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충청 출신 여야 두 정치인에게 닥친 시련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왼쪽)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
친(親) 박근혜 계 핵심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53. 인천 남구을)이 김무성 대표에게 ‘막말’을 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이 발칵 뒤집혔다.

윤 의원은 ‘취중실수’라며 김 대표에게 사과를 구했지만, 꼬투리를 제대로 잡은 김 대표는 꿈쩍도 않고 있다.

지난 8일 한 종편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윤 의원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김무성이 죽여 버리게. 죽여 버려 이 xx. 다 죽여”라고 했다.

"김무성 죽여" 새누리당 '발칵' 뒤집은 청양 출신 윤상현

윤 의원은 충남 청양(청남면 청소리)이 고향이다. 서울대(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외교학을 전공했다. 198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영애인 효선 씨와 결혼해 절대 권력자의 사위가 되기도 했다.(2005년 이혼)

18대와 19대 국회의원으로,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을 지낸 친박의 실세다. 지난달 24일에는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주도했던 (사)충청포럼 제2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충청대망론’의 샛별로 떠올랐다.

그는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각계에서 충청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도록 함께 힘을 모아 지금이야 말로 우리의 저력으로 충청인의 위상을 드높이고, 이 나라를 이끄는 주도 세력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해야 할 때"라고.

충청포럼 회장 취임 2주일 만에 윤 의원은 한 번의 말실수로 위기에 몰렸다. 같은 청양 출신인 이완구 전 총리의 말실수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 전 총리 역시 말실수가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총리로서의 위신이 곤두박질친 바 있다.

새누리당 친박 실세로 불리는 윤상현 의원은 충남 청양 출신이다. 최근 김무성 대표를 향한 막말 파문으로 당내 공천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출처: 윤상현 의원 공식사이트)
살생부 논란으로 코너에 몰렸던 김무성 대표는 숨 돌릴 여유를 찾았다. 까마득한 후배에게 욕은 먹었지만, 기분이 썩 나빠 보이진 않는다. 1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종필 전 총리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김 대표는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요즘 제 마음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꽃샘추위를 심하게 느끼고 있어 어딜 가나 마음이 편치 않은데, 모처럼 오고 싶은 자리에 와서 마음이 푸근해졌다”고 했다.

한 치 양보도 없는 세력 다툼의 정치세계에서 정치인의 ‘말’의 세기와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요즘 새누리당이다.

금산 출신 대여공격수 정청래에 닥친 '위기'

이제 야당으로 넘어가보자. 더불어민주당은 10일 오전 4.13총선에 출마할 2차 공천자 명단을 발표했다. 더불어 현역 컷오프 명단도 내놓았다. 이날 컷오프 명단에서 발견된 의외의 결과는 정청래 의원(50. 서울 마포을) 공천 배제였다. 정 의원 본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런데 당 안팎에서는 더 난리가 났다. 정 의원의 공천 배제 소식을 접한 동료의원은 물론, 비중 있는 원외 인사들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공관위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정 의원의 구제를 요청했다.

그는 충남 금산(진산면 돌메기골)이 고향이다.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대전 보문고와 건국대를 졸업했다. 17대와 19대 국회의원이며 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야권 출향 정치인 중 몇 안 되는 충청의 자랑이다. 최근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정국 때는 11시간 40분이란 최장 시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막말 매도된 두 출향 정치인, 계파 정치의 타깃?

일부에서는 그가 했던 ‘막말’이 공천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해 5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비노(비 노무현)계 주승용 최고위원을 향해 “공갈친다”는 발언을 했다가 당직 자격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컷오프 결과 발표 후 기자간담회에서 “(정청래 의원이) 남이 갖지 않은 재주를 갖고 있지만, 과한 표현으로 부담이 되기도 한다”며 “여러 가지 의견을 듣고 , 여러 가지를 판단해 고민 끝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고향은 충남 금산이다. 지난 10일 발표된 더민주 2차 컷오프 결과 공천배제자 명단에 포함되면서 시련을 겪고 있다. 사진은 최근 11시간 40분이라는 최장 시간 기록을 세운 필리버스터 연설 모습. (출처: 정청래 의원 블로그)
정청래가 누구인가. 대여공격수로 촌철살인의 대명사다. 그런 그가 당의 외면을 받았으니 그 후폭풍은 가공할 만큼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2차 컷오프 결과 발표를 앞둔 8일 자신의 SNS에 “최전방 공격수를 하다 보니 때로는 본의 아니게 불편하게 했던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의 사과는 이틀 만에 비보가 되어 돌아왔다.

과연 정청래는 막말 때문에 숙청됐을까. 그는 친노(친 노무현)계 86그룹 강경파로 꼽힌다. 따라서 그의 이번 컷오프는 문재인 대표가 물러난 뒤 비노계가 가장 먼저 고른 숙청 대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최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친노 패권주의’에 대해 “당 안에서 만든 단어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들어와서 보니 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두 축으로 이뤄져 있었다. 암암리에 노무현 라인은 계속 배척당한다. 기존 세력은 별안간 확 떠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 갖는 영향력이 싫은 거다.”

손 위원장은 정 의원의 컷오프 소식을 들은 뒤 페이스북에 “정청래 의원은 정의롭고 용기 있으며 행동할 줄 아는 바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유머감각이 풍부한 정 많고, 눈물 많은 착한 사람이었다”며 “그의 양면적인 두 성격 때문에 진보와 보수 양측에서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었고, 저는 그 점이 안타까웠다”고 서술했다.

박수현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도 페이스북에 “정청래 의원 컷오프 사유가 ‘막말’이라면, 정 의원이 동료의원에 대한 칭찬릴레이를 펼쳤음도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 저는 정 의원의 칭찬릴레이 대상 1번으로 응원을 받았던 의원으로서 그에 대한 안타까움과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이 그에 대한 인간적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막말에 대처하는 지도부 자세, 춥기만 한 '충청의 봄'

충청도는 그동안 걸출한 인물을 대거 배출한 지역이다. 대권만 손에 넣지 못했을 뿐이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주름잡았다. ‘3김(金) 시대’를 주도했던 김종필 전 총리(충남 부여)가 대표적이다.

그 뒤를 이어 자유선진당 대표를 지낸 심대평(충남 공주) 대통령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장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충남 공주), 이완구 전 국무총리(충남 청양) 등이 충청이 낳은 거물들이다. 그러나 자의와 타의로 인해 나서는 사람마다 매번 대망론 문턱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현실정치의 뒤안길로 쑥 빠져 있다.

총선을 한 달 여 앞두고 대한민국 정치권을 강타한 충청도 출신 여야 두 정치인의 따로 또 같은 파국. 윤상현의 막말과 정청래의 막말은 다른 막말인가, 아니면 같은 부류인가. ‘충청도의 봄’은 여전히 찬바람 속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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