과감히 다른 곳으로 바꿨겠지만 장모님을 모시고 왔다는 생각에 계획대로 밀어붙이자고 마음먹었고 이곳만 지나면 괜찮다고 가족들을 달랬다. 이것이 화의 근원이었다.

3시간의 교통지옥을 뚫고 행사장인 해군사관학교 교정에 도착했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앙상한 나무들 뿐 이었다. 알고 보니 꽃샘추위로 인해 벚꽃이 피지 않았단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문제는 또 있었다. 1년에 단 한번 개방하는 해군사관학교 영내를 돌아보려면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사람이 많아 긴 줄을 서야 했고, 버스 안에서는 몸싸움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딜 가나 차와 사람에 치인다더니 영락없는 그 꼴이다. 연로하신 장모님과 아이들이 걱정 되었다. 이렇게 고생할 바에야 다른 곳으로 가자고 생각한 나는 꽃이 피지 않은 나무아래서 대충 사진을 찍고 가족들을 설득해 다시 차에 올랐다. 하지만 진짜 고생은 이때부터였다.

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는 법. 해군사관학교 입구는 들어오려는 차들과 나가려는 차들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버렸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아우성이고, 장모님께는 죄송스럽고, 아내는 괜히 왔다고 짜증을 내고, 난처한 상황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 상황을 탈출하는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아비규환을 뚫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하니 오후 3시. 그곳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니 오후 4시. 이 시간에 어딜 간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고생만 한 채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이 치러야 했던 고생의 원인은 나 때문이다. 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비좁은 도로상에서 들어갈 때 3시간이면 나올 때의 상황도 비슷할 거라는 예상했어야 했는데 이를 무시 한 거다. 그러니 고생할 수밖에. 한데 이런 잘못된 판단은 한번이면 족 할 텐데 여러 사람을 고생시킨 적이 또 있다.

3년 전 일이다. 대전 ‘뿌리공원’에서 행사가 있었다. 모든 운영을 내가 맡았는데 행사전날 시스템(무대, 조명, 음향, 캐노피 천막)을 설치해주기로 약속했다. 뿌리공원 행사장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안쪽에 있기 때문에 유등 천을 건너가야 하는데 사람들은 다리를 이용해 갈수 있지만 장비를 실은 차량들은 ‘물막이 보(라버 보)’ 아래쪽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며칠 동안 내린 비 때문에 ‘보’ 위로 물이 넘치고 있었던 거다. 물위로 차량이 지나갈 수도 없는 일. 공원관계자가 말했다. “내일 아침이면 물이 줄어들 것 같다”고. 할 수 없이 그날은 장비 팀을 철수시켰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물이 넘치고 있었던 거다. 그때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저기 있는 라버(Rubber)보를 이용하면 어떨까요?”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라버 보(물막이 댐 위에 특수 고무를 설치한 후, 필요에 따라 공기를 주입하거나 빼내는 방식)’의 공기를 빼 물을 흘려보낸 후 다시 공기를 넣으면 물이 넘치지 않을 테니 그때를 이용해 차를 들여보내자는 말이었다. 이론상 가능했다. 공원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그런 방법을 사용한 적이 있단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안전’이 문제였다.

물을 하류로 방류시킬 경우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위험 할 수 있단다. 해결방법은 안내방송과 안전요원의 배치였다. 우리는 모든 조치를 취한 후 ‘라버 보’의 공기를 뺐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물이 하류로 내려갔다. 10분쯤 지났을까. 다시 공기를 주입하자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깨달았다. 간단한 것을 모르면 이렇게 고생하는구나. 그래서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이겠지.

행사장에 도착한 우린 최선을 다해 세팅을 마쳤다. 이제 시작하면 되는 상황. 그런데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퍼붓는 소나기와 맞닥뜨리자 모두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갈팡질팡했다. 그 때문에 행사장소를 실내로 옮겨야 한다느니 그냥 강행하자 느니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하늘에 대고 기도를 했다. 부탁합니다. 제발 이 비를 그치게 해주세요. 이 일을 해야 아이들 학비를 내고 우리 가족들이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제발요. 내 기도의 효험 때문이었을까.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쳤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비가 그친 덕분에 행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마무리까지 잘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쏟아진 소나기로 인해 ‘물막이 보’가 다시 넘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 때문에 행사장 안에 들어온 장비차량들이 고립되었다. 괜찮아. 공기를 빼는 방법이 있잖아. 두 번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게 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라버 보’의 공기를 빼달라고 부탁하자 안 된단다. 밤에 물을 방류하면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급류에 휩쓸릴 수 있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하잔다. 따지고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인데 어쩌겠는가. 이 소식을 업자들에게 전하자 발을 동동 구른다. 스케줄 때문에 지금 차를 빼야 한다고. 결국 손실 금액 일부를 보상해주기로 약속하고 숙소까지 잡아주자 겨우 진정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처음부터 다시 ‘복기’ 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도 있다.

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소나기가 내리면 ‘물막이 보’가 넘친다는 것을 알아야 했고 그때 ‘라버 보’의 공기를 다시 빼 놓았어야 했다. 그랬으면 행사가 끝난 후 차량들을 밖으로 이동 시킬 수 있었을 거다. 그 생각을 못했기에 장비 팀을 고립시켰고 막대한 손해까지 입었다.

위대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미리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둔다. 《삼국지》에 이런 장면이 있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쫓겨 달아날 때 두 개의 갈림길에 이르렀다. 어디로 갈 것인가 망설이고 있노라니 멀리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그건 적병이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조조는 그 길을 택한다. 제갈공명이 자기를 속이려고 사람을 시켜 불을 피웠다고 보고 오히려 그쪽에 적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조의 예상은 빗나간다. 그 길에서 복병을 만난 것이다. 이 계책은 조조가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고 미리 예측한 제갈공명의 전략이었다.

‘백업 시스템’도 같은 이치다. 컴퓨터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로 인한 데이터 손실을 염려해 항상 ‘백업’을 마련해 둔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이따금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인생은 좋은 것들만 모여 있어도 나쁜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나쁜 것이 모여 있어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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