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상인들 못 믿고 빅데이터 믿는 대전시

김학용 주필
대전시는 작년 도청~대전역 간 중앙로에서 ‘차없는 거리’ 행사를 몇 차례 했다. 도청이 빠져나가면서 급격하게 쇠락하고 있는 원도심의 활성화 대책 중 하나다.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차없는 거리 행사를 하면 사람들이 북적대며 상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피해를 호소하며 행사에 반대하는 상인들이 많다. 중구도 반대다. 대전시가 행사를 중단하든지 행사의 규모와 횟수를 크게 줄여주기를 원하고 있다. 대전시는 지금처럼 계속하고 싶어한다. 규모도 횟수도 줄이고 싶지 않다. 상인들은 대전시가 행사를 계속할까봐 걱정이 크다.

“매출 줄었다” 차 없는 거리 행사 피해 호소하는 상인들 많아

상인들 얘기를 들어봤다. 중앙로 지하상가 상인 A씨는 “행사가 있는 날은 매출이 20~30% 줄어드는 것 같다. 그날은 가게가 텅텅 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상인 B씨는 “행사가 있을 때는 매출이 30~40% 줄어든다. 커피숍 등 아주 일부 업종은 재미를 보는 것으로 알지만 거의 모든 상인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C씨의 음식점은 타격이 더 심하다. 주로 주말 가족행사로 매출을 올리는 업소다. “차없는 거리가 있는 날은 장사를 완전히 망친다. 예약 손님들이 심한 교통 불편을 겪으면서 항의를 받기 일쑤고 토요일엔 갈 수 없는 식당이란 소문이 나면서 차가 다니는 주말조차 예약이 끊기고 있다. 큰 일이다. 제발 기자님이 (행사를 그만두게) 도와달라.”

상인회 대표 D씨는 “시에서 원도심을 살리기 위한 정책으로 하는 사업이니까 일단 지켜보자는 게 개인적 생각”이라면서도 “차 없는 거리 행사에 찬성하는 상인은 10%도 안 된다”고 했다. 행사에 찬성하는 업종은 5% 정도에 불과한 음식료 가게 정도라고 했다.

동구 쪽 “당장은 매출 떨어져도 홍보 효과 기대”

동구 쪽 중앙상가는 입장이 좀 달랐다. 상인 대표 E씨는 “당장은 매출이 좀 떨어지는 곳도 있으나 시장(市場) 홍보가 돼서 평일 매출이 늘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중구 쪽에도 찬성파가 있다. 상인회 대표 F씨는 “유동인구가 늘면 껌이라도 한 개 더 팔리지 않겠느냐. 대전시가 설마 상인들을 죽이려고 행사를 하겠느냐”고 했다.

중구 쪽에선 반대가 압도적이고 동구 쪽에선 홍보 효과를 기대하며 기다려보자는 입장도 다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반대 쪽이 훨씬 많아 보인다. 커피숍 같은 음식료 업종을 제외하면 매출이 올랐다는 곳은 거의 없다. 반대하지 않는 상인들도 홍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지 장사가 잘돼 찬성하는 건 아니다.

대전시가 낸 자료는 이와 반대다. 시는 지난주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행사 당일 원도심 유동인구가 크게 늘었고 매출액도 올랐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도시철도 이용객이 88%까지 증가했으며 상가 매출도 작년보다 최대 23% 이상 올랐다는 내용이다.

미스터리다. 정말 장사가 잘 된다면 상인들이 오히려 행사를 1년 내내 하자고 조를 판인데 월 1회도 안된다고 반대하는 이유가 뭘까? 대부분의 상가에서 매출이 오르는 데도 일부 상인들과 중구가 여론을 왜곡하며 대전시 정책에 딴지를 걸고 있다는 말인가? 중구는 지난 1월 중앙로 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2%가 장사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대전시와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대전시와 중구 어느 한쪽은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다. 대전시 쪽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대전시는 상인들의 입장을 확인하는 방법부터 잘못됐다. 행사 때문에 상인들이 덕을 봤는지 손해를 봤는지는 중구처럼 당사자인 상인들에게 직접 물어 보는 게 우선이다. 전수조사가 어렵다면 샘플조사도 가능하다. 원도심 상가가 수천 개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빅데이터를 쓰나? 

상인들에겐 안 묻고 카드사 자료만 믿는 대전시

대전시는 상인들을 만나는 게 두려운가? 시장이든 공무원이든 상가를 직접 방문해서 피해보는 업종은 어딘지, 피해 규모는 어떤지, 장사가 잘된 업종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어야 한다. ‘경청 토론회’ 이전에 중앙로 상가에도 직접 들어가서 들어보는 게 먼저다. 상인들 말로는, 대전시는 현장 방문도 설문 조사도 없었다. 대전시의 경청 대상은 상인이 아니라 빅데이터를 가진 통신사와 카드사였다.

‘차없는 거리’는 원도심을 살리는 게 목적이다. 원도심은 구체적으로 ‘원도심 상가’를 말한다. 유동인구가 아무리 늘어도 상가의 매출이 늘지 않으면 소용없다. 매출이 늘었다는 통계치가 나왔어도 상인들이 반대하면 목적을 이루지 못한 행사다.

상인들뿐 아니라 시민 전체 의견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일부 있다. 여기선 옳은 얘기가 아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찬성한다고 해도 원도심 상인들이 반대하면 할 수 없는 행사다. 상인들은 생계가 달린 문제지만 시민들은 호기심이나 즐거움에 그치는 행사다. 다수 시민들 입장을 반영하려면 상인들의 피해 대책을 마련한 뒤에 해야 한다.

‘자존심 행정’으로 바뀐 차 없는 거리 행사

시민들 사이에 차 없는 거리 행사를 꼭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대전시가 상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행사를 계속하려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대전시 관계자가 ‘한번 시작한 행사인데 반응이 좀 안 좋다고 해서 바로 중단할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했다는 말이 들린다. 

차 없는 거리의 존폐가 ‘대전시의 자존심 문제’가 되어 있다는 얘기다. 놀랄 일은 아니다. 정부든 지자체든 쓸데없는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세금과 행정력을 낭비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신중하지 못한 정치적 결정, 판단 미스, 탁상행정 등이 자주 불러오는 결과다.

어떤 행사든 보다 장기적 관점으로 볼 필요는 있다. 무슨 정책이든 단시일 내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차없는 거리’가 시간이 지나도 원도심 상인을 살리는 행사가 될지는 의문이다. 차없는 거리를 좋아하는 시민들은 꽤 있을 수 있지만 상인들에겐 거의 약이 아니라 독이기 때문이다.

차 없는 거리는 기본적으로 상인을 위한 행사가 아니다. 차 없는 거리에 성공하고 있다는 뉴욕 파리 도쿄 등 외국의 큰 도시들도 도심 보행권 확보가 목적이지 상인들을 위한 행사가 아니다. 보행자들에겐 호응을 얻지만 상인들은 피해를 보는 행사다. 대전시가 무턱대고 선진국 도시들을 따라한 것이면 목적부터 어긋난 것이다.

광주가 중단하고 대구 부산이 안 하는 이유

광주시는 작년 도심 활성화를 위해 차 없는 거리를 도입했다가 상인들의 거센 반발로 중단했다. 대구도 부산도 대도시라면 대전처럼 ‘차 없는 거리’를 하고싶어 한다. 저비용으로 큰 홍보효과를 낼 수 있는 행사다. 그런데도 시행을 못하는 이유는 상인들 피해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차 없는 거리를 왜 시작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원도심 살리기 제1의 목적은 ‘원도심 상가 살리기’다. 유동인구가 몇 배 는다고 해도 매출이 줄면 소용없다. 중구든 동구든 상인들이 원치 않으면 중단해야 한다. 중구 쪽은 반대고 동구 쪽은 찬성이라면 동구 쪽에서만 하는 게 마땅하다.

중구에서 낸 설문조사 결과가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면 동구, 중구, 상인대표 등과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된다. 맨날 경청을 외치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상인들의 고통은 왜 외면하는가? 시장이든 공무원이든 ‘자존심 행정’으론 자존심을 지킬 수 없고 상인들에게 고통만 안겨준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