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대전 시정 불안 1년 더 늘린 대법원

김학용 칼럼
권선택 시장 재판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지연되고 있다. 사건이 작년 7월에 대전고법에서 넘어갔으니까 대법 스스로 정한 예규(2개월 내 처리)대로라면 작년 9월에는 선고가 나왔어야 된다. 늦어도 작년 말, 더 늦더라도 금년 초에는 결판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 ‘한계 시점’ 3월 14일을 넘기고 있다.

‘한계 시점’ 3월 14일 이전 대전시장재판 선고 물 건너가

이날을 넘기면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더라도 앞으로 1년 뒤인 내년 4월에야 재선거가 가능하다. 권 시장은 1,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상태여서 당선무효형으로 결론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무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선무효 가능성이 상존해 있는 만큼 대법원은 3월 14일 이전에는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내주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14일 이전 선고는 사실상 어렵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3월 14일을 넘긴 뒤에 당선무효형 판결이 나온다면 대전시민들로서는 ‘아주 나쁜 재판’이 된다. 어차피 치르는 재선거를 1년이나 늦추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시장직 유지가 확정되더라도 ‘나쁜 재판’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풀어줄 족쇄를 질질 끈 것밖에 안된다. 중대한 재판을 단시일에 하는 건 어렵지만 이런 재판은 너무 끌면 이미 망치는 것이다.

150만 대전시민들에겐 이미 ‘최악의 재판’

지위가 유지되든 박탈되든 지방자치단체장 재판에선 신속성이 중요하다. 공무원들은 언제 물러날지 모르는 시장의 말을 잘 들을 리 없고 시정(市政)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지금 그 피해는 150만 대전시민이 보고 있는 중이다. 시민들 입장에선 대법원이 ‘최악의 재판’으로 끌고 가고 있다.

죄의 유무와 경중을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팩트는 1심과 2심에서 다 나왔다. 재판의 결과를 뒤집을 만한 요소가 새로 나왔다는 얘기도 못 들었다. 사건이 아무리 복잡하고 방대해도 핵심 쟁점은 제한돼 있다. 이 재판은 ‘정치인들은 다 하는 포럼인데 왜 나만 무거운 죄를 주느냐?’ ‘불법적으로 취득한 자료가 유죄의 증거로 쓰인 것 아니냐?’ 등의 피고 측 항변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느냐가 핵심 쟁점으로 보인다.

1, 2심의 판단은 나왔다. 대법원이 그걸 다시 살펴보고 법리 적용에 작지 않은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하면 하급심을 뒤집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급심대로 확정되는 것 아닌가? 그걸 결정하는 데 8개월씩이나 걸릴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이 사건이 복잡하기 때문에 검토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법조계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말 사안의 복잡성(법리 적용) 문제인지 그보다는 이 사건을 대하는 재판부 태도(적극성)의 문제인지 필자는 모르겠다.

‘늑장 재판’ 싫지 않을 청와대와 정치권

이유가 무엇이든 ‘늑장 재판’이 싫지 않은 쪽도 있다. 정치권이다. 당선무효형이 확정될 경우 야당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여당은 동정심이 불러올 파장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권 시장에 대한 면책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엔 여당이 더 불리하다. 총선을 앞둔 정당들에게 대법 선고는 유불리가 불확실한, 그러나 중요한 소재다.

늑장 재판을 반길 만한 곳은 청와대 같다. 국가 운영의 수뇌부라는 입장에서 보면 광역자치단체장이 재판의 족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선 계산법이 다를 수 있다. 선거법에 걸려든 야당 광역단체장 재판이 늘어진다고 해도 청와대가 불만일 이유는 없다. 지금 청와대에겐 늑장 재판이 오히려 맘에 들 수도 있다.

만일 ‘총선과 대전시장 재선거 병행’으로 결정되었다면 청와대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재선거에 임하려면 ‘친박이면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요소, 즉 충성과 당선 가능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 딱히 없다면 대전시장 재선거는 청와대엔 내키지 않는 행사다. 나는 이게 지금 여권, 특히 청와대 입장이 아닌가 한다.

청와대가 임명하는 ‘관선 대전시장 체제’로 갈 수도

대법 선고가 3월 14일을 넘긴 뒤, 그 이후 재선거 쪽으로 결론나면 재보궐 선거가 가능한 내년 4월까지 ‘관선(官選)시장 체제’로 가야 한다. 청와대가 임명하는 행정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을 맡을 것이다. 현 정권의 임기는 내년 말이다. 7~8개월 정도만 빼면 잔여 임기를 ‘관선 시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 대전시장 재판이 그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공주대 등 맘에 들지 않는 선출직 국립대학총장 자리 9곳을 공석으로 두고 총장 직무대리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맘에 안 드는 ‘직선 총장’보다는 차라리 비워두면서 ‘총장 직대’로 대신하는 방법은 현 정부가 좋아하는 수법이 되었다. 대전시장 자리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의 늑장 재판은 그 길을 열어주고 있다.

‘한계 시점’ 넘기면 차라리 내년 재선거 때까지 선고 미뤄야

어차피 선고가 늦어진다면, 당선무효형 판결일 경우 내년 재선거 시점까지는 선고를 미루는 게 낫다. 그렇지 않으면 대법원은 대전시장 자리를 빼앗아 청와대에 넘겨주는 꼴이 된다. 시민들에게 줘야할 시장 선택권을 권력에게 바치는 것이다. 재판이 순수하게 진행되었다고 해도 권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다.

대전시민들은 당선무효형이든 유효형이든 시장 재판이 하루빨리 결론 나서 대전시 행정이 정상화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물건너 가고 있다. 대전시민들보다 권력의 입맛에 맞는 재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법부의 의도가 아니라 해도 대전시민의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재판 당사자가 누구든 사법부는 최대한 신중하게 재판할 ‘권리’도 있지만,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시도지사 국회의원 등 공적 역할이 막대한 공인(公人)일 경우 늑장 재판이 가져오는 심각한 국민 피해도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이 대전시에서 벌어지는 혼란상을 목격한다면 이런 식으로 재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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